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편을 선택한 예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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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38~42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경북 예천 출신의 대학생 박OO씨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선배의 꾀임에 넘어가 캄보디아로 출국했다가 납치와 감금과 고문과 폭행으로 사망하는 사건을 계기로 최근 『캄보디아 범죄 단지』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2010년대에 캄보디아에 카지노, 호텔 리조트 등 중국의 거대 자본이 유입
됐고, 2020년대 들어 중국의 폭력 조직을 중심으로 범죄 단지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 범죄 단지 안에 수천 명씩 감금해 놓고 온라인 도박, 보이스-피싱, 로맨스-스캠(연애 빙자 사기), 코인 투자 사기 등의 범죄를 강요하고, 할당량을 못 채울 시 감금, 고문, 폭행, 인신매매 심지어 장기 적출과 살인까지도 우습게 여긴다고 합니다.

저런 범죄 단지가 캄보디아 내에만 50곳이 넘고, 중국의 폭력 조직과 결탁한 미안마, 라오스 같은 나라들도 정부와 경찰과 군대가 뒤를 봐주고 있어 오히려 범죄 단지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폭력 조직도 그 안에 들어가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 납치, 고문, 폭행, 살인 등을 담당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겁니다.

요즘 이런 뉴스들을 접하면서 ‘어떻게 인간으로서 이럴 수 가 있을까? 악마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악행을 저지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돈을 벌겠다고 남의 집의 귀한 아들, 딸을 납치하고, 감금하고, 폭행하고, 인신 매매와 장기 적출과 살인… 이건 정말 인간으로서 절대 할
수 없는 범죄인 것입니다. 그것도 조직적으로 한 단지에만 수천 명씩… 그런데 이런 단지가 캄보디안 내에만 50곳이 넘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금되어 있겠습니까? 그런데 각 나라의 부패한 정부와 권력자와 경찰과 군부가
뇌물을 받고 그 악마들의 뒤를 봐주고 있기까지 하고 있는 겁니다.

이들 집단은 모두가 불법적인 돈과 누군가의 피가 묻은 돈을 선택하고, 스스로를 존귀한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래서 짐승보다 못한 악마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순간 여러 가지의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최고의 선택이냐? 최악의 선택이냐?’를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을 했느냐? 그렇지 않느냐?’ 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인가? 아닌가?’가 더 중요한 기준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앞에서 더 좋은 편을 선택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마음을 빼앗기지 마라.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한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근처에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다가 연중 몇 차례의 종교 절기에는 예루살렘을 방문해서 절기를 지키며 예배했습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800미터 내외의 높은 산 위에 있었던 도시였고,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계곡과 골짜기 뿐만 아니라, 높은 언덕과 여러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3km 정도 이전에 있었던 ‘베다니’라고 하는 마을에서 종종 휴식을 취하고, 식사도 하고, 복음도 전하셨습니다. 여기 세부에도 산들이 참 많은데, 세부의 관광지이기도 한 ‘Tops Hill’이 약 해발 600~700미터 고도의 전망대입니다. 그 꼭대기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면 그만큼 높이의 여러 산들이 계속 이어져 있는 세부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도 ‘시온산’이란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골짜기 하나를 둔 그 건너편에는 예수님께서 종종 기도하시던 ‘감람산’이 있고, 베다니는 그 산 위에 있었던 마을이었던 겁니다.

이 베다니에는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의 집이 있었고,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고, 그 성도들은 늘 예수님을 영접하여 극진히 섬기던 귀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날도 언니인 마르다가 예수님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게 된 것입니다.

39절을 보시면,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오신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곁에 잠시라도 더 머물고 싶었고, 예수님께 한 말씀이라도 더 듣고 싶은은혜를 사모함이 컸던 것입니다.

그런데 40절을 보시면,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마르다는 그 집의 안주인 이었고, 예수님과 제자들을 초청한 호스트 였기에 책임이 컸습니다. 우리 여자 집사님들도 집에 손님이 한두 사람만 와도 얼마나 분주합니까? 그런데 마르다 입장에선 지금 적어도 십여 명의 사람들이
다이닝-룸에 앉아 있고, 그 중엔 예수님도 계시니 안주인으로서 얼마나 손님들을 잘 대접하고 싶었겠습니까?

