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5: 1~3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실뭉치나 끈-뭉치가 엉켜있는 상태를 ‘엉킨 실타래’라고 합니다. 어떻게 풀어보려고 하는데, 엉켜있는 정도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풀기 어려운 상태의 엉킨 실타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뒤죽박죽 복잡하게 꼬이고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려면 첫 번째로 해야 하는 게
‘실마리(실의 첫머리)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마리를 찾지 않은 상태로 엉킨 실타래의 여기 저기를 당기다 보면 오히려 더 꼬이고 엉키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중엔 포기하고 그냥 중간 중간을 가위로 잘라서 그 실타래를 쓸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아무리 꼬인 문제라 할 지라도 실타래는 풀어야지 엉킨 실을 끊는 게 최선은 아닙니다. 엉킨 실타래에는 ‘실마리’라고 하는 그 ‘최초의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 실마리를 찾아서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다 보면 굳이 가위로 실을 끊지 않아도,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아도 그 어려운 문제가 풀려 지는 희망이 보이는 겁니다. 우리 인생에도 엉킨 실타래와 같이 여러 가지 인생의 문제들이 엉켜 답답하고 괴로운 시기를 보낼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예배를 회복하라.
야곱은 밧단 아람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천사와의 얍복강 씨름’을 통해 ‘이스라엘(하나님께서 싸우신다)’이란 이름으로 개명되었습니다. 그 이후 야곱이 두려워하던 쌍둥이 형 에서와의 대면이 평화로이 끝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대적과) 싸우신다(이스라엘)’는 의미와 같이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호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 이후 가나안 땅의 ‘세겜’이란 성읍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야곱의 유일한 딸이었던 ‘디나’가 시내 구경을 나갔다가 세겜의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게 됩니다. 이에 디나의 오라비들인 야곱의 아들들이 복수하기 위해 계략을 써서 그 성을 기습해 세겜 족의 모든 남자를 죽이고, 약탈하고, 그들의 손에서 여동생 디나를 다시 데려오게 됩니다. 야곱이 뒤늦게 아들들이 행한 이 끔찍한 만행을 알게 된 겁니다.
창세기 34장 30절을 보시면,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야곱은 아들들의 만행으로 인해 가나안 연합 부족과의 전쟁을 염려했고, 수가 적은 야곱의 집이 멸족하게 될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창세기 35장 1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그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그곳은 그가 형을 피해 밧단 아람을 향해 도피하다가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꿈을 꾸고, 언약의 말씀을 받고, 야곱이 그곳의 이름을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벧엘’로 불렀고, 그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고, 그곳에 제단을 쌓겠다는 서원을 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말씀은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한 약속(서원)을 지키라는 것이고, 온 가족의 예배를 회복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배를 회복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2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야곱과는 달리 온 집안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뿐만 아니라 공동체로서의 야곱의 가문이 예배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예배 때, 처음 오신 어떤 성도님께서 감사헌금 봉투에 이렇게 감사의 제목을 올리셨습니다. “선하신 하나님, 살고 싶어서 찾은 곳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되기 위해 더 사랑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회복되셨다는 것입니다. 예배 중에 하나님 임재하시고, 모든 이들의 상한 마음과 영혼 그리고 인생을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거룩을 회복하라.
는 것입니다. 시간에 맞춰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의 모든 공예배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룩’입니다. ✓ 2절을 보시면,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야곱과는 달리 그의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종들은 밧단 아람에서 섬기던 우상을 그대로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거룩’의 동사형은 ‘카다쉬 : קָדַשׁ’ 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분리하다(separate)’란 뜻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와 섞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온전한 연합을 이루려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와 더러움을 씻고, 그것들과 분리되어야 거룩한 사람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배 중에 거룩이 빠졌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 이후,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기록한 시편 51편 16절, 17절을 보시면,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리고, 어떤 종교적인 의식과 행위를 해서 죄가 씻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것은 종교적인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보시는 겁니다.
창세기 35장 5절을 보시면,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이 ‘이젠 다 끝장났구나. 우리 가족은 전멸되겠구나…’라고 두려워했었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모든 우상들을 땅에 묻어버리고, 벧엘로 올라가 예배의 제단을 쌓으려 하니, ‘하나님께서 싸우신다’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란 이름과 같이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의 가족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엉킨 실타래와 같이 나의 인생이 뒤죽박죽이 된 것 같고, 사람과의 관계도 틀어졌고, 재정의 문제도 점점 더 압박이 오고 있고, 가족과의 문제도 일어나고, 건강의 문제도 있고, 회사와 생업에 문제도 일어나고… ‘나는 왜 이리 되는 일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인생의 위기 속에 찾아 오셔서 말씀하신 두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예배를 회복하고, 거룩을 회복하여 다시 예배자의 자리로 돌아갈 때, 하나님은 나의 인생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 첫째, 예배를 회복하라
• 둘째, 거룩을 회복하라
기억해야 할 한 문장: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인생의 위기 속에 찾아 오셔서 말씀하신 두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예배를 회복하고, 거룩을 회복하여 다시 예배자의 자리로 돌아갈 때, 하나님은 나의 인생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나는 어떻게 예배와 거룩을 회복해 나가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