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게 된 예배자

마가복음 10:46~52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2000년대 초에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에서 제가 돌보던 60대 시안부 암환자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제가 그 할머니 둘째 아들하고 나이가 비슷해서 저를 아들처럼 사랑해 주시기도 하고, 목사로서 일주일에 한 번씩 심방하며 기도해 드렸기 때문에 교회 목사로서 얼마나 깍듯하게 저를 대해 주셨는지 모릅니다.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치료실에 들어가기 전 병원 복도에서 한 장로님의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하셨던 초신자였습니다.

그즈음에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가 크게 화재가 되어 노벨상 가능성까지 언급되기도 했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심방을 갔었는데, 우리 암환자 할머니께서 ‘목사님, 나는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해서 나도 암병 치료받기를 간절히 바라요’ 그러시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는 ‘논문 조작 논란’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어쨌든 벌써 2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그 할머니의 암치료에 대한 간절한 눈빛과 음성이 여전히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그 병에서 치료받고, 건강해진다는 것은 그에게 가장 큰 소망이며 꿈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맹인 거지 바디매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의 평생의 소원은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눈을 뜬다는 것을 절대 불가능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가 ‘나사렛 예수는 모든 병자들을 치료하고, 소경의 눈도 뜨게 해 주신다’는 소문을 듣게 됐는데, 때마침 그가 구걸하며 살던 여기고에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군중들의 웅성거림을 듣게 된 것입니다.

첫째, 간절한 만큼 부르짖으라.

우리의 인생에도 내 힘과 능력으로 절대 불가능한 문제와 상황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힘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어떤 종류의 능력으로도 불가능한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신 최상의 솔루션은 ‘부르짖는 기도’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7절을 보시면,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바디매오가 구걸하던 자리에서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르는 장면입니다. 바디매오란 이름은 ‘디매오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깐 바디매오는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고, 그래서 이름조차 제대로 짓지 않아서 ‘디매오의 아들’이란 뜻으로 그냥 ‘바디매오’라고 불려졌던 것입니다. 이름조차도 없고, 맹인이었고, 거지였고… 그의 삶은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이어서 48절을 보시면,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아마도 바디매오가 너무나도 처절하게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멸시하며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47절보다 더욱 크게 소리를 질러서 예수님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맹인이었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제대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감정의 표현은 표정뿐만 아니라 소리를 통해서도 전해지는 겁니다. 조금 기쁠 때는 살짝 미소를 짓지만, 정말 크게 기쁠 때는 크게 환호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일반적으로 반가울 때는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지만, 너무너무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는 환호부터 나옵니다. 부모님이 오랜만에 손주들 만났을 때 ‘아이고~ 우리 강아지들~’ 이런 식으로 두 팔 벌려 안아 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소리와 기도의 양과 열정만 봐도 그가 얼마나 간절한지를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는 겁니다. 정말 간절하면 그냥 1~2분 묵상기도하고 ‘기도 다 했다’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시시때때로 기도의 집인 성전을 찾아와 기도할 것이고, 기도를 시작하면 부르짖고, 신음 소리와 통곡 소리가 섞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간절한 만큼 부르짖어 기도해 보십시오. 군중의 시끄러운 소음을 뚫고 주님이 바디매오를 돌아보셨던 것처럼 부르짖어 기도할 때, 새로운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둘째, 모든 장애물을 돌파하라.

우리가 어려운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지만, 안팎으로 장애물이 없는 게 아닙니다. 바디매오가 맹인이란 것은 스스로를 여러 가지 제약 속에 둘 때가 많을 겁니다. ‘나에겐 불가능한 문제야. 나는 할 수 없어. 내 주제에 뭘 할 수 있겠어…’ 이런 내적 장애물들에 갇혀 있으면 그의 삶에는 어떤 좋은 일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외적 장애물들도 있는데, 48절을 다시 보시면,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당시 유대인들은 ‘장애인 죄가 많아 하나님 앞에 벌을 받아 장애인이 된 것이다’라는 시각이 있었기 때문에, 멸시의 대상이기도 했고, 또 거룩하신 예수님 앞에 그런 장애인이 나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부르던 바디매오를 많은 사람들이 꾸짖었던 겁니다.

바디매오를 꾸짖고 막아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외적 장애물이었고, 또 그가 맹인이었기 때문에 그 또한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큰 장애물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를 주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50절을 보시면,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만약에 누군가가 우리에게 ‘눈을 감고 10미터를 달려가라’고 하면,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습니까? 아마 주저주저 했을 겁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소리를 듣고, 주저하지 않고 거추장 스러운 겉옷을 내던지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을 향해 달려간 것입니다. 바디매오에겐 겉옷도, 맹인이란 장애도, 그를 꾸짖던 많은 사람들이라는 장애물도 돌파해 나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꿈과 비전을 향해 나아갈 때, 먼저는 간절한 만큼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로 준비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반드시 장애물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니 장애물들이 나타났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높은 산을 오르려면 극복해야 할 오르막이란 게 있는 것처럼, 여러분의 꿈을 이루는 데에는 반드시 장애물들이 있을 것이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내적 외적 모든 장애물들을 돌파해 나가십시오. 바디매오가 눈을 뜨듯 내 인생의 새로운 역사가 써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 첫째, 간절한 만큼 부르짖으라

• 둘째, 모든 장애물을 돌파하라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여러분의 꿈을 이루는 데에는 반드시 장애물들이 있을 것이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내적 외적 모든 장애물들을 돌파해 나가십시오.

오늘의 묵상: 나의 내적 외적 장애물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