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라고 생각될 때

시편 142:4~7

4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5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제 원래 성격은 아주 내성적이고, 먼저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주도하는 일은 제 성격과 잘 맞지 않습니다. 타고난 성격도 그런데 부모님도 안 계시고, 너무 가난하고, 잘하는 것도 하나 없는 저는 어릴 때도 늘 혼자였고, 혼자서 지내는 게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거 같고, 용기도 없어 친구를 잘 사귀지도 못하는 저의 모습이 싫기도 했습니다. 늘 저 혼자라고 생각하니 외로운 마음이 종종 제 마음을 짓누르기도 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제 마음에 영접한 이후로는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거 같습니다. 또는 심심하다고 느꼈던 적도 한 번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늘 혼자라 외로운 적도 있었고, 할 일이나 놀거리가 없어 심심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예수님이 언제나 함께 계시니 주변에 사람이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읽어야 할 책도 많고, 돌봐야 할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언제나 많아서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아니,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혼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 두려움과 불안함과 외로움으로 인해 감정적으로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오늘 본문의 다윗의 상황에서는 그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는 지금 사울 왕에게 쫓기는 도망자 신세였습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보시면,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이 장면은 마치 법정에서 내 오른편에서 나를 위해 유리한 증언을 해 줄 사람도, 나를 변호해 줄 변호사도 없이 홀로 모든 죄를 덮어쓰게 되는 상황을 연상하게 합니다. 지금 다윗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시면,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다윗이 도피하며 여기저기를 떠돌며 지낼 때, 그의 주변엔 그를 도와 줄 사람도, 위로해 줄 사람, 힘이 되어 줄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다윗이 도움을 구할 유일한 대상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오직 주님만이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나의 도움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시면,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5절에 이어 6절에서도 다윗은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는 ‘심히 비천하다’라고 했는데,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 최악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반면, 그를 죽이려 하는 자는 한 나라의 왕이었기 때문에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기도하는 일이었고,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목회하고 있는 필리핀 세부의 한인사회는 한두 사람만 건너면 다 알 정도로 매우 좁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두 사람하고 틀어져 안 좋은 관계가 되면, 건너 건너 그 사실을 다 알게 되니깐 자꾸 다른 한인들과는 거리를 두고 살게 되는 겁니다. ‘저 사람은 이러저러해서 안 만나고, 이 사람은 이러저러해서 안 만나게 되고…’ 이런 상황들이 몇 번 반복하게 되면, 아예 한인들과는 거리를 두게 되고, 또 이곳 생활에도 만족도가 떨어지고, 떠날 수 있으면 이 땅을 떠나고 싶어 하는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사람들을 보면, 이곳 한인들과의 관계에 약간은 집착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하고도 친하게 지내야 겠고, 저 사람하고도 친하게 지내야 겠고, 저 사람도 나를 좋아해 주면 좋겠고, 이 사람도 나를 좋게 생각해 주면 좋겠고… 이런 마음 때문에 매일 같이 약속을 잡고, 매일 같이 그 상대의 표정과 말투와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가는 분도 계십니다. 너무 애쓰지 마세요.

물론 사람과의 관계도 잘해야 하고, 서로 좋은 관계로 지내는 건 너무나 좋은 일이지만 관계에 집착하는 건 결코 좋지 않습니다. 나중엔 상처만 남습니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란 말과 같이 다른 사람과의 거리는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좋지 않습니다. 서로 생활을 존중하고, 서로의 영역과 시간을 너무 침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지혜로운 것입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약간 떨어진 곳에서 볼 때, 더 예쁘고 더 멋진 겁니다.

때로 어떤 상황들로 인해서 ‘나 혼자라고 생각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누구도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나를 도울 수도 없는 상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윗에게 그 혼자라고 생각되었던 시기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도울 사람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의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훈련되는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나 혼자라고 생각될 때’, 사람을 바라보지 마시고,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시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주께서 우릴 홀로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다윗에게 그 혼자라고 생각되었던 시기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도울 사람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의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훈련되는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