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지 말라”

<열왕기하 10:18~36> 
Breakthrough 40 특별저녁기도회(12)

요즘 우리나라 뉴스에 종종 올라오는 소식이  세계적인 명차 독일의 ‘BMW화재 사태’입니다. 꽤 값이 비싼 외제차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그래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타는 고급 승용차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독일의 명차 BMW 라는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어쩌면 누구나 안심하고 믿고 타는 차량일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값비싼 외제차가 잘 달려가다 평균적으로 한 주에 한 번 꼴로 불이 나는 겁니다.

‘EGR(배기가스순환장치)이라는 냉각장치 결함’이 그 원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지난 4월부터 많은 차들이 리콜 되어 EGR 냉각장치의 일부부품을 교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 27건의 BMW차량 화재사건이 있었는데, 그 이후 16건의 화재가 또 일어난 겁니다(59%). 그러니깐 사실 EGR이라는 장치에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파악했으면 그 중 일부부품만 교환하지 말고, 제대로 리콜을 시행하고, 장치 전체를 교체했다면 16건의 차량화재는 막을 수 있었던 겁니다. 괜히 이 일로 인해서 브랜드 가치에 큰 손상을 입게 된 것입니다.

물론 2015년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는 자동차 역사 130여 년 동안의 가장 큰 이슈로 평가됩니다. 자동차 역사 상 ‘희대의 사기극’으로 불리는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었습니다. 이건 그냥 결함 정도가 아니라, 폭스바겐측에서 아예 특별한 장치를 달아서 배출가스 테스트 할 때만 배출가스를 낮추어 환경기준을 통과하도록 했고, 일반 주행 중에는 디젤 배기가스가 기준치의 40배나 발생했다는 겁니다. 폭스바겐은 당시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막 세계1위를 차지했던 회사였습니다. 그런 회사가 전 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사기극을 벌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약 1100만대의 폭스바겐과 아우디 차량의 보상과 리콜이 이루어져야 했던 사건입니다.

그래서 당시 독일의 최대 일간지였던 ‘빌트’에서는 리콜과 벌금 등 사태 수습 비용으로 최대 76조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당시 폭스바겐은 친환경을 모토로 그리고 클린 디젤을 내세워 소비자들에게 마케팅을 했고, 그것을 통해 토요타를 제치고 세계 판매 1위를 차지한 직후에 이런 사건이 터졌던 것입니다. 그 조작사건 때문에 폭스바겐은 심각한 브랜드 가치의 손상을 입었고, 천문학적인 재정적 손실을 입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보면 때로는 타협할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 간에 어느 정도의 타협점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개척 초기 때부터 기도하는 제목 하나가 “빠른 길이 아닌, 바른 길을 가게 하소서” 라는 겁니다. 폭스바겐이 토요타를 제치고 1위 하려고 편법을 썼었던 겁니다. 그러나 빠른 길이라고 그 길이 옳은 길은 아닐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빠르게 가려다가 그 길이 몰락의 길일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금 느리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바른 길을 가는 것이 우리 크리스천들이 살아가야 할 방식인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었던 예후는 거의 성공적으로 혁명을 완수하게 됩니다. ‘혁명(革命)’이란 말의 사전적인 뜻은 “권력이나 조직 구조의 갑작스런 변화.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법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이다.”

예후는 혁명을 통해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예후의 혁명은 북이스라엘에서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된 바아사나 시므리 같은 사람의 혁명과 약간 다른 게 한 가지 있다면, 정치적인 혁명과 함께 종교적 개혁이 함께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예후가 정치적으로 탁월한 전략가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제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래서 예후는 아합의 후손들을 깨끗하게 숙청함으로 정치적인 혁명을 완수한 뒤 종교적 개혁과 혁명 작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래서 18절을 보시면,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북이스라엘은 아합 왕조가 통치하던 48년간 바알우상숭배 국가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바알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통해 활개를 치고 있었습니다.

탁월한 전략가였던 예후는 바알 선지자와 제사장들을 한꺼번에 소탕할 계략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왕 예후의 정치적 성향을 잘 몰랐던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지만 예후는 많이 섬길 것이다’라고 선포하고 소문이 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19절부터 27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예후는 나라 안에 있는 모든 바알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소집하고, 바알 신 앞에 대규모 제사와 대회를 연다고 공문을 내려 보냅니다. 그리고 바알 선지자와 제사장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그 사람의 목숨을 살려두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전국의 바알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수백명 이상의 사람들이 바알신당에 모두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알 신 앞에 제사를 드리게 하고, 예후는 믿음의 사람 여호나답과 함께 그 모든 과정을 진행합니다. 그 때 예후는 80명의 무사들을 바알신당 밖에 배치해 두고, 제사가 마쳐졌을 때 80명의 무사들을 신당 안으로 들여보내면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중에 한 사람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모두 죽이라 명령하게 됩니다.

