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요한복음 1:19~28

오늘 본문은 ‘신약의 엘리야’라 할 수 있는 ‘세례 요한’에 관한 기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사역자, 목회자, 성도들이 롤모델로 삼아야 할 봉사자의 자세를 세례 요한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장 5절을 보시면,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제사장이었고, 어머니 엘리사벳도 모세의 형이며, 광야 시대의 첫 대제사장인 아론의 자손이니 부부가 모두 제사장 가문이었던 겁니다.

엘리사벳이 나이 많아 임신을 포기하고 있던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태어난 아이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의 어머니가 될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친족이었으니, 예수님과 세례 요한 역시 친족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시기 적으로는 세례 요한이 6개월 먼저 태어나게 되었고, 어린 시절 예수님과 친분이 있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훨씬 이전에 세례 요한은 유대 사회에 영적인 센세이션(sensation)을 일으켰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세례 요한의 제자가 되는 사람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때 유대의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엄한 율법 학파인 바리새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서 ‘요한이 누구며, 무슨 자격으로, 누구 허락을 받고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지’ 물었던 것입니다(1절). 약 6천 명의 바리새파 사람 중에는 국회 격인 ‘산헤드린 공의회’의 회원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 사회의 종교적,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20절과 21절을 보시면,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예수님의 탄생까지 약 400년 동안 이스라엘 땅에는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낙타 털 옷을 입고(마치 엘리야 선지자처럼)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사람이 세례 요한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신명기 18장 15절과 말라기 4장 5절에서 메시야의 탄생에 대해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신다’는 의미의 예언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던 바리새파 사람들은 ‘혹시 세례 요한이 그 엘리야 인지? 메시야 인지’를 궁금해했던 겁니다. 하지만, 20절부터 21절까지 세례 요한은 세 번에 걸쳐 자신은 그들이 찾는 메시야가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는데, 이사야 40장 3절과 4절을 보시면,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세례 요한의 사명은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는 소리’였습니다. 광야라는 곳처럼 사람들의 마음이 영적으로는 황량하여 메마른 상태였다는 겁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일을 해야 했던 겁니다. 마음의 상태, 영적인 상태가 골짜기와 같고, 산과 같고, 비포장 도로와 같이 고르지 않은 길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는 겁니다. 마음에 상처와 아픔이 있고, 열등감과 좌절과 실패 속에 머무는 이들도 있고, 높은 산과 같은 교만과 거만한 이들도 있고, 죄로 인해 그 영혼의 상태가 고르지 않은 비포장 도로와 같은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죄 사함의 세례를 통해 그 마음과 영혼을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에서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이 구절에서 세례 요한이 자신을 소개하기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는데, 그의 사명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처럼 자신의 존재는 공중에 흩어져 사라질 지라도 그로 인해 예수님이 드러나시고, 사람들이 그 예수님을 믿고 돌아오는 것이라 확고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따랐습니다. 그러면 그 인기와 영광과 부를 세례 요한도 누리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사람은 변화되야 할 것은 잘 변하지 않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마음은 변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드리기로 작정한 저와 같은 목사님들도 이 땅에서 너무 편안하고 안락하고 영화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면, 천국을 사모하지도 않고, 예수님은 사라지고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더 나타내려 하는 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안 됩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풍요해 질수록 이 땅의 풍요로 인해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라는 찬양을 많이 하고, 이 세상에서의 삶이 고달플수록 천국을 사모하며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라는 찬양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되 잠시 잠깐 머무는 나그네처럼 살아야 할 것이며,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감추어지고 오직 예수님만 드러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되 잠시 잠깐 머무는 나그네처럼 살아야 할 것이며,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감추어지고 오직 예수님만 드러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