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7~10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1)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태어나 보니 예쁘고 잘생긴 외모를 갖고 있거나, 금수저를 물고 나온 사람도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 속에 출발부터가 불리하고 힘겨운 사람들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회에 나가보면, 세상은 잘나고 뛰어난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그런 사람들을 선택하기 때문에 결국 그런 사람들만이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지선 씨’는 대학 3학년 때, 음주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전신 55%에 중화상을 입었고, 여덟 개의 손가락을 절단하고, 얼굴도 수십 번의 수술로 완전히 다른 얼굴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역경을 믿음으로 극복하며『지선아 사랑해』란 책을 통해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줬습니다. 그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대, 컬럼비아대, UCLA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17년부터 한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2023년부터는 모교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지선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은 끝이 없는 동굴이 아니라 끝이 있는 터널이다”
혹여라도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었더라도 모든 게 다 끝난 것처럼 좌절하지 마십시오. 터널처럼 끝이 있습니다.

목사님의 아들인 ‘닉 부이치치(Nick Vujicic, 1982)’는 선천적으로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조건이 나쁘다, 환경이 안 좋다, 가진 게 없다…’라고 말하지만, 이 사람 앞에서 그런 말 할 수 있겠습니까? 닉 부이치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는 전도자요, 강연가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겐 팔도 없고, 다리도 없지만, 한계도 없다!”
그는 팔과 다리가 없어도 날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최고의 장애는 당신 안에 있는 두려움이다!”
두 팔, 두 다리 멀쩡하고 건강해도 마음에 장애가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진짜 장애가 아닙니다. 닉 부이치치가 강연을 할 때, 꼭 두꺼운 성경책을 갖고 나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시범을 보여줍니다. 팔과 다리가 없으니 머리로 두꺼운 성경을 딛고 힘겹게 다시 일어서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약한 자는 쓸모없다’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약해도 쓰임 받을 수 있다. 이 말씀을 믿어라! 이 말씀이 너를 강하게 할것이다!’라고 닉 부이치치는 말하고 있는 겁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약해도, 가진 게 없어도, 잘난 게 없어도, 부족해도, 심지어 죄가 많아도 쓰임 받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중에 그런 예들이 두드러 지게 많은 것은 그냥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한 자를 쓰신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나를 봐라! 약해도 쓰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이유
고대 그리스의 남부 항구도시인 고린도에 있었던 [고린도 교회]에는 방언과 병고침과 같은 영적 은사들이 많이 나타났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였지만, 바울이 없는 사이에 거짓 사도와 같은 이들이 들어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신비주의적인 것에 치우치게 만들었
던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14년 전에 천국에 이끌려 가서 놀라운 계시의 말씀들을 듣고, 봤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난 14년 동안 자신이 천국에 이끌려 가서 봤던
그 놀라운 일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성도들에게 언급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떠나 신비주의 신앙에 빠지거나 혹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에게 집중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신비한 일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런 것에 치우치는 것은 성도들의 믿음을 병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5절을 보시면,
“내가 …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유튜버를 통해 활발히 활동하는 ‘박혁 전도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1993년생인데, 병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여러 가지를 예언하는 사역과 집회를 이어갑니다. 바울 사도가 말했듯이 그런 게 없다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조차도 그런 부분이 강조될 때,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중할까봐 그 놀라운 영적 경험도 14년 만에 부득불 언급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종교 유튜버가 하고 있는 일은 얼마나 위험합니까? 복음을 변질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그 유튜버에 집중하게 될 겁니다. 100% 사이비-이단으로 발전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5절에서 ‘자신의 약한 것들만 자랑하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을 보시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이 받은 계시와 그가 경험한 일은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만에 빠질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가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그의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바울에게 있었던 ‘육체의 가시’를 안질이나 간질병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바울은 건강의 문제 때문에 늘 고통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7절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라는 부분을 보면서,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고통을 주신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에덴의 낙원에서 쫓겨난 이후 우리 인간들은 늙고, 병들고, 여러 가지 인생의 고통을 겪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죄인인 우리 인간 중에 이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시련과 고통 그리고 질병 또는 재난과 사고는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죄인이 되면서 스스로 그 고난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것이 아니라, 때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안에서 그 고난을 허용하시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일부러 고난을 주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일부러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시지 않는 겁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는 우리에게 어떤 고난을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팀 켈러(Timothy James Keller, 1950~2023)’의 말을 잠시
소개했었는데, 같은 책(Prayer)에서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거룩한 뜻에 어긋나는 일을 허락지 않으시며, 그 뜻에는 멀리 내다봤을 때 우리에게 가장 선한 것들이 포함된다.”
그러니깐 우리의 삶에 때로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시지만, 거기엔 분명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들어 있는 것이고, 더 멀리 내다볼 때 거기엔 하나님의 가장 선한 계획과 선물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왔는지,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왜 나만 이렇게 억울해야 하는지… 모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 중에 우리가 굳게 붙들고 있어야 할 믿음이 하나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셨다면, 거기엔 분명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계획과 선물이 있을 것이다’는 겁니다.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개미가 우리 인간의 생각을 다 헤아릴 수 없듯, 하나님의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우리의 작은 마음으로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내 작은 머리로 하나님의 그 큰 계획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팀 켈러가 이런 말도 했습니다.
“크리스천은 바라는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계획을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다만 그분의 거룩한 뜻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12년이 넘도록 같은 상가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년에 한 번씩 재계약을 연장하면서 (감사하게도 임대료가 그리 많이 오르지 않은 상태로) 12년을 사용했고, 올해 초에도 4년 연장 재계약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물주가 ‘이 빌딩을 매각하려 하고 있고, 새로운 주인은 낡은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 할 계획이라 앞으로 1년만 계약 연장을 해 줄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년 연장 재계약을 했습니다.
그래서 1년 뒤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교회 공간을 찾아 성전 이전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2년 사이에 교회 주변 임대료가 갑절은 오른 겁니다. 그리고 땅값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올라서 주변 어디에 땅을 구입해서 성전 건축을 하는 것도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주님 께서 제게 “40일 기도를 다섯 번 하라”고 감동을 주셨습니다. 저와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40일 기도를 시작했는데, 그 첫 주에 건물 오피스로부터 ‘내년 계약을 끝난 뒤 2년 정도 더 연장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장 1년 뒤에 이사해야 할 줄 알았는데, 40일 기도하자마자 추가로 2년 그러니깐 총 3년 동안 연장이 가능해진 겁니다. 조급하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두 번째 40일 기도를 시작하는데, ‘성전 이전을 위한 특별기도…’ 뭐 이런 종류의 기도가 나오지 않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라는 주제에 온 교회가 마음을 집중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에 성도들이 얼마나 은혜로 충만해지며, 교회 가운데 성령으로 충만해졌는지 모릅니다. 많은 성도들도 새롭게 등록하시기도 했구요. 제가 지난 13년 동안 우리교회를 목회하면서 이렇게 충만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기도회에 참석하는 성도의 수도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때로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가 바라는 대로 상황이 흐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왜 주님은 내게 고난을 주셨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주님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그 고난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시게 될 것입니다.

