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0:1~17>
Breakthrough 40 특별저녁기도회(11)
팝스타 ‘저스틴 비버(Justin Drew Bieber, 1994)’를 잘 아실 겁니다. 13세살 때 데뷔해서 이른 나이에 세계 최고의 아이돌 가수가 되었습니다. 이제 24살의 저스틴 비버는 수천억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고, 그 재산은 날로 더 많아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인기와 영광과 부가 주어지다 보니깐 연예계의 망나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름 앞에 ‘악동’이란 수식어를 늘 달고 다니기도 했었습니다.
교통사고와 무면허와 음주운전, 난폭운전뿐만 아니라 흑인을 비하한다든가, 여러 차례의 폭행과 성매매와 마약까지… 특히 2013년, 2014년은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아 법정에서 재판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저스틴 비버는 그렇게 돈많고 유명한 악동으로, 망나니로 살아가다가 뉴욕 힐송교회의 ‘칼 렌츠(Carl Lentz)’라는 목사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밤늦은 시간까지 교제를 했는데, 저스틴 비버는 ‘그 날 용서 받고,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고 싶어 해서 칼 렌츠 목사님은 화장실 욕조에서 새벽 4시에 저스틴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2014년 세례 받은 이후 저스틴 비버는 성경공부와 신앙생활에 집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스틴 비버는 2015년 2천3백만 명의 팔로워가 있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당신이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는 가가 중요하다.”라는 글과 함께 힐송의 칼 렌츠 목사님과 찍은 사진을 게시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크게바뀔 수가 있습니다. 누구를 자주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생각을 공유하게 되고, 그 사람의 가치를 갖게 되고, 그 사람의 말과 행동 그리고 꿈이나 삶의 목적과 같은 것에도 영향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1절에서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악인의 자리에 머물며 그들과 손을 잡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것은 몰락과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되는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은 이스라엘을 바알 숭배 왕국으로 만들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수백 명의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을 국가에서 월급을 주며 우상숭배를 장려할 정도였습니다. 반면에 여호와의 선지자들은 그들의 칼에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선지자들은 박해로 인해서 동굴에 숨어 지내거나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아합과 그의 가문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열왕기상 21:21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그래서 그 심판의 도구로 북이스라엘 아합 왕의 아들인 요람 왕 시대에 군대장관으로 있었던 ‘예후’라는 사람을 심판과 혁명의 도구로 선택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예후는 북이스라엘의 요람 왕과 그와 손잡았던 남유다의 아하시야 왕을 죽이고, 엘리야의 예언을 하나씩 성취해 나가게 됩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라는 성이었습니다. 그 성에는 왕궁의 관리들과 함께 수도방위군이 주둔해 있었고, 말과 병거와 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예후가 그 성을 무력으로 빼앗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만약 그렇게 될 경우 그 혁명은 장기화될 수도 있고, 전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보게 될 것이고, 예후가 나중에 왕위에 오른다고 해도 수도인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왕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후는 정치적인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후는 백성들의 피를 보지 않으면서도 아합 가문에 속한 모든 정적들을 한꺼번에 숙청시킬 모략을 발휘하게 됩니다.
사마리아 성에는 아합의 아들(후손들) 70명이 왕족으로서 교육받고 훈련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교육하는 관리들이 있었습니다. 예후는 사마리아 성의 귀족들과 장로들과 왕자들을 교육하는 관리들에게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그 편지는 ‘너희들의 성은 견고하고, 말과 병거와 무기가 있으니…’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3절입니다.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의 아버지의 왕좌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
이 말은 아합 가문의 왕자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해서 왕으로 세우고, 예후의 혁명군과 한 번 싸워보자는 겁니다. 선전포고와 같은 편지였습니다. 그러면 정말 예후의 편지대로 싸울 수도 있고, 싸울 자신이 없으면 항복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후는 군대 장관이었고, 다른 군대장관들 역시 예후와 함께 그 혁명군에 가담되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에는 오직 수도방위군 만 있었기 때문에 사실 사마리아 성 입장에서 이 싸움은 승산 없는 전쟁이 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사마리아 성의 지도자들은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북 이스라엘의 요람 왕과 남 유다의 아하시야 왕이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의 지도자들은 예후에게 항복할 뜻을 전하고, 자신들이 예후의 종이라고 전하게 됩니다.
