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시편 143:1~4

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공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2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3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셨나이다

4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오늘 본문인 [시편 143편]은 시제에서 알려주고 있듯이 ‘다윗의 시’입니다. 그런데 시의 내용을 보면, 시의 성격은 ‘비탄시’ 혹은 ‘참회시’로 구분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는 이 시의 시제를 [다윗의 시,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의 반역이 시작되었는지 이것은 단순히 왕위를 탐하는 ‘왕자의 난(難)’ 정도가 아닙니다. 이에 대한 더 근본적인 원인은 사무엘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무엘하 11장]에서 다윗의 범죄인 ‘밧세바 사건’이 나옵니다. 그 후 [사무엘하 12장]에서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무엘하 12장 10~11절에서 나단은 다윗에게 예언하기를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이 구절들을 통해 크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10절에서는 ‘다윗의 집에서 칼이 떠나지 않게 되겠다’는 말씀과 11절에서는 ‘네 눈앞에서 아내를 뺏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왕권을 뺏긴다는 의미입니다. 사무엘하 13장에 가면 다윗의 자식들 사이에 문제들이 일어나는데, 첫째 아들인 암논(왕위 서열 1위)이 배다른 누이 다말(압살롬의 누이)을 겁탈하고, 이에 분노한 오라비인 압살롬이 첫째 형인 암논을 죽입니다. 14장에서 압살롬이 도망갔다가 15장에서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다윗이 성을 빠져나와 도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43편]은 이런 배경 가운데 그의 비탄한 마음과 참회하는 마음이 어우러져 기록된 다윗의 시인 것입니다.

1절을 보시면,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다윗의 범죄로 인해 그가 받는 형벌은 참혹했습니다. 그는 밧세바를 범했지만, 그의 장남은 배다른 누이 다말을 범했고, 그의 셋째 아들 압살롬은 첫째 형인 암논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 형벌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했던 것입니다. 그 징계와 환난 앞에서 다윗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부끄럽고 죄송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었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여러분, 자식이 부모에게 큰 죄를 지었다고 영영 그 부모를 떠나면 그 부모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프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큰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그래도 다시 돌아오는 게 그 부모의 아픈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길 아니겠습니까?

비록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는 철저히 회개했지만, 예수님을 은 30개를 받고 팔아넘긴 가룟 유다는 주님께 돌아오지 않고 목매달아 자살했기 때문에 영원한 저주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 못 하실 죄는 없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든 하나님 앞에 참으로 회개한다면, 그 인자하심이 한이 없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용서하시고,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시면,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다윗은 자신은 죄인이고, 마땅히 받을 벌을 받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해 주시는 형벌이라면, 심판이란 것은 그 죄에 대한 형벌로서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깐 징계는 죄인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는 벌이고, 심판은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된 죄인에게 주는 벌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심으로 완전히 자신을 버리지는 마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인생이 아무도 없으니,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간청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3절을 보시면,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

다윗의 현 상황은 처참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다른 아들을 죽였고, 그 아들은 아버지의 왕권을 찬탈하고, 그 아버지까지 죽이려 찾고 있는 상황이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이 구절을 통해 그의 참담한 심정을 올려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의 죄악으로 인해 마땅히 받을 벌을 받고 있었으니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이 드릴 수 있는 마지막 기도입니다. 자식이 큰 잘못을 뉘우치면서,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라고 한다면, 그걸 용서하지 못할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초라한 몰골의 탕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안아 주시고, 새 옷을 입히시고, 잔치를 여셨던 거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주님께로 나오는 여러분을 아버지께서는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하지만, 다윗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의 죄악으로 인해 마땅히 받을 벌을 받고 있었으니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이 드릴 수 있는 마지막 기도입니다.

오늘의 묵상: 하나님께서 당신을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라는 제목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