시편 141:8~10
8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옵소서
9 나를 지키사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놓은 올무와 악을 행하는 자들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10 악인은 자기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만은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과거 필리핀이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부강한 나라였는데, 오랫동안 퇴보의 퇴보를 거듭해 지금은 아시아에서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겸손해야 하고, 이후로 정치와 경제와 사회적 여러 가지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필리핀처럼 또는 베네수엘라처럼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군사 안보적인 면에서도 잘 대비되어 있어야 하는데, 어떤 정치인들은 ‘싸움을 안 하는 게 중요한 거지…’라고 말 하는데, 이거 참 바보같고 순진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존재는 악하기 때문입니다. 다 내 생각같지 않다는 겁니다. 요즘 우리가 미국과의 무역 협상과 외교 문제가 껄끄럽게 되었는데, 하루속히 정상화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한반도에 전쟁이 시작되면 과연 누가 우리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중국? 러시아? 북한? 그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정상적이지 않은 탐욕적인 정권들이란 걸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가 잘 되어 있어야 위기의 때에 우리를 도울 강력한 아군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저 사람은, 저 나라는 반드시 우릴 도울 거야’라고, 믿었던 나라,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할 일들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다윗도 아내의 아버지 즉 장인어른인 ‘사울 왕’이 그를 죽이려 쫓아다녔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 가까이 있었을 때, 사울은 여러 차례 창을 던져 그를 죽이려 했기 때문에, 결국 다윗은 왕궁을 빠져나와 이 동굴과 저 동굴, 이 광야와 저 광야로 방황하며 도피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누군가 권력을 잡으면 그 권력자에게 잘 보이고 아부하는 이들이 많아집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군대 장관으로 잘 나갈 때에는 그에게도 많은 친구들,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다윗도 그들과 좋은 관계 속에 즐겁게 일했었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이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죽이려 하자 그때부터 다윗은 이스라엘의 공공의 적이 된 것입니다. 다윗이 친구라고, 동료라고 생각했던 이들마저 온갖 악한 말을 퍼붓고, 다윗을 죽이려 했으니… 다윗이 느껴야 할 그 배신감은 어떠했겠습니까?
오늘 본문 8절을 보시면,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옵소서”
다윗의 저작인 [시편 141편]은 그가 환난 당할 때 기록된 시입니다.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너무 많아서 그는 도피 생활 중이었습니다. 그가 얼마 전까지 가까운 친구와 동료라고 생각했던 이들까지 모두 다윗을 배신했습니다.
이 구절의 하반절에서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옵소서”라는 표현은 그가 실제적으로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누구도 도울 사람이 없는 상태, 권력자와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의 강력한 공격을 저항할 힘도, 대항할 능력도 없는 빈궁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9절을 보시면,
“나를 지키사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놓은 올무와 악을 행하는 자들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를 구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도피 기사를 보면, 그가 이스라엘 땅 어디를 가든 사울 왕에게 다윗의 은신처를 밀고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다윗과의 그의 부하들이 어떤 마을을 지켜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을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 왕에게 내어 주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사울 왕과 그를 추종하던 이들은 다윗을 잡으려고 여기 저기에 올무를 놓고, 함정을 파 놓았습니다. 다윗이 안심하고 있을 수 있는 곳은 이스라엘 땅 어디에도 없었고, 다윗이 보호받을 수 있는 곳도, 그를 보호해 줄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대적들의 올무와 함정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고난’이란 것은 우리를 철저히 외롭게 만드는 특징이 있습니다. 의지했던 물질과 환경도 사라지고, 내가 의지했던 사람들마저 배신하기도 하고, 누구 하나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 사람도 없습니다. 일도 끊기고, 갈 곳도 없고, 불러 주는 사람도 없으니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할 일도 없으니 시간도 많습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없는 겁니다.
그래서 고난은 우리를 철저히 외롭게 만들지만, 그 철저한 고독 속에서 하나님만을 구하고 찾게 되는 겁니다. 그 전엔 일도 많고, 사람들도 만나야 하고 그래서 바쁘다고 성경 볼 시간도 없었는데, 이젠 시간이 너무 많은 겁니다. 탄핵되어 지금 수감되어 있는 윤 전 대통령도 신앙인이 아니었는데, 감옥에 들어갈 때 성경책 한 권을 갖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난은 하나님을 구하고 찾게 되는 그래서 하나님과 더 깊고 친밀한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10절을 보시면,
“악인은 자기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만을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다윗은 공의의 하나님께서 악인을 벌하시고, 자신을 구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구하셔서 다시 회복시키신 역사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고난 중에 있습니까? 철저한 고독 속에 하나님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지금 고난 중에 있습니까? 철저한 고독 속에 하나님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고난 중에 내가 부르짖고 있는 제목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