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3:8~14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우리 교회에서는 내일부터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Ⅱ)”라는 주제로 40일간 <특별 기도회>가 진행됩니다. 이 기간엔 주일에도 예배에 관한 말씀
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모든 피조물들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예배하는 존재로 지음고, 우리가 예배할 때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에 성공과 실패가 있을까요? 찬양팀이 찬양하다가 실수했으면 예배에 실패한 건가요? 목사님이 그날 설교에 속된 말로 죽을 쒔으면 예배에 실패한 건가요? 반 대로 예배가 계획된 대로 모든 순서가 순조롭게, 매끄럽게 잘 진행되고 나름 감동도 있으면 그 예배가 성공한 건가요?
우리가 ‘예배’하면,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드리고 있는 ‘공적 예배(주일, 금요 등등)’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15장 22절에서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 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께서는 ‘번제와 다른 제사보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예 배가 단지 정기적으로 모이는 공적인 예배만을 말씀하는 것 이 아니라, 더 광범위하게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도 하 나님을 향해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20세기의 선지자’라고 불리었던 ‘에이든 토저(Aiden W. Tozer, 1897~1963)’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을 전해 드 렸는데, 예배에 관해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우리는 예배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으면 다른 신들을 예배하게 된다”
이것이 단지 ‘예배에 성공하느냐? 예배에 실패하느냐?’에 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배에 실패할 때 그 사람은 마음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들을 섬기게 되는 것 입니다. 때문 에 우리가 온전하고 바른 예배, 즉 성공적인 예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 에 대해서 살펴보기 전에 ‘예배의 실패’에 대해서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왜 예배에 실패했는지 그 이 유를 정확히 알 때, 우리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성공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너무 쉽게 성공했을 때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에 관한 이야기입 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이 통치 하시는 ‘신정 왕 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BC. 2166 년에 여호와의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이란 민족이 시작된 것이고, 아브라함-이삭-야 곱에 이르는 약 300년 간의 족장 시대 를 거쳐, 애굽에 내려 가 430년 간의 노예 생활 이 이어졌고, 출애굽한 뒤 광야 40년과 수백 년 간의 사사시대를 거쳐 이스라엘의 초대 사울 왕이 세워진 시기가 대략 BC. 1050년 경입니다.
그러니깐 아브라함 때부터 약 1,100년 동안 이스라엘은 왕이 없었고,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여러 사사들과 제사 장과 선지자들에 의해 통치된 신정 왕국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애굽 뿐만 아니라 중근동의 부족들과 민족 들은 왕을 세우고, 그를 중심으로 점점 더 강대한 왕국들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기들을 통치할 왕을 요구했고, 그렇게 세워진 인물이 사울 왕이었던 것입니다. 청년 사 울은 키가 크고 용모가 준수 했고, 게다가 리더로서 갖춰야 할 겸손함까지 갖춘 꽤 괜찮은 인물이었습니다. 사무엘 선지 자에 의해, 제비뽑기를 통해 사울은 왕위에 오르게 되고, 모 든 백성들도 그의 외모를 보고 모두 환호했습니다.
사울은 왕위에 올라 초기에 꽤 괜찮게 통치 했습니다. 그 가 왕위에 오른 지 2년 되었을 때, 블레셋 족속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3만의 병거와 6천의 마병 그리고 해변의 모래와 같 은 대군을 이끌고 국경에 진을 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풀과 바위 틈과 동굴에 숨기 바빴고, 어떤 사람들은 요단 강을 건너 멀리 도망 갔고, 온 백성이 공포에 질려 떨며 점 점 흩어 졌습니다.
그런데 신정 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은 전쟁하기 전에는 늘 여호와께 제사를 올려 드리며,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전쟁에 나가야 했었습니다. 백성들은 점점 흩어지는데 , 제사를 드릴 제사장인 사무엘 선지자가 늦었던 것입니다.
9절을 보시면,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율법에 제사를 집례하는 것은 오직 제사장만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가 늦자 자기가 직접 제사 를 집례했던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크게 진노하게 됩 니다.
