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흔들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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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4:1~7

1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2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2010년에 어떤 목사님이 『나, 이것만 아니면 교회 간다(김형국, IVP)』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이 제목 바로 아래에는 흘림체로 ‘술, 담배’ 이렇게 써놨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 문제가 걸려서 교회를 안 나오는 분도 계시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성도들
“술, 마셔도 되는 건가?”
“담배, 피워도 되는 건가?”

이런 의문과 고민으로 중에서도 마음이 흔들리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대부분이 ‘안 되는 줄 알지만, 내가 원하고 하고 싶을 때’ 나타나는 감정입니다. 이미 우린 그 답을 알고 있지만, 계속 그것을 원하고 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때로는 ‘차라리 하나님께서 해도 된다! 하지 마라! 라고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라는 바람도 있을 겁니다.

제가 대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 마세요!’ 물론, 우린 오직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기 때문에 술과 담배가 구원의 절대 적 조건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담임목사인 제가 하루에 담배 두 갑씩 피워대는 골초라면 어떠시겠습니까? 만약 제가 하루라도 술이 없으면 잠들지 못하는 술고래라면 어떠 시겠습니까? 너무 극단적인 거 같으면, 설교 준비 잘 안된다고 성경책 앞에 놓고 줄담배를 피우는 목사라면 어떠시겠습니까? 목회에 스트레스가 많아서 저녁마다 술에 취해 있으면 어떠시겠습니까? 이걸 용납할 수 있는 성도가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0장 24절에 보시면,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 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과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은혜가 되지 않고 , 그리스도인으로 덕이 되지 않는다면 하지 않는 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 14장 20절, 21절을 보시면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음식이 뭐라고, 술이 뭐라고, 담배가 뭐라고… 그런 나의 모습을 누군가가 보고 시험에 든다면 , 그건 악한 것이고, 죄 짓는 겁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무엇이든 할 자유 가 있지만, 그 자유가 방종이 되지 않도록! 누군가를 시험에 빠지 게 하지 않도록!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마 시라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생활 중에 마음이 흔들리는 상황은 꼭 술과 담 배 문제뿐이겠습니까? 사실 그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닙니 다. 다윗은 오늘 본문의 상황에서 마음이 크게 흔들렸을것 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에 신앙적인 큰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1. 기회라는 시험을 넘어라

20대 청년 다윗은 너무 억울했습니다. 적어도 30년 이상 이스라엘의 왕으로 통치하고 있었던 사울 왕은 아무 이유도 없이 다윗을 미워했고, 여러 차례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다윗은 어쩔 수 없이 왕궁을 빠져나와 여기저기 도망을 다니고 있는데, 그가 어디에 숨어 있든지 다윗의 위치를 사울 왕에게 제보하는 사람들 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이전인 23장에서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울 왕과 다윗이 서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 에서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추격하고, 도주하는 위기의 순간도 있었는데, 다행히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다윗은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거기서 사울 왕에게 잡혀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대 땅 그 어디에도 다윗에게 안전한 곳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엔게디 다윗이 선택한 도피처가 사해의 서쪽 해안에 위 치한 ‘엔게디(En-Gedi) 광야’였던 것입니다. 유다 지역의 베들레 헴과 예루살렘은 해발 700~800m 고지에 있었던 도시들이 었지만, 엔게디는 해발 –400m에 위치한 사해 서쪽 해안 에 있었던 광야의 작은 오아시스 였습니다. ‘엔게디’가 ‘새끼 염소 의 샘’ 또는 ‘들염소의 샘’이란 뜻을 갖고 있는데, 절벽을 타고 다니는 들염소가 물을 마시러 오는 곳이란 의미가 유래가 된 지명입니다.