이 구절에서 ‘분주한지라’는 말은 헬라어 ‘페리에스파토 (περιεςπἆτο)’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사방에서 끌어 당기다’는 뜻입니다. 호스트로서 예수님과 제자들도 맞아야지, 음식도 준비해야지… 이렇게 바쁜데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서 맑은 미소를 띄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모습에 그만 감정이 폭발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예수님, 마리아한테 너도 언니 일 좀 도와 주어라고 말씀 좀 해 주세요’라며 불평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41절을 보시면,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우리가 볼 때에도 마르다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입니다. 만약 마르다의 요청과 같이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한 마디 만 해 주신다면, 지금의 이 갈등 상황은 끝나고 식사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나올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염려하고’라는 말의 헬라어는 ‘메림나스(μεριμνᾷς)’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과도한 욕구로 인해 어지럽게 분열된 심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40절의 마르다의 상태 ‘분주한지라(사방에서 끌어당기다)’는 말과 41절의 ‘염려하고’라는 말의 뜻과 같이 마르다는 이것도 잘하고 싶고, 저것도 잘하고 싶고, 여기에도 욕심이 나고, 저기에도 욕심이 나는…그런 심적 분열 상태라는 것입니다.

사실 공부든, 일이든 그것에 대한 욕심이 있는 사람이 뭐든 잘할 수 있고, 어떤 성과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뭐든 일이 맡겨질 때, 밤을 새서라도 최선을 다해서 그일을 해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도 약간은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도높습니다. 놀거 다 놀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도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하고, 사업도 성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전도서 1장 18절에서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지혜와 지식을 더할수록, 아는 게 많아질수록, 걱정도 많아지고, 번뇌도 많아지고, 근심도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업을 크게 벌리고, 꽤 큰 성공도 거두었는데… 이상하게도 사업을 작게 할 때보다 근심과 걱정은 더 많아지는 겁니다.

이것도 잘하고 싶고, 저것도 잘하고 싶은 마음은 ‘과도한 욕구’일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니깐 그로 인해 어느 정도 성과도 있고, 거기서 오는 어떤 성취감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염려와 근심과 걱정은 자꾸 더 커지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과도한 욕구에 따른 부작용이 항상 따르기 때문입니다.

밤낮 없이 가족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한 아빠들이 큰 성공을 거두고, 돈도 많이 벌기도 했는데… 정작 돌아보니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적어 노년기에 후회하기도 하고, 그 이후에 과로해서 쓰러지거나 큰 병을 얻기도 한다면… 과연 그 성공과 성취는 가족이나 나의 건강과 바꿀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요?

그래서 우리가 마르다처럼 뭐든 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은 때로 지혜롭지 못한 태도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뭔가에 마음을 빼앗겼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무언가에 의해 사방으로 끌어 당겨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와 같은 목회자나, 교회도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사역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교회가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 많은 사업을 벌이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교회 너무 많은 일들을 다 잘 하려고 하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 다닐 때, 어떤 교수님이 “여러분들이 나중에 목사가 되어서 목회하느라 바빠서 성경을 못 보는 일이 많을 겁니다.” 그러시는 겁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을 때, ‘아이, 목사님들이 성경을 못 읽다니… 말도 안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회를 해 보니깐 매일 성경을 보긴 하는데, 설교를 위해 보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깐 일을 위해서, 설교를 하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선 그 교수님 말씀이 틀린 말씀이 아니라
는 걸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목사가 되지 않았을 때, 성경을 보면서 은혜받고, 눈물 흘리고, 믿음의 결단을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던 그 시절이 얼마나 그리우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김 목사를 교회에 뺏겼구나. 목회에 뺏겼구나…’라고 생각하실 거 같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목사인 제가 세상적인 일을 하지 않고, 매일 교회에 출근하고, 매일 성경을 보고, 매일 교회 목회 사역만 하는 걸 부러워하시는 분도 있으실 거 같습니다. 물론, 저도 하나님께서 이 부족한 저를 선택하시고, 이 영광스러운 직분을 주신 것이 늘 감사합니다.

하지만, 일반 성도였을 때는 가끔 교회를 오거나, 매일 오더라도 한두 시간, 길어야 두세 시간 정도 교회에 오니…사실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하던 일들 다 내려 놓고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돌리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벌써 너무 행복했습니다. 교회 근처만 와도 흥분이 되기도 하고,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와 가슴이 뛰면서 예배당에 앉으면 주님의 안아주심이 느껴져서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이른 아침에 교회로 출근해서 밤 늦은 시간까지 하루 종일 교회에만 있으면(물론, 중간에 성도들도 만나고 심방하기도 하고, 다른 사역들도 있지만)… 과거 일반 성도였을 때의 그 은혜와 감동이 무뎌지는 겁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그 무덤덤하고 무뎌지는 나의 마음과 신앙이 되지 않도록 치열하도록 영적 싸움을 해야 합니다. 또 목사로서 사역을 해야 하지만 영적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얼마나 몸부림쳐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40일 기도를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행사나, 어떤 사역적인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금 진행되는 40일 기도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라는 주제로 저와 온 성도가 ‘예배’에 집중하고 있는 겁니다. 보통 <40일 특별 기도회> 같은 것을 시작하면, ‘기도 제목’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 40일 기도때는 우리 가정의 이런 기도 제목을 꼭 응답받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때로 그런 기도의 제목을 놓고도 기도하지만, 이번 40일은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우리 하나님께 40일간 찬양과 경배를 올려 드리자는 겁니다.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앞에 엎드리자는 겁니다.