13절을 보시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 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 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이 구절에서 ‘망령되이 행하다’라는 말은 ‘어리석다’는 뜻 도 있지만, ‘악하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깐 그 겸손하던 청년 사울이 왕이 된 지 2년 즈음부터 마음과 태도에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아무리 겸손한 사람이었을지라 도 절대 권력자인 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 자리 자체가 교만 하기가 딱 좋은 포지션 인 것입니다.
교회 생활 좀 오래 하고, 각 부서에서 기관장도 하고 그러 다 보면 권사님도 되고, 안수집사님도 되고, 장로님도 되어 섬깁니다. 그런데 교회의 중직은 지위가 아니라 섬기는(봉사 의) 직인 것입니다. 간혹 교회의 중직이 될수록 처음의 겸 손을 잃고 교만해지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교회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들을 담당한 분들을 보면 말없이 예수님처럼 겸손 하게 섬기시는 것을 보실 겁니다. 매주 식사 준비하는 성도님들도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하지만, 본인들이 한 달 동안 열심히 돈 모아서 주일 이른 아침부터 120명, 150명분 식 사 준비해서 섬기시는 겁니다. 담임목사인 저 역시 하루도 쉬지 않고 14시간, 15시간 교회를 지키며 사역하고 있지만 주님의 종으로 섬기는 것 과 성전의 문지기로 섬기는 것이 제게 주신 영광으로 알고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 에 죄인이었음을 기억하고, 겸손을 잃으면 안 됩니다.
왜 사울은 교만해졌을까요? 너무 쉽게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왕이 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한 것도 아니고, 요즘처럼 입과 발이 부르트도록 선거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왕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여러 경험과 스펙들을 쌓으며 힘들게 준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제비뽑기로 왕이 되었는데, 큰 키와 훤칠한 외모 덕에 백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렸던 것입니다.

송나라의 학자 ‘정이(程頤)’라는 학자가 ‘인생에는 세 가지 불행이 있다’는 ‘인생삼불행(人生三不幸)’이란 말을 했습니다. ✓ 첫째는 어린 나이에 크게 성공하는 것. 성숙한 인격이 준비되기도 전에 너무 큰 권세와 부를 누리게 되면 교만해 져 변화와 발전을 소홀히 해 내리막길을 갈 수 있다는 겁니다.
둘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 요즘 금수저를 부러워하지만 , 일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으니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성장시키는 데 소홀히 해 자립심을 잃어 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셋째는 뛰어난 재능과 능력이 있는 것. 그래서 어린아 이들에게 ‘우리 아이는 아이큐가 높아’ 이런 말 하는 게 그 아이를 망치는 길이라는 겁니다. 자기 재능과 능력을 믿고 안일에 빠져 노력을 게을리 하고, 인생을 낭비하는 겁니다. 그러니깐 겉보기에는 행운처럼 보이지만, 이 세 가지는 어떤 사람들의 경우는 인생의 불행으로 이끌게 된다 는 겁니다.
<사울 왕과 다윗 왕의 차이>가 무엇인 거 같습니까? 먼저, 사울은 너무 쉽게 왕이 되었다는 겁니다. 송나라 학자 정 이(程頤)의 인생삼불행이란 말처럼 쉽게 얻은 게, 빨리 성공 한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더 위험한 것 들, 경계해야 할 만한 것들이 수두룩합니다. 왕으로서의 정신 적, 인격적, 영적 준비가 덜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 왕 이 통치 기간 내내 정신질환을 앓아왔던 것만 봐도, 그의 삶이 얼마나 불행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골리앗을 이겨 민족의 영웅 으로 등극했 지만, 그때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 합니다. 자신은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왕과 나라를 위해 싸우는 충성된 군사로, 신하로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장인어른이기도 한 사울 왕 은 다윗을 죽이려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좋은 20대 시절 내내 이 동굴과 저 동굴, 이 광야와 저 광야로 도망 다녀야 했고, 신혼이었던 아내와도 강제로 헤어져야 했던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고 소원하는 것을 빨리 빨리 이루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쉽게 빨리 복을 받았는데… 그게 더 큰 불행으로 변할 것을 주님은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믿음을 훈련하고, 인격을 겸손하게 하고, 위대한 나라를 세울 성숙한 리더십을 준비시키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의 때에 옆에 있는 친구가 진 짜 친구인 것처럼, 그 광야에서 위대한 이스라엘을 세워갈 진짜 부하들을 얻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그 광야에서, 그 견 디기 힘든 고난의 날들을 보내며 참된 예배자로 훈련되고, 준비되었던 것입니다.

