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13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2)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지난 11월 첫 주에 큰 태풍이 세부를 관통했습니다. 이번 태풍은 강풍과 함께 폭우가 동반되어서 저지대 지역에 사시는 주민들은 홍수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2021년 12월에 있었던 태풍은 폭우보다는 강풍으로 지붕들이 다 뜯겨지고, 전신주들이 다 넘어져서 지역마다 1~2개월 동안 전기와 수도가 다 끊겼었습니다. 이번에도 전기와 수도가 끊겨 아직까지 복구되지 못한 지역들이 많습니다.
태풍 다음 날, 교회 상황을 살펴보려고 아침에 교회에 도착해보니 역시 전기가 다 나갔고 캄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교회에 들어서자 ‘탁 탁 탁’ 소리와 함께 전등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배당 사진을 찍어서 ‘교회는 안전하고 방금 전기도 들어왔습니다’라고 단톡방에 사진과 메시지를 올렸더니, 집사님 한 분이 “와~ 이번에도 교회가 제일 먼저 (전기가) 들어왔네요! 감사합니다”라고 댓글을 올리셨습니다. 지난 2021년 12월 태풍 때도 교회 주변은 모두 최소 1~2개월 전기가 안 들어왔는데, 교회는 2~3일 만에 전기가 들어와 성도들이 교회를 피난처처럼 오셔서 핸드폰도 충전해 가시고, 얼음도 얼려 가시고 그랬었습니다.
한국에 계신 분들이야 워낙 사회적 인프라와 시스템이 안정적이어서 이런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세부는 지진이나 태풍처럼 자연재해가 있으면 전기가 끊겨서 불편한 상황들을 겪어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다가 전기가 들어오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한국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필리핀에서는 감사의 제목이 된 것들이 많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과 5절을 보시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장 1~3절을 통해서 ‘예수님은 말씀이시다’라는 사실을 말씀하셨는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참빛이시다’라는 사실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 어둠을 밝히는 전등 정도가 아니라, 4절에 보니깐 이 빛은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5절에서 사람들이 이 빛을 깨닫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빛이라는 것이 없으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빛이 있으니 책도 볼 수 있고, 걸어갈 수도 있고, 일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만약, 모든 빛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암흑천지가 된다면 이 세상은 엄청난 혼란이 시작되고, 모든 움직이던 것들은 정지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 가지 않아 모든 생명체도 죽게 될 것입니다. 모든 식물조차도 빛을 받지 않으면 살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천지 창조 셋째 날 모든 식물을 창조하신 다음, 바로 넷째 날 해와 달을 창조하시고, 그 빛이 땅 위에 비취게 하셨던 것입니다.
9절과 10절을 보시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우리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참 빛 되신 예수님이 각 사람에게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의 무지와 어리석음과 죄의 어둠이 드러나게 하셨는데, 사람들은 그것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모든 어둠을 드러나게 하신 참 빛 되신 예수님 역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눅5:4)”라고 말씀하셔서, 지난밤에 한 마리도 못 잡았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이 잡혔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이 율법 선생인 랍비 그 이상의 메시야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누가복음 5장 8절에서
“시몬 베드로가 이른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고기가 많이 잡혔다고 이런 고백을 하는 건 좀 생뚱맞아 보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참 빛’이시기 때문에 베드로가 이런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주님께서 빛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의 어둠이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그의 사역 말기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가 돕고 있는 빈민가에서 닭죽과 빵을 나눠주는데, 많은 아이들이 죽 담을 그릇을 들고 모였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곳엔 수도 시설도 없고, 제대로 씻을 곳도 마땅치 않다보니 아이들 중엔 씻지 않아서 몸도 얼굴도 머리도 더러운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까운 겁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 그렇게 보여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그렇게 더럽다 생각을 안 하는 겁니다.
죄가 드러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그 주님 앞에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죄인들끼리 더러운 사람들끼리 어울려 있으면 내 죄가 더럽고 수치스러운 것인지도 모르는 겁니다. 하지만, 참 빛 되신 예수님께로 가까이 더 가까이 가게 될 때, 우리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깨닫게 되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죄를 씻고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시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가까이함으로 찔림을 받고, 우리의 죄가 드러나 부끄럽다면 그 예수님을 영접하면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로 수치스럽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의 수치를 가려 주시는 것입니다. 매일 참 빛 되신 예수님을 가까이 하시길 바랍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하지만, 참 빛 되신 예수님께로 가까이 더 가까이 가게 될 때, 우리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깨닫게 되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죄를 씻고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매일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