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정신(Frontier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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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1~9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1492년, 스페인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롬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에 의해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된 이후,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했습니다. 특별히 오늘날의 미국은 북아메리카의 동부 13개 주를 포함해 1776년에 건국됩니다. 그 이후로 미 대륙의 중서부에 해당되는 영토를 영국과 프랑스와 스페인과 멕시코 등등의 나라들로부터 할양을 받거나, 매입을 해서 오늘날의 미국 영토의 윤곽이 나온 겁니다.

미국을 자동차로 횡단이나 종단을 해 본 분들은 미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큰 대륙을 갖고 있는 지 느껴보셨을 겁니다.우리 남한 면적이 약 100,000km2인데, 미국은 9,834,000km2 라고 하니, 단순 면적 비교로 거의 100배에 가깝습니다. 자동차 시속 100km로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려도 아직도 한참 더 가야 하는 그런 엄청난 대륙입니다.

미국이 건국되던 지금부터 250년 전, 수십 년에 걸쳐 다른 나라들로부터 미대륙의 중서부 지역 땅을 매입하거나, 할양받아 오늘날의 미국의 영토가 거의 완성이 되었지만, 미국의 중서부는 거주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도 힘들고, 개발 된 것도 없는 거의 황무지와 같은 곳들이었습니다. 그래서 1850년대부터 40~70년간 ‘서부 개척 시대’가 열린 겁니다. 이것을 ‘프런티어(Frontier)’라고 불렀고, 그들의 ‘프런티어 스피릿(개척정신)’은 단 100년 만에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개척(開拓)’이란 한자어는 ‘열 개(開)’, ‘주울 척, 넓힐 척(拓)’ 자를 쓰고 있습니다. 새로운 분야나 미지의 영역을 찾아 개척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재밌는 게, 남들이 관심갖지 않은 황무지와 같은 곳에 새로운 길을 내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새로운 문화로 넓혀가는 것은 ‘주울 척(拓)’ 즉, ‘줍는 것이다’라는 겁니다.

남들이 관심갖지 않은 영역이라는 것은 인기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 개척한다는 것은 실패 확률도 높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개척하려 하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미국의 서부 개척 역사가 (분명 힘들었겠지만) 거의 그 땅을 줍듯 얻은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땅의 가치를 제대로 모를 때, 미국은 그 땅들을 헐값에 사들였고, 개척해 나갔던 겁니다.

그런데 성경의 역사는 ‘개척의 역사’로 가득합니다.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아 갈대아 우르에서 강을 건너 가나안에 정착해 이스라엘의 시조가 된 아브라함부터 족장인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모두 개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겐 확실히 정해진 거주지도 없었고, 장막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살아야 했고, 가는 곳마다 새롭게 우물 도 파고, 그곳에서 일하며, 가족들을 부양하며 살았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은 ‘개척자’ 그 자체 였습니다. 당시 아무도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그리스도)로 믿지 않던 시대에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개척하고, 로마 제국 전역을 다니며 선 교지를 개척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했던 개척의 역사였던 것 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개척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잘 안되면 어떻게 하지?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런 부정적인 마음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 라’고 선포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야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두 가지 교훈을 주시고 있습니다.

1. 강하고 담대하라

우리가 지난 주일에 신명기 31장 말씀을 통해, 40년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던 120세의 지도자 모세가 죽기 전에 수십 년 간 그를 섬겼던 그의 수종자(비서, 참모)와 같은 여호수아에게 리더십을 이양하는 장면을 살펴봤습니다. 그 이후 모세는 멀리 가나안 땅이 내려다보이는 ‘느보산’에 올라가 죽었고, 그곳에 장사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여호수아 1장 2절을 보시면,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그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새로운 백성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의 마음은 어땠을까 요? 마치 대통령에 당선되듯이 ‘내가 이제 이스라엘의 왕이 다~!’ 이런 마음에 들떠 있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출애굽부터 광야 생활하던 지난 40년간 하나님의 대리자였고,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던 존 재였고, 수많은 초자연적 기적을 일으켰던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거의 ‘신적인 존재’였던 것입니다.

