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러질 때

시편 145:14~21

14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

15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16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

17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19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20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

21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히 송축할지로다

제가 필리핀에 한인교회 개척에 대한 비전을 받고, 5박 6일 일정으로 이곳 세부에 ‘땅 밟기 기도 & 정탐’을 왔었습니다. 그런데 도심 안에 특히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건물 임대료는 생각보다 비쌌습니다. 성도 한 사람 없는데 개척된 교회의 비싼 임대료로 인한 매달 지출에 대한 재정적 부담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곳의 어떤 한인 건축업자가 ‘목사님이 한국에서 2억 정도만 준비해 오시면, 땅을 장기 임대해서 교회 건물을 건축할 수 있으니, 임대료 걱정은 안 해도 될 겁니다.’라고 제안해 왔습니다. 처음엔 그 말에 솔깃했었지만,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데 그 제안에 대해 주님께서 원치 않으셨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성도들의 희생과 땀과 눈물이 없는 성전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우리가 너무 쉽게, 편하게 얻은 것은 그것에 대한 가치도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쉽게 교회가 세워진다면 저를 포함해서 과연 누가 새롭게 세워진 교회를 사랑하고, 그 가치를 알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돈으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믿음으로 세워져야 하고,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와 땀과 헌신을 통해 세워질 때, 그런 교회 안에 더 큰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쉬운 길이 아닌 더 힘들고 어려운 길을 선택했지만, 당시의 그 선택은 백번 생각해 봐도 옳았습니다. 때문에 저와 우리 성도들은 더 많이 기도해야 했고, 기도를 쉴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지금까지 왔던 것입니다.

시편 145편 14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45편]은 대표적인 찬양시입니다. 오늘 본문인 14절에서 21절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주님은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고,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한 자, 실패한 자, 억울한 자, 연약한 자, 병든 자… 그런 위기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붙드시고 일으키신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15절과 16절을 보시면,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

이 구절 뿐만 아니라 성경 여러 곳에는 ‘새가 먹을 것이 없어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을 때 그들을 위해 먹을 것을 예비 하신다(욥38:41, 시147:9, 눅12:24)’는 말씀들이 나옵니다. 배고픈 새의 부르짖음도 들으시는 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안 들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가난하고 궁핍한 상태와 상황이 왔을 때, 우리는 심령의 가난함을 경험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것은 그들이 자연스럽게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부르짖는 기도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18절 말씀에서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모든 가난하고 궁핍하고 실패한 자와 같은 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경외하는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0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

고 하셨습니다. 얼마 전, 극악무도한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64명의 한국인 피의자들을 본국에 송환해 왔습니다. 어떤 정신 나간 국회의원은 그런 범죄자들을 추가로 송환하는데 그걸 ‘구출해 왔다’는 식으로 발표했다가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정작 그 범죄 단지에서 구조해야 할 피해자들을 속히 구조하지 않으면 큰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20절에서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누구든 가난하고 궁핍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사람을 우리 주님께서는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심령이 가난해 질 수밖에 없는 상황과 문제를 만났다는 것은 영적으로는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쓰러졌을 때,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났을 때… 우리는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이들의 부르짖음과 간구를 반드시 응답하시고,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10대와 20대를 살아가면서 ‘내가 20대를 살아서 넘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건강이 약했고, 그때부터 60세를 바라보는 이날까지 건강이 아주 좋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해 한 해를 지나갈수록 건강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약해질수록 제 영혼과 저의 믿음은 주님을 더 갈망하고, 더 의지하고, 더 신뢰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는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고 있습니다. 비록 내가 약하나 이 약한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더 크게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약하여 쓰러졌을 때, 그 가난한 심령으로 부르짖고, 신뢰하는 이들을 주님은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큰 문제를 만나고, 어려운 시련을 만났지만 이제 주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여러분이 약하여 쓰러졌을 때, 그 가난한 심령으로 부르짖고, 신뢰하는 이들을 주님은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큰 문제를 만나고, 어려운 시련을 만났지만 이제 주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내가 쓰러져 있는 곳에 일하실 하나님을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