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6~12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1)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한 마리아는 잔치가 한창일 때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잔치를 망칠 수도 있는 혼주를 돕기 위해서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그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종들에게는 5절에 보니 “너희에게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해놓았습니다.
7절과 8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유대인들은 외출했다 집으로 들어오거나 혹은 오늘 본문의 상황처럼 타인의 초대를 받아 그 집에 들어갈 때 항상 ‘정결 예식’을 행했습니다. 그 집 입구에 있는 물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손과 발을 씻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위생적인 측면도 있지만, 밖에서 뭍은 더러운 죄를 씻는다는 의미도 있었던 겁니다.
6절에 의하면, 그 잔칫집에도 ‘정결 예식에 사용되는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셨고, 종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군말 없이 물을 항아리 아귀까지 즉 가득 채웠다는 것입니다.
여기 필리핀에서 식당이나 카페처럼 요식업을 하시는 한국 분들이 계십니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일도 빨리 빨리하고, 일의 효율과 능률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필리핀 직원들의 경우 일의 속도도 느리고, 일의 효율과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자세로 일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거의 매일 똑같은 교육을 반복하고 또 잔소리를 해야 일이 제대로 진행된다는 푸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일을 제대로 잘 해내는 직원 하나를 만나면 사장님들이 그 직원을 얼마나 예뻐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종의 역할은 참 쉽습니다. 종은 그냥 주인이 시키는 그대로만 하면 됩니다. 종은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내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주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면 그냥 채우면 되고, ‘이제는 갖다 주라’하면 갖다 주면 되는 겁니다. 그 물이 포도주가 되든지, 안 되든지… 그건 종의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종들이 ‘왜 물을 채워야 합니까? 왜 이걸 또 갖다 주라 합니까?…’ 이런 군말 없이 종으로서 ‘하라’하니 했더니 기적이 일어난 거 아닙니까?
저는 종으로 살기로 결정하니 마음이 참 편해졌습니다. 과거엔 종이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려니 모든 걸 내 힘으로, 내 선택과 결정으로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종으로 살기로 결정하고 매번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 하니깐 인생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가끔 내가 주인 노릇하려고 하는 못된 습성이 나오긴 하지만, 다시 정신 차리고 종의 자리로 돌아가서 종이 해야 할 일을 하니 참 좋습니다.
이것을 ‘주님께 내 몸과 마음과 삶을 맡긴다’ 즉 ‘전적 의탁(依託)’이라고 말합니다. 종으로서 내 몸과 마음과 삶을 맡기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이끌어 가시는 것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중의 하나가 제가 세부에 와서 교회를 개척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서 더 철저하게 훈련받게 되었습니다. 세부에 와본 적도 없고, 이민교회를 경험 해본 적도 없고, 담임 목회를 해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무슨 특출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저는 참 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중요한 부분까지 모두 하나님께 맡기는 전적 의탁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겁니다.
9절과 10절을 보시면,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종들이 물로 된 포도주를 연회장에 갖다 주니 그 전에 마시던 포도주보다 비교 안 될 정도로 최상품의 포도주를 맛본 사람들이 깜짝 놀란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믿기 전과 후의 나의 삶’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을 몰랐을 때 나는 아무런 소망도 없는 허무한 삶을 살았습니다.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허무한 삶의 특징은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일락을 좋아한다는 겁니다. 저도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인생의 깊은 어둠 속에 갇혀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 이후,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의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를 나누듯, 인생의 밤을 걷던 내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찬란한 빛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저뿐이겠습니까? 우리 교회 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이곳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거나, 신앙을 회복한 성도들을 보게 됩니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후의 모습이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맹물과 같은 인생을 최상품의 포도주로 변화시켜 주듯, 예수님께서 개입하시는 인생은 반드시 변화가 시작됩니다.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완전히 의탁하는 인생에는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예수님께서 맹물과 같은 인생을 최상품의 포도주로 변화시켜 주듯, 예수님께서 개입하시는 인생은 반드시 변화가 시작됩니다.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완전히 의탁하는 인생에는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 내 인생에 개입해 주시기를 묵상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