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주목한다

요한복음 1:47~51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30년간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사시다가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부터 메시야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시게 됩니다. 세례받으신 다음 날, 예수님께서 안드레와 베드로 형제를 만나시는 장면이 나오고, 그리고 그다음 날엔 빌립을 제자로 부르시고, 빌립은 친구인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과 나다나엘의 만남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에 ‘바돌로매’와 동일인으로 성경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그 원대한 구속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하셨던 첫 번째 일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저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교회를 개척해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지만, 목사가 아무리 설교를 잘하고 여러 가지 능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충성되고 헌신된 성도 한 사람이 없다면 교회는 잘 세워져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충성되고 헌신된 믿음의 사람 한 사람을 세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많은 목사님들이 공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원대한 꿈의 시작을 한 사람의 제자를 부르시는 것부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47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친구인 빌립의 전도로 나다나엘이 예수님께로 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나다나엘은 진실되고 거짓이 없는 좋은 성품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48절을 보시면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늘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알아보신다는 것에 깜짝 놀라며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빌립과 나다나엘이 만나기 전부터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던 나다나엘을 주목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49절을 보시면,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이 짧은 만남에서 나다나엘이 얼마나 예수님에 대해서 깊이 깨닫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다나엘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로서 이스라엘의 임금이시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50절과 51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시면서 50절에선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고 하셨고, 51절에서는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 ‘키 워드(Key word)’는 ‘보다(see)’라는 동사입니다. 오늘 본문 다섯 구절 안에 이 단어는 다섯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47절)

– 네가 부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48절)

– 내가 너를 부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50절)

–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50절)

–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51절)

‘사람이 무엇을 바라본다’는 것은 ‘관심’을 뜻합니다. 무관심하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지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혹은 그 사람에게 자꾸 눈길이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곳을 향해 점점 가까이 가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전에 잠시 간증했지만, 제가 일이 있어서 들렀던 대형 쇼핑몰에서 일을 보고 차를 몰고 나오는데, 원래 늘 가던 방향에 차가 너무 많이 막혀 있어서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꺽어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화려한 쇼핑몰에서 1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뻘 위에 수상가옥들이 즐비한 게 보이는 겁니다. 그런 곳에 판잣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필리핀에서도 가장 가난한 계층의 빈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집에 돌아왔는데도 아까 봤던 그 수상가옥 빈민가가 눈에 밟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비전과 사명을 주실 때,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는 게 내 눈에 자꾸 보인다면 그것이 내게 주신 사명과 비전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그 빈민가를 정탐하고, 조금씩 그 지역에 봉사팀을 보내서 섬기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주목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셨고, 그에게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 주목하신 것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기 전부터, 나다나엘이 예수님께로 오기 전부터 예수님은 그를 주목하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때에도 주님은 나를 주목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나를 주목하신다는 것은 나를 도우시고,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는 겁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것 같은 순간에도 주님은 나를 주목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나를 주목하신다는 것은 나를 도우시고,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는 겁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것 같은 순간에도 주님은 나를 주목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오늘의 묵상: 여전히 나를 주목하고 계신 주님을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