앞선 선임자가 너무 완벽하게 잘했다면, 그 뒤를 잇는 후 임자는 부담이 너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비교가 되어 버리니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기도 하고, 선임자와 비교하 며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 나 여호수아가 부담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여호 수아에게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시는 겁니다.

3절을 보시면,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무 조건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확실한 약속의 말씀을 덧붙 이시고 있습니다.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 에게 주었노니”라고 말씀하시는데, ‘내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혹은 ‘줄지도 모른다’라는 가정이 아니라, “너희에게 주었노니” 완료형으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아직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완료형’으로 말씀하시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반드시 그 약속을 실행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 약속의 확실함을 강조하고 있는 표현인 것입니다.

6절을 보시면,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호수아의 마음에 큰 두려움이 있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이 있으면 도전할 수 없고, 도전하지 않으면 우린 아무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고,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셨다고 말씀하시고 있어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으면, 용기가 없다는 말이고, 용기가 없으면 어떤 도전도 할 수 없고, 도전하지 않으면 얻을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버리고, 강하고 담대할 수만 있다면 너무 좋은 데, 그런 마음을 가지려 해도 안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시면,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 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세가지 약속을 하시고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수아를 대적할 자가 없게 해줄 것이다. 둘째는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하나님께 함께 해줄 것이다. 셋째는 주님께서 여호수아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 라 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신명기 31장 6절에서도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강하고’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하자크( …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데 그 뜻이 ‘꽉 잡다’라는 의미입니다. 뭘 꽉 잡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강하게 해 주실 것, 함께 해 주 실 것, 떠나지도 버리지도 아니하실 이 말씀을 꽉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두려움 이 오는 이유는 내가 믿고 의지하고 있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꽉 잡을 때,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대여섯 살부터 부모의 돌봄 없이 고아처럼 자랐는데, 성격도 더 내성적으로 굳어지고, 동네에서 ‘쟤네 엄마 도망갔대, 쟤는 엄마 아빠도 없대…’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자랐더니 너무 자신감도 없고 위축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저 는 용기도 없고, 자신감도 없고, 그렇다고 잘하는 것 하나 없는 그래서 인생이 잘 되려야 잘 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겁니다.

열아홉 살 때, 친구의 전도로 교회 생활을 시작했고, 바로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제 삶은 정말 180도 변했습니다. 예수 믿고 죄용서 받고 구원받아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도 큰 변화지만, 생활 속에서 이전에 없던 ‘담대함’이 생긴 겁니다. 고아로 성장할 때 늘 혼자였는데, 이젠 주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는 겁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고, 나를 강하게 하시고, 지혜롭게 하시고, 나를 붙들어 주시니 삶을 살아갈 때 모든 두려움이 사라져 가기 시작했던 겁니다.

개척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 중 하나는 ‘강한 신념과 용기’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게 없이는 ‘개척’도, ‘창업’도, 어 떤 ‘도전’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내게 어떤 탁월한 재능이 없을지라도, 넉넉한 재정 이 없을지라도, 누군가 든든한 후원자가 없을지라도… 우리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을 굳게 믿으십시오. 저의 인생 속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그를 믿는 모든 이들 의 삶 속에 새로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나는 부족해도, 나는 약해도, 나는 가난해도, 나는 미련해도… 하나님은 모든 것보다 더 크시고, 강하신 분이십니다. 바로 그분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2. 말씀대로 살아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두고 있었던 여호수아에게 필요한 첫 번째 개척정신은 ‘강하고 담대한 마음과 믿음’이었습니다. 이 첫 번째는 개척을 앞둔 사람 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는 그 개척의 과정이 지속적으로 형통하게 되는 길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성공한 게 다가 아닙니다. 그 성공과 형통이 계속 이어질 때, 비로소 그 성공과 형통이 참 복이 되는 것 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국회의원이나 장관과 같은 고위직 공직자들이 성추행을 했느니, 이단 사이비 집단인 통일교에서 정치자금을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 가 큰 이슈 거리입니다. 정확한 사실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통해서 다 드러나리라 믿는데, 지금 그 당사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가 시방석이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이 된다는 거, 한 나라 행 정부의 장관이 된다는 게 쉽겠습니까? 공직자로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거기까지 올라가기 위해 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과정들을 거치고, 이겨내면서 거 기까지 올라갔습니까? 만약, 이 모든 게 다 사실로 밝혀지게 되면 국민들로부터 수치 당하는 것 뿐만 아니라, 모든 공직을 내려놔야하고, 심지어 몇 년이고 감옥에서 형을 살 아야 할 것입니다.