2. 내가 앞서기 시작할 때
우리 교회의 새해 실천 주제가 뭐냐면, ‘예배가 삶이 되고, 삶이 예배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분명 주일날 예배 드릴 때는 큰 은혜를 받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는데, 세 상에서 그 은혜를 다 까먹는 겁니다. 한 주간 살다보면 세 상 사람들이랑 큰 차이가 없는 거 같은 겁니다. 왜 우리는 삶의 예배를 실패하는 걸까요? 뭐가 문제일까요?

신약성경에서 예배를 가리키는 단어 는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프로스퀴네오(proskuneo)’라는 말은 ‘입 맞추려고 나아가다, 손에 입 맞추다, 엎드리다’라는 의미로 쓰 여집니다. 예배자의 겸손한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 다 른 하나는 ‘라트류오(latreuo)’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공경하 거나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집사님들을 존경합니다. 저야 하나님께 바 쳐진 몸이니 이렇게 섬기는 게 당연하다고 늘 그렇게 생각 하고 살지만, 우리 집사님들이 교회를 사랑하고, 담임 목사인 저를 존중하고 따라 주시는 게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 집사님 중에 어떤 분은 이번에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많이 맡게 되셨는데, 본인이 그 기관의 장이면 그냥 알아서 해도 제가 뭐라 하지는 않을 텐데, 앞서서 열심히 섬 기시면서 중요한 내용들은 저에게 상의를 하거나 , 일일이 다 보고를 하시고, 그리고 승인을 받고 나서야 그 일을 진행하시는 걸 보면서 제가 되려 우리 집사님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우리 집사님들이 교회 밖에 나가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 에도 계시고, 사업도 크게 하시기도 하고, 부하직원들도 많고, 저하고 나이 차도 많이 나지 않는데… 다만 교회에서 제가 담임목사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깍듯하게 하시는지 모릅니다. 결코 집사님이 저보다 앞서려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제가 그런 분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예배’라는 말의 원어적인 뜻이 ‘손에 입 맞추다. 엎드리다. 경의를 표하다’ 이런 의미들이 있습니다. 사람도 누군가로 부터 존중을 받는다고 느끼면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되려 그 분의 인격이 존경스러워 지기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한다는 것은 내가 앞서지 않고, 늘 하나님을 앞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앞선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내 욕심대로 하고, 내 뜻대로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시면,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에 오지 아니하 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사울 왕은 사무엘에게 변명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사장만이 집례할 수 있는 제사를 어쩔 수 없이 본인이 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들 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절대 자기 마 음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넘지 말아야 할 그 선을 넘어 버리는 겁니다. 자기의 생각과 뜻과 욕심 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내가 앞서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예배는 실패하는 겁니다.
그래서 13절에서
“…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 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찬양 중에 [주님만이 왕이십니다] 라는 곡이 있습니다. 주님만이 왕이십니다. 주님만이 왕이십니다.
내 삶에 – 내 삶에 – 내 삶에 – 내 삶에 이곳에 – 이곳에 – 이곳에 – 이곳에 온 땅에 – 온 땅에 – 온 땅에 – 온 땅에 경배해 – 경배해 – 경배해 – 경배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이름 왕의 왕 예수께 엎드려 경배해
예배자는 주님이 나의 진정한 왕이심을 고백하는 것 입니다. 내가 주님보다 절대 앞서지 않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나의 주인 이심을, 나의 왕이심을 고백하 는 것이고, 동시에 나는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종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삶 이 예배인 것입니다.
종들이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예배를 실패하게 될 것 입니다. 교회에서도 자꾸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종으로서가 아니라, 주인 노릇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 대접 받기를 바라 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입니다. 말을 줄이세요. 불평을 그 치세요 . 대접받기를 멈추세요. 사람에게 칭찬듣고 인정받으려 애쓰지 마세요.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왜 죄인인 우리 인간이 취하려 합니까? 그런 곳에는 참된 예배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태도와 자세는 실패한 예배자였던 사울 왕의 뒤를 따를 뿐입니다.

- 너무 쉽게 성공했을 때
- 내가 앞서기 시작할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