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시편 106:34~42

34 그들은 여호와께서 멸하라고 말씀하신 그 이방 민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35 그 이방 나라들과 섞여서 그들의 행위를 배우며

36 그들의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37 그들이 그들의 자녀를 악귀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쳤도다

38 무죄한 피 곧 그들의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로 더러워졌도다

39 그들은 그들의 행위로 더러워지니 그들이 행동이 음탕하도다

4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맹렬히 노하시며 자기의 유업을 미워하사

41 그들을 이방 나라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이 그들을 다스렸도다

42 그들이 원수들의 압박을 받고 그들의 수하에 복종하게 되었도다

우리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유럽과 미국,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등에서는 마약류라 할 수 있는 대마초 같은 것들은이미 합법화된 곳이 있을 정도로 마약 중독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더 강한 마약들을 하도 많이 하니깐 정부에서 ‘대마초’ 정도는 그냥 허용을 해 주는 겁니다.

왜 마약에 중독이 되고, 그 중독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냐면, 마약류는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우리 뇌의 일부를 변화시켜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만약 마약류를 중단하면우울증, 불안, 불면증을 비롯해 신체적이고 정서적인 금단 현상으로 고통스러워 죽을 거 같은 겁니다. 그러니 한 번 마약에 손을 댄 사람이 그 중독에서 빠져나온다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18장 8절에 보시면,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말씀입니까?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범죄하는 손과 발을 찍어 버리기 시작하면 우리 중에 온전한 지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심각하고 끔찍하고 강하게 말씀을 하셨을까요? ‘죄’라는 것은그 손이 잘려 버려지지 않으면, 그 눈이 뽑혀 사라지지 않으면… 끊어버리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마치 마약 중독과 같이 얼마나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히는지 모릅니다. 더 이상 나와 관계가 없을 거 같은 그 죄가 어느날 보면 또 스윽 다가와 있고, 나도 모르게 그 죄의 달콤함에 빠져있는 겁니다.

시편 106편 34절, 35절을 보시면 “그들은 여호와께서 멸하라고 말씀하신 그 이방 민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그 이방 나라들과 섞여서 그들의 행위를 배우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고, 모세를 통해 ‘모세오경’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부터특별히 경고하고 명령하신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나안의 이방 족속들을 모두 멸하라. 그들과 혼인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민족의 풍속을 따르고, 그들의 문화를 따르고, 그들의 우상을 섬길 것이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36절을 보시면, “그들의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 하반절에서”… 그것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었도다”라고 하셨는데, 토끼든, 멧돼지든 심지어 곰과 같은 맹수라 할지라도 사냥꾼이 펼쳐놓은 올무(올가미)에 걸리기만 하면, 절대 빠져나올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죽은 목숨과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7절부터의 내용을 보면, 우상의 제의 중에 우상에게 자기 자녀를 희생제물로 바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우상의 피로 더럽혔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크게 진노하셨고, 41절과 42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망해 이방 여러 나라의 손에 넘겨져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이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죄에 빠지기 시작하면,그 죄는 여러분을 종으로다. 그래서 그 죄가 시키는 대로삼는 겁니하는 겁니다. 처음엔 그 죄의 달콤함에 빠져 내가 그것을 이용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어느 순간 그 죄가 여러분을 종으로 부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 죄로 인해 망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 죄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손이 죄를 범하면 잘라버리라. 눈이 죄를 범하면 뽑아버리라…’는 식으로 말씀하셨고, 오늘 본문 34절에서도 ‘그 이방 민족을 멸하라’ 하셨는데, ‘그렇게까지 심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하지만 ‘죄’라는 것을 용납하기 시작하면그 죄는 반드시 나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들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나를 그 죄의 종으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그만큼 강력합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너그럽고 온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죄와의 관계에 있어 우리는 매우 ‘단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얼마든지 용서하고, 용납하고, 이해해야 하지만, 죄에 대해서 만큼은용납하고 틈을 줘서는 안 되는 것조금도 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7절에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죄에 대해서 만큼은 단호하고 단호해야합니다. 그래야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세상이 변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그렇게까지 심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하지만 ‘죄’라는 것을 용납하기 시작하면 그 죄는 반드시 나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들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나는 죄에 대해서 얼마나 단호하게 반응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