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3:5~8
5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7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8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오늘의 본문인 [시편 143편]의 상황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급히 왕궁을 빠져나와 피신한 상태입니다. 압살롬과 반란군은 다윗을 죽이려 추격하고 있고, 이스라엘의 권력이 압살롬에게 완전히 넘어가 버린 상태였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윗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가장 존경받던 왕이었지만, 노년의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비참한 지경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젊을 때의 고난은 감정적으로는 힘이 들겠지만 실패하더라도 아직 ‘기회’라는 게 다시 올 수 있기에 다시 소망 가운데 그 고난을 이겨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노년에는 이렇게 실패하게 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오지 않을 거 같은 겁니다. 그래서 노년기에 느끼게 되는 좌절감은 젊을 때의 좌절감과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노년기의 다윗이 모든 것을 잃고, 도피하게 되었을 때 그의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해져 아주 작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편 143편 5절을 보시면,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노년의 다윗은 모든 것을 다 잃고 초라하게 왕궁을 빠져나와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함께 왕궁을 빠져나온 신하들 앞에서도 면목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 의해 반란이 일어난 것이고, 아버지 다윗 왕은 왕궁을 빠져나와 겨우 생명을 부지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다윗의 상황은 중환자실에 누워, 여러 개의 주사 바늘을 꽂고, 산소마스크를 낀 상태로 기계의 힘을 빌려 겨우 숨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의료진들의 절대적인 도움 없이는 생명 연장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있을 때, 그 환자가 다시 소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처참하고 비참한 상황에 떨어져 있었던 노년의 다윗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셨던 놀라운 일들을 떠올립니다.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케 하셨었습니다. 셀 수 없었던 수많은 전쟁터에서, 적들에 둘러싸여 ‘이젠 죽었구나. 이젠 다 끝났구나. 더 이상 소망이없구나…’ 라고 생각했던 곳에서도 주님은 구원해 주셨었습니다.
6절을 보시면,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다윗은 마치 가뭄으로 마른 땅이 그 땅을 적셔줄 단비를 기다리듯이 주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간절히 주님을 사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문이 닫혀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을 어찌 인간이 자기 뜻대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하늘의 문을 열어주셔야만 비가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시면,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가 내일을 장담할 수 없듯, 다윗 역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서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라고 하는 것은 이 깊은 고난의 밤이 끝나고, 밝은 아침이 속히 오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리고 하반절에서 세 가지를 더해 기도하고 있는데, [쉬운 성경]의 번역으로 보시면, “… 내가 주를 믿고 의지합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소서. 내가 주께 내 영혼을 드립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주님을 신뢰하며 가야 할 길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영혼을 주님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맡겨 버리는 ‘전적 의탁(依託)’을 말합니다.
얼마 전에 어떤 초신자 성도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이분은 예수님을 믿고는 싶지만 아직 그런 믿음은 없는 거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궁금하신 게 ‘정말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과 염려와 같은 것이 없어지나요?’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어떤 문제도, 고난도 없고, 두려움과 염려와 걱정거리도 전혀 없는 그런 삶이 시작되는 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엔 여전히 걱정거리와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예수 믿기 전엔 이 문제를 나 혼자 다 짊어지고 갔었다면, 이제는 이 무거운 짐을 주님께 갖고 나아가고, 주님께 그 문제를 맡긴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책임을 다 지고, 모든 짐을 다 들을 땐 내가 죽을 것처럼 힘들지만, 누군가가 나와 그 짐을 나눠 들기만 해도 다시 살 만 하고, 버틸 힘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전적으로 의탁’ 즉 다 맡겨 버리면, 그때부터 내 마음의 자유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녀 문제, 물질 문제, 건강 문제, 진로 문제, 사업 문제, 내 모든 인생을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하십시오. 그때부터 그것은 내 일이 아닌 주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내 힘이 아닌, 주님의 능력이 내 삶에 개입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자녀 문제, 물질 문제, 건강 문제, 진로 문제, 사업 문제, 내 모든 인생을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하십시오. 그때부터 그것은 내 일이 아닌 주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내 힘이 아닌, 주님의 능력이 내 삶에 개입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당신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