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자를 구원하신다

시편 149:1~5

1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2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

3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5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시편 149편] 역시 ‘할렐루야 찬양시’로 분류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1~5절을 통해서 ‘성도들과 성도들의 모임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한다’고 하면, 보통 CCM이나 찬송가, 복음성가 등의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찬송가로 된 노래는 누구나 부를 수 있지만, 참된 찬양은 오직 믿음을 가진 성도들만이 부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성도가 아닌 사람이 부르는 찬양은 그냥 멜로디가 붙은 노래를 불렀을 뿐인 것입니다.

1절을 보시면,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이 구절에서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새 노래’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세상의 노래가 아닌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와 성품을 노래하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므로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는 새로운 간증과 새로운 찬양이 계속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서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교회의 예배와 모임 등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 건물이 있고, 교회의 구성원들이 사회적으로 유력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곳은 참된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모이는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되어지지 않는다면 그곳엔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모이면 함께 찬양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은혜의 말들과 말씀들이 나누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곳에 계시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소그룹 모임이나, 예배의 이름으로 모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친하기 때문에 커피도 마실 수 있고, 식사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임 조차도 ‘성도의 모임’이란 사실을 잊지 마세요. 교회 교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남을 헐뜯고, 부정적인 얘기를 하고, 주식이나 코인과 같은 재테크 얘기나 하고, 더 나아가 음담패설을 하며 깔깔거리고 있다면… 그게 어찌 ‘성도의 모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서로에게 은혜가 되고, 덕이 되는 말이 넘치며, 찬양이 가득한 모임이라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성도의 모임인 것입니다.

2절과 3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이스라엘이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고, 시온의 주민(예루살렘)은 그들의 왕을 즐거워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춤추며, 악기로 연주하며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이 구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깐 ‘자기 백성’은 곧 ‘겸손한 자’와 동격인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겸손’이란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할까요? 여전히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내 판단이 맞기 때문에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그리고 복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때문에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이 미련해 보일 뿐이라는 겁니다. ‘예수 믿으면 죄 용서 받고, 구원 받는다’라는 복음을 들을 때 ‘그건 말도 안 된다. 어떻게 그걸로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뭔가 다른 걸 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내 생각에, 내가 보기엔, 내 판단으로는…’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잘 안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말에 대해서는 닫혀 있으면서 지나치게 자신의 주장만 옳다 생각하는 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무슨 의견과 생각을 말하면 그런 사람은 꽉 닫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변화되기 참 어렵습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서
“…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

하셨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자기 생각과 고집을 꺽지 못합니다. 하지만, 겸손한 자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삶 속에 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10절에서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앞에서 겸손 합시다.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높이시는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겸손한 자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삶 속에 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내 안에 여전히 내 생각과 고집을 꺽지 못하는 교만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