그리고 26절, 27절을 보시면,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예후는 바알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제거하고,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불사르고, 제단을 헐어버리고, 그곳을 변소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시편 115:4~8절에서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예후가 우상과 우상의 신당을 변소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어떤 우상들이 있다면, 그것은 배설물과 같이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는 것, 더 사랑하는 것, 더 마음에 가득한 것…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우상들인 것입니다. 시편 115편에서는 우상이 헛된 것인데, 그 헛된 것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 역시 허무함 밖에 안 남게 될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후는 이렇게 48년간 바알 왕국이 된 북이스라엘로부터 바알을 거의 완전히 멸하였습니다.

그런데 29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예후가 엘리야를 통해 그리고 엘리사를 통해서 주어진 아합 왕조의 심판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바알 우상숭배에 관한 종교적 개혁도 훌륭하게 해 냈습니다. 그런데 예후가 아주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한 가지를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 왕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말년에 범죄하고 타락하자 이스라엘은 둘로 쪼개지게 된 것입니다. 남유다는 솔로몬의 아들이 차지하고,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란 사람이 왕으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몇 가지 약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과 나라가 여호와 신앙의 토대 위에서 시작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남자들은 매년 적어도 3번씩 남유다 지역에 있는 수도 예루살렘 성전에 나가서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니 여로보암 왕 입장에서는 불쾌한 상황이 된 겁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의 신실한 사람들이 절기 때만 되면 남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넘어가 절기를 지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으로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 된 겁니다.

그래서 여로보암 왕이 만들어 낸 것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북이스라엘의 북쪽 끝인 ‘단’이란 지역과 남쪽 끝인 ‘벧엘’이란 곳에 우상의 제단을 설치한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너희를 인도한 여호와 신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멀리 남유다의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라고 영적인 타협을 했고, 그것은 여호와 신앙의 변질과 타락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거의 지난 100년 동안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변질된 신앙에 물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후가 여호와 신앙과 완전히 다른 바알의 우상은 철저하게 제거했지만, 금송아지 우상은 그것이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있었기 때문에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섬겼던 것처럼 계속 그 우상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후 입장에서도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았던 거 같습니다. 바알 우상은 무너뜨렸지만, 금송아지까지 제거하면 정권이 위태해 질까봐 그것까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30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예후가 하나님의 명령을 착실하게 따라, 아합 왕조를 멸하고, 바알 우상숭배를 멸한 것에 대해서 그 공로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왕조 중에 유일하게 총 5대를 더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다른 왕조들의 역사는 모두 짧았는데, 예후 왕조는 무려 100년간을 이어갔었던 겁니다.

그러나 31절을 보시면,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예후는 정치인이었습니다. 정치적인 전략이 뛰어났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의 공로가 크지만 그는 정치적인 타협을 했는데,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복들이 찢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32절부터 36절까지 보면, 아람의 하사엘 왕이 북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요단강 동쪽 땅들을 대부분 아람 왕에게 빼앗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영적 타협, 믿음의 타협이란 겁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되 온전하게, 완벽하게 하기 보다는 여러 가지 계산을 하다가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겁니다. 세상과 믿음 사이에서 타협하는 겁니다. 내 욕심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타협하는 겁니다. 분명 온전히 순종해야 하는데, 그것은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여전히 내 욕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겁니다.

예후가 종교적 개혁을 시행하려면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까지 제거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제거하지 못했던 겁니다. 만약 예후가 타협하지 말고 온전히 순종했다면 그의 왕조가 4대, 5대가 아니라 그 이상 더 오랜 시간 동안 장수했을 것입니다.

내 앞에 보이는 욕심 때문에 보통 타협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내게 해가 되고 내게 주신 복을 걷어차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대형 교회들 중에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와 이슈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타협을 해서 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현재 7만 5천명의 성도가 나가는 온누리교회는 그런 문제들이 거의 없는 교회로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개척하신 故. 하용조 목사(1946~2011)님의 역할이 크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데 목사님께서 생전에 쓰셨던 책(‘우리는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꾼다’)에서 목사님의 아버님에 관한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은 부친을 기억하기를 “아버지는 철저한 예배자이셨다” 라고 하셨습니다.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온 가족이 남쪽으로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에 아침과 저녁으로 두 번씩 가정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예배드리고 성경 읽고 기도하는 일을 가장 우선에 두셨다고 합니다. 또 하 목사님의 아버님은 기도의 사람이셨는데,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기도하셨고, 기도수첩에는 100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고, 30개가 넘는 나라 이름도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하 목사님은 아버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는 너무 독하게 예수님을 믿으셨다.”

어쩌면 이런 가정, 이런 환경, 철저하게 예배하고, 독하게 예수님을 믿으셨던, 타협하지 않는 신앙 아래에서 목사님이 성장하셨기 때문에 한국교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인물이 되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40일 동안 진정한 변화를 이루기 원한다면, 신앙의 변화, 가정의 변화, 인생의 Breakthrough가 일어나기를 원한다면… 더 이상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철저한 예배자, 독하게 예수 믿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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