예후는 그들에게 다시 편지를 부치게 됩니다. 예후는 그들이 ‘하루 뒤까지 왕자 70명의 머리를 가져오면 그들이 예후의 편인 것을 인정 하겠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의 지도자들은 다음 날 아합의 아들 70명의 머리를 갖고 예후 앞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의 귀족들까지 혁명에 가담케 했고, 왕위를 이을 왕자들까지 모두 제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11절을 보시면,
“예후가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의 귀족들과 신뢰 받는 자들과 제사장들을 죽이되 그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생존자를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하셨던 말씀과 같이 아합 가문의 모든 이들은 예후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예후는 이제 수도 사마리아 성을 향해 가게 됩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한 무리를 만나게 됩니다.
13절을 보시면,
“예후가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하는지라”
그들은 남유다의 아하시야의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친분이 있었던 북이스라엘의 아합의 왕자들과 태후인 이세벨에게 문안하러 간다는 겁니다.
14절을 보시면,
“이르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 명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예후는 아합 가문과 손잡고 있었던 아하시야의 형제들 42명까지 모두 제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15절 말씀입니다.
“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가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지라 그의 안부를 묻고 그에게 이르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르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후가 끌어 병거에 올리며”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이란 사람과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1절부터 14절까지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안부를 묻고 그에게 이르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여호나답이 그 손을 잡으니 예후의 병거에 올려 그 혁명을 함께해 나가는 모습입니다.
여호나답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갈렙의 후손이었고, 엄격한 금욕주의를 실천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지키려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조상인 갈렙을 닮아 여호나답도 하나님 앞에 신실한 믿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35:18절과 19절을 보시면,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여호나답)의 명령을 순종하여 그의 모든 규율을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였도다. 그러므로 …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신실하게 살았던 여호나답과 그 후손들에게 축복하시고 있는 장면입니다. 하나님 앞에 영원한 축복을 받고 있는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와서, 예후가 이런 사람의 손을 잡은 것입니다. 예후가 대단히 신실한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후는 신실한 믿음의 친구를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변에 좋은 믿음의 사람을 두고 있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내가 부족해도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내가 흔들리고 어려울 때 영적으로 나를 붙들어주기도 하고, 기도해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영향도 받기도 하고, 조금 더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함께 신앙생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세속적인 사람하고 같이 있게 되다 보면 갖고 있던 믿음마저 까먹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에 있는 사람들하고 우리가 모든 관계를 단절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누가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들과 가까이 지내되 여러분들이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부정적 영향, 세속적인 영향을 받지 말고, 여러분들이 그들에게 거룩한 영향을 끼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악한 왕 아합의 가문이 어떻게 몰락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아합과 관계된 사람들, 그와 손을 잡았던 남유다의 아하시아 왕과 그의 형제들까지 비참하게 최후를 맞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절에서는 아합의 왕자 70명이 죽고, 11절에서는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 성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관계된 자들이 죽고, 14절에서는 동맹관계에 있었던 남유다의 아하시야의 형제들 42명이 죽게 됩니다.
그리고 17절에서는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에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예후와 여호나답은 아합의 가문 숙청을 마무리 합니다. 예후의 혁명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예후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였던 것입니다. 아합과 손잡은 모든 이들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아합과 손잡았다는 것은 아합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것이고, 아합의 행동에 동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때문에 그의 후손과 가문뿐만 아니라 남유다의 아하시야와 그 형제들까지 심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 북군의 지도자들이 모인 연회장에서 교회의 대표로 참석한 사람이 링컨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북군이 승리하게 해 달라고 온 교회가 날마다 눈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시 남북전쟁은 북군에게 불리하고 힘든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힘든 전쟁을 치르고 있는 대통령에게도 온 교회가 기도하고 있다니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링컨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항상 하나님 편에 서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오늘 본문은 아합의 가문의 몰락과 아합과 손을 잡았던 사람들까지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구와 손을 잡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 주변에도 우리가 잡지 말아야 할 손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을 잡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헛된 기도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항상 하나님 편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손을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