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요한복음 2:13~17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있었던 사건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은 일 년에 세 차례 꼭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해야 했는데, 그중 가장 큰 종교 절기가 이스라엘의 출애굽(해방)을 기념하는 <유월절>이었던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유대인이었고, 아마도 매년 그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었는데, 이번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메시야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한 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게 된 첫 번째 유월절이었던 것입니다.

14절을 보시면,
“성전 안에서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스라엘 땅 전역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오던 순례자들은 먼 거리에서 제물을 끌고 오기가 번거로웠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번제로 바칠 제물을 구입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제물이 합당한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제사장들 몫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아예 성전 뜰에 제물을 파는 상인들을 들이고, 성전 안에서 파는 제물들은 무조건 ‘합격’ 시켜줬던 겁니다. 상인들은 성전과 제사장들에게 큰 수수료를 냈고, 상인들은 질이 떨어지는 제물들을 비싼 값에 예배자들에게 팔았던 겁니다. 이런 것을 요즘 경제 용어로는 ‘독과점’이라고 말합니다. 소비자들이 독과점 기업의 질 떨어지는 제품을 어쩔 수 없이 높은 가격에 살 수밖에 없는 구조가 2천 년 전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그 사이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렸던 것입니다.

또 다른 성전 청결 사건 기록인 마태복음 21장 1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집, 예배의 집, 기도의 집, 거룩한 집을 인간의 이기심과 탐심을 채우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 ‘돈과 물질은 언제나 또 다른 우상(god)’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아니면 돈을 사랑하든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영리적인 비즈니스를 하면 안 되는 겁니다. 교회 자체가 정부에서도 ‘비영리 종교단체’로 구분하고 있는데, 어떤 수익을 목적으로 교회가 비즈니스같은 걸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돈이 끼면 교회의 순수함이 변질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우리 교회 성전 건축에 대한 아이디어를 하나 주셨는데, ‘땅을 하나 사서 그 위에 3~4층 빌딩을 짓고, 1층과 2층은 상업시설로 임대를 줘서 교회 재정 수익으로 잡고, 3층과 4층을 교회로 사용하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라는 얘깁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럴 듯 할 겁니다. 교회를 걱정하고 그런 아이디어까지 내준 게 고맙지만, 돈이 끼면 누군가가 그걸 탐을 낼 것이고, 반드시 다툼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교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완전히 종교를 가장한 비즈니스가 되는 겁니다.

정말 둘도 없는 어쩌면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더 가깝다 느끼던 아주 친한 친구 사이여서 동업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잘 되는 거 보셨습니까? 거의 대부분이 동업도 깨지고, 그렇게 친했던 친구도 잃게 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 중간에 돈과 이권 같은 것들이 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비즈니스를 해서 수입이 발생한다면 관계된 누군가는 그 이권을 노릴 겁니다. 그래서 아예 교회에서 비즈니스를 하면 절대 안 되는 겁니다. 교회는 재정이 어렵더라도 그냥 순수하게 성도들의 헌금과 도네이션을 통해서 운영과 사역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보시면,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제사장들이 성전 운영이 어려워서 그 일을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이제 그 성전이 장사하는 집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진노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예배보다, 예수님보다… ‘성전’이라고 하는 ‘종교단체’가 더 커지면 안 됩니다. 이 시대에도 예수님은 온데간데없고, 교회 자체만 점점 더 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눈에 보여지는 건물로서의 교회, 종교 단체로서의 교회,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 조직으로서의 교회가 강조되기 시작하면 예수님은 점점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보다 예수님이 더 높여져야 하고, 더 주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이 좀 과격하지만, 종교 조직으로서의 교회가 죽어야 예수가 사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눈에 보여지는 건물로서의 교회, 종교 단체로서의 교회,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 조직으로서의 교회가 강조되기 시작하면 예수님은 점점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보다 예수님이 더 높여져야 하고, 더 주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나의 신앙을 통해 어떻게 예수님을 더 높일 수 있을지 묵상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