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 하신 예수

요한복음 1:14~18

이틀에 걸쳐 살펴본 1~13절까지에서 예수님은 ‘말씀이신 예수님’, ‘참 빛이신 예수님’이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14~18절까지에서는 ‘성육신 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에서 가장 명확하게 말씀하시고 있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복음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교리이며,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오경을 믿는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라고 할 수 있는데, <유대교>는 ‘아직 유대인의 메시야가 오지 않았다’라고 믿고 있고, <이슬람교>는 ‘예수는 뛰어난 선지자 중 하나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마호메트(무하마드)만이 마지막 선지자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때문에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모두 모세오경은 믿지만, 그 외의 구약 성경에 대해서는 선택적으로 취하거나 버리고, 신약성경은 아예 믿지도 않습니다.

또 신구약 성경을 모두 믿는다 할 지라도 초대교회와 사도시대에 있었던 이단인 ‘영지주의(靈知主義 : Gnosticism)’에서는 ‘가현설(Docetism)’을 주장했는데, ‘예수님은 외견상으로 사람으로 보인 것뿐이지, 실제로 육신을 입은 것이 아니라’는 이론입니다. 왜냐하면 영지주의 자체가 사람의 육신은 악하고, 오직 영적인 것만 순결하다는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더러운 육신을 입은 사람이 될 수 있느냐?’라는 주장입니다. 그럴듯하지만 틀렸습니다.

14절 말씀을 보시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시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겁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은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사람의 몸을 띤 어떤 환상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가현설 : Docetism)’는 말씀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에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피곤하기도 하셨고(4:6)’, ‘갈증을 느끼기도 하셨고(4:7)’, ‘슬퍼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고(11:35)’, ‘분노하기도 하셨고(11:38)’,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갈등하기도 하셨고(12:27)’, ‘고통과 죽음도 당하셨습니다(18, 19장)’. 그러니깐 실제 참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느끼고 격을 수밖에 없는 일들을 겪으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8절을 보시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고,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지만, 그 주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인 사람의 모양 즉, 성육신 하신 이유는 십자가에 죽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 말씀에서
“…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즉, 우리의 죄는 그냥 용서받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과 피흘림과 죄의 대가인 사망(죽음)을 당할 때 용서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이 되신 이유는 ‘우리를 위해 죽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서는 신이시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었기에, 친히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신 예수님, 하나님이신 예수님, 빛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어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사람이 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죄는 그대로 우리가 져야 할 형벌로 남아 있었고, 우리 중 누구도 죄사함과 구원과 영생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신이 복음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참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위해 대속하신 이 복음을 믿지 않는 곳에는 ‘사죄함’도, ‘구원’도, ‘자녀됨’도, ‘영생’도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유대교에도, 이슬람교에도, 영지주의자들에게도 오늘 날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여러 이단들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16절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이 구절의 하반절에서 ‘은혜 위에 은혜(NIV : one blessing after another)’라는 말은 ‘은혜 대신에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한 번 받은 은혜가 그 능력을 다 발하고 나면 또 다른 은혜를 받게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으며, 구원하지 못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종교는 구원에 있어 ‘조건과 자격과 공로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Jesus All)’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어도, 공로가 없어도 예수님의 그 십자가 보혈 의지하여 죄사함과 구원과 자녀됨과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종교는 구원에 있어 ‘조건과 자격과 공로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Jesus All)’한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성육신을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