강한 의지를 갖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용기를 내서 어떤 일에 도전하고, 개척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개척의 과정과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형통하게 되는 게 사실은 더 중요한 것입니다.

7절을 보시면,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 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구절에서도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는 말씀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무엇을 하라 하십니까?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치우치다’는 말의 히브리어는 ‘수르 ( … )’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빗나가다’, ‘방향을 돌이키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정도(正道)에서 이탈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신약 성경이 기록된 헬라어로 ‘죄’를 뜻하는 말은 ‘하마르티아 (ἁμαρτία)’라고 하는데, ‘과녁에서 벗어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치우치다(수르)’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은 누군가와 싸울 때, 어떤 큰 일을 성취하려고 할 때만 쓰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걸 ‘수르(빗나가다), 하마르티아(과녁에서 벗어나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가 말씀에서 벗어나면 바로 죄 에 빠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7절 말씀에서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가라는 것 입니다.

8절을 보시면,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 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어떤 사람들은 교회 다니기 전과 다닌 이후의 큰 차이 중에 하나가 ‘하지 말아야 할 게 너무 많아졌다’고 불평 아닌 불평을 하는 겁니다.

당연합니다. 그 전엔 성경을 모르고, 하나 님 말씀도 모르고 살았으니 내 마음대로 살았던 겁니다. 그런데 성경을 배우기 시작하니 ‘이것도 하지 말아야 하고, 저것도 하지 말아야 하고, 이런 말도 하면 안 되고, 어떤 곳도 가지 말아야 하고, 심지어 나쁜 마음을 품거나 생각조차도 하지 말아야 하고 …’ 정말 마음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하던 일들을 하지 말아야 하니, 불편한 게 이만저만하지 않은 겁니다.

디모데후서 2장 5절에서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 만, 룰을 어기면, 법을 어기면… 지금 당장은 내가 좀 더 빨 리 성공하고, 남들보다 더 앞서가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룰을 어긴 사람들의 성공은 결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 상을 빼앗길 날이 곧 옵니다. 상만 빼앗기는 게 아니라, 수치와 고통도 따라올 것입니다. 그런데 법대로 경기하면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전쟁을 이끌면서 그 과정 속에 철저하게 따라야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가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첫 번째 전쟁인 여리고성 전투에서 말씀대로 했더니 그 철의 이중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아이성 전투는 말씀을 따르지 않았더니 그 작은 성 하나를 정복하지 못하고 패전했던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엘리자베스 엘리엇(Elisabeth Elliot, 1926~2015)’은 에콰도르에서 28세의 나이에 순교한 ‘짐 엘리엇 선교사’의 아내입니다. 남편이 에콰도르 원주민들에게 살해된 뒤, 그녀 역시 그 부족 원들을 위해 선교사로 헌신하여, 아예 그 부족 안으로 들어가 선교지를 개척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일에 순종하지 않고, 미래에 대 한 인도를 구하는 게 말이 됩니까? 성경의 수없이 많은 중대한 사건들이 한 사람의 작은 순종에 달려 있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하세요. 그리고 그걸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주실 것입니다.”

진정한 개척정신의 마무리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개척하는 거 같지만, 말씀대로 살 때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길을 새롭게 열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