2. 더 좋은 편을 선택하라.

제가 성도의 가정에 심방을 가기 전엔 꼭 하나님께 기도하고 저를 통해서 그 가정에 전하실 말씀을 받아서 갑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왜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이 말씀을 주셨는지 그것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우리 성도님의 가정도 그 말씀을 붙들고 다시 믿음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영적인 준비를 잔뜩 하고 심방을 가면, 보통 우리 성도님들이 크게 환영해 주시면서 극진하게 대접해 주십니다. 집 안도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고, 심방 받기 위해 따뜻한 차와 다과도 준비해 주시기도 하고, 어떤 가정은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하느라 반나절에서 하루 종일 음식을 준비하신 가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심방 예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우리 집사님이 ‘목사님, 잠깐 만요. 음식 준비가 좀 덜 되어서요.’라고 하면서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 거실과 주방을 오가며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고 있으면 저는 ‘오늘 주님께서 전하라는 그 말씀을 전하고 가야 하는데, 언제 예배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좀 기다리다가 ‘집사님, 그냥 적당히 하셔도 되요. 저 다 잘 먹습니다. 일단, 오셔서 예배드려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집사님이 극진히 대접하시고자 하는 마음은 너무나도 고마운데, 사실 저는 주는 대로 잘 먹지 그리 까다롭지 않은 식성입니다. 저에겐 우리 집사님 가정에 그 하나님의 말씀을잘 전달하고 가는 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우리 집사님이 마르다 같아 보입니다.

42절 말씀을 [메시지 성경]으로 보시면,
“마르다야, 사랑하는 마르다야, 네가 지나치게 염려하여 아무것도 아닌 이리로 흥분하고 있구나. 마리아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일을 택했다. 그러니 마리아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감정이 조절이 안 되고, 화가 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내 생각대로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잘 안되는 이유는 ‘그 많은 것을 내 힘으로 다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는 이것저것 다 하려고 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만이라도 잘 해내는 게 더 낫습니다. 그러면 이것저것 다 할 수 없으니, 그중에 ‘한 가지’를 한다면, 어떤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선택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일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의 NIV 영어 성경에서는 ‘only one thing(오직 한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한 가지’에 집중한 인물이 또 있습니다.

시편 27편 4절에서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One thing I ask of the LORD)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이 시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는 왕이었고, 그는 온 이스라엘을 통치해야 했고, 때론 장병들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저처럼 이 작은 교회 하나를 목회하는 것도 늘 시간이 부족한데, 한 나라의 왕은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하지만, 그가 바라는 것 ‘한 가지(One thing)’는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과 부귀와 명예와 즐거움보다
더 중요한 것 그의 평생의 소원 한 가지가 늘 하나님의 집에서 주님을 예배
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한 2년 전에 우리 아들이 ‘아빠, 아가파오 찬양팀의 보컬이 TV에 나와요.’ 그러면서 [싱어게인 3]라고 하는 가수 경연 프로그램을 보여줬습니다. 아가파오 찬양팀의 영상을 보면, 그 예배자들이 울면서 진심으로 찬양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 보컬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경연 프로그램에서는 ‘27호 가수’로 소개되었고, 이 경연에서 Top10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한 크리스천 컨텐츠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니깐, 어릴때부터 가수가 꿈인 소녀가 미국의 버클리음대까지를 졸업한 수재였는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가수가 되기 전에 예배자의 정체성을 너무 확실하게 받아서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예배자로 부르셨구나. 예배자의 정체성 위에 모든 게 세워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인터뷰에서 ‘롤모델’을 물어봤는데) 시편 27편의 다윗 같은 예배자로 끝까지 가고 싶다”라고 고백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 가수는 유명한 가수가 되고 싶은 마음도, 유명한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 모든 것들도 예배보다 앞설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무명 가수의 one thing은 유명 연예인도, 유명 가수도 아닌 ‘예배자’였던 것입니다. 그녀의 ‘더 좋은 편’은 ‘다윗 같은 예배자’였던 것입니다.

  1. 마음을 빼앗기지 마라
  2. 더 좋은 편을 선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