2. 약한 데서 온전해지는 능력
어느 누구도 약한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이 약하면 선택받을 수 없고, 쓰임 받을 수 없고, 실패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세상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똑똑해지려고, 더 강해지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선택받을 수 있고, 쓰임 받을 수 있고, 성공하게 되고, 결국은 이 세상의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시면,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육체의 가시, 고질병, 난치병 혹은 불치병’은 그를 늘 괴롭히는 문제였습니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성도들의 병은 기도함으로 치료해 주는데, 오히려 자신의 병은 못 고치니 성도들이 ‘어? 왜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있는 병은 못 고치나?’라는 의문의 눈초리가 있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그 병을 치료해 달라고 ‘세 번 주께 간구했다’는 것인데, 보통 성경에서 숫자 ‘3’은 완전수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고쳐 주실 때까지 끈질기게 계속 기도했다는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응답을 받았는데 9절을 보시면,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주님, 이 병 때문에 너무 힘이 듭니다. 성도들 앞에서도 부끄럽습니다. 그러니 제발 고쳐 주세요’라고 기도했지만,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즉, ‘NO : 거절하셨다’는 겁니다. 바울은 사도와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자신의 삶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그를 치료해 줄 이유와 조건이 충분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독일의 신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일러(Fredrich Heiler, 1892~1967)’
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 일의 결과를 조절하셔서 믿음과 오류가 뒤섞인 성도들의 기도가 허사로 돌아가지 않게 하신다.” (Heiler, Prayer : A Study, 5.)
우리의 기도는 하일러의 말과 같이 ‘믿음과 오류가 뒤섞여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크고 깊고 넓은 선하신 계획에 따라 일하셔서 성도의 기도가 믿음과 오류가 뒤섞여 있다 할 지라도 그 기도가 허사로 돌아가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현상적으로는 바울의 기도를 거절하셨지만, 그 기도가 결코 허사로 돌아가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곤 하신 응답이 9절에서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이번에 태풍으로 크게 피해를 입은 빈민촌 한 곳에 잠시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갑작스럽게 불어난 물에 속수무책으로 큰 피해를 입은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은 한국의 큰 단체에서 파송받은 선교사님이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선교사님께 연락해서 함께
방문해 여러 가지 안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안내를 받으면서 ‘우리가 무엇을 도와야 할까…’를 생각하며 교회로 돌아왔는데, 몇 시간 뒤에 ‘또 다른 지역에도 큰 피해를 입었는데 아무도 도와 줄 사람도, 단체도 없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좀 전에 방문했던 곳은
그래도 큰 단체에서 이미 도와주고 있지만, 이곳은 정말 아무도 도와 줄
수 없을 거 같은 겁니다. 정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은 어쩌면 이런 곳이란 생각이 들어서,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정말로 나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게 되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시는 것입니다. 약하고 가난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의 손을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흘러 들어오게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강할 때(잘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눈이 멀었을 때, 그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가 ‘나는 실패했다’고, ‘나는 끝났다.’고, ‘나에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 주님은 그의 손을 잡아 이끌어 주셨던 것입니다.
내가 강하면 강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나를 통해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없었다면 그는 교만해졌을 수도 있고, 영적으로 나태해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육체의 가시 때문에 그는 평생 겸손할 수밖에 없었고, 늘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
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주님은 바울을 통해 더 크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10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바울은 약했고, 선교를 하면서 온갖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그에게 더 크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약해야 하나님 앞에 쓰임 받게 되는 놀라운 비밀이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약함이 있다면 기뻐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일하실 시간이 되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영광을 받을 때가 온 것입니다. 이제 나의 쓰러진 빈 그릇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것을 채우실 때가 된 것입니다.

-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이유
- 약한 데서 온전해지는 능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