엔게디는 유다 땅의 동쪽 끝이고, 이스라엘의 동쪽 경계였기 때문에 다윗은 땅끝까지, 절벽 앞까지 내몰려 도망간 겁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그 험난한 광야까지 도망가 한 동굴에 숨어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이 사울 왕에게 또 다 윗의 위치를 제보했고, 사울 왕은 정예군(특수부대) 3천 명을 이끌고 엔게디의 절벽을 수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절을 보시면,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 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사울 왕은 엔게디의 절벽을 수색하던 중에 용변을 보러 홀로 한 굴로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그 굴 깊은 곳엔 다윗 과 그의 부하들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4절을 보시면,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 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 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 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다윗은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여러 차례 다윗을 죽이려 창을 던지기도 했었고, 지금은 특수부대 3천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계속 다윗을 죽이려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사울을 공격하거나, 죽이더라도 ‘정당방 위’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도피 생활 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입니다. 부하들도 ‘대장,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이건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사울 왕을 제거합시다!’라고 다그치고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상황이 ‘기회’로 보이지만, 어떤 사람에겐 이 상황은 ‘기회라는 가면을 쓴 시험’일 수 있습니다.

제가 부목사로 사역하던 30대 중반에 사역지를 옮겨야 할 상황이 되어서 기도하며 몇몇 교회에 지원서를 냈습니다. 두 군데 중에 한 곳이 꼭 되면 좋겠는데, 제 마음에 ‘두 교 회 중에 먼저 연락 오는 곳에서 사역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 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연락을 주신 교회가 당시 1,500~2,000명 정도의 성도가 출석하고 있었던 의정부에서 성장하고 있었던 교회 였던 겁니다.

그런데 다음 날,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목사님이 담 임으로 계시는 목동의 대형 교회 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곳은 모든 조건들이 너무 좋았던 곳 입니다. 제가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사택과 사례와 복지와 자녀 교육 등등 모든 면에서 지원해 주는 곳이라서 의정부 교회와는 비교가 많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연락 주시는 곳에서 사역하 기로 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곳에 임지가 정해져서 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정중히 거절했던 적이 있습니다.

목동은 저에겐 유명한 목사님 아래에서 배우며 더 성장 할 수 있는 기회였고,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제가 숨을 좀 돌릴 수 있는 기회 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했던 바 가 있었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정부 에서 정말 행복하게 사역을 했고, 영적으로 목회자로서도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뒤, 제가 ‘갈까?’하고 살짝 갈등했던 목동 의 그 교회는 안타깝게도 교회 내에 큰 분쟁이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생각을 바꿔서 그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었다면 교회가 깨지고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에 너무 속 상했을 거 같습니다. 지원했을 당시에는 내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었지만, 돌아보니 차라리 그곳에 가지 않은 게 다행 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내게 주신 기회’인지, 아니면 ‘기회라는 가면을 쓴 시험’인지를 분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면 더없이 감사하겠지만, 결국 나는 그 선택과 결정으로 큰 시험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정말 꽉 잡아야 할 진짜 기회가 있는가 하 면, 절대 잡지 말아야 할 손도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잡지 말아야 할 손인데, 그걸 안 잡은 걸 아쉬워하거나 후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그 기회와 시험을 어떻게 분별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었던 것입니다. 사울 왕을 죽 일 절호의 찬스 였지만, 세상적으로 보면, 인간적으로 보면 진짜 기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였고, 다윗이 그를 죽이는 것 은 ‘월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다윗이 함부로 내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앞세우던 참된 예배 자였던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그를 괴롭혔을 겁 니다. 옆에서 부하들도 ‘대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하냐고? 이 기회를 놓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다그치고 있지만, 다윗은 기회라는 가면을 쓴 시험을 넘어 간 것 입니다. 내 욕심보다 주의 뜻을 앞세워 가능했던 겁니다.

2.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다

이렇게 어떤 상황 앞에서 우리의 마음과 감정이 흔들릴 때, 우리가 가져야 할 두 번째 자세는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시면,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 이 찔려”

다윗은 사울이 일을 볼 때 옆에 벗어둔 겉옷 자락을 살짝 베어 옵니다. 그 칼로 얼마든지 무방비 상태의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사울을 살려서 그대로 내보냅니다. 그리곤 얼마 전까지 자신이 모시던 주군 사울 왕의 그깟 옷 자락 하나 벤 것으로 마음에 찔려 아파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의 부하들은 대장인 다윗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직장에서 내 선임이나, 직장 상사가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든 그 사람을 치고 올라가든, 밟고 올라가야 풀릴 거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인간적으로도 참 멋지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주군으로 섬기던 왕 이 정신이 오락가락 하고, 그것도 충신인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데…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에서 다윗은 사울 왕에 대해서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왕’ 으로서 끝까지 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의리’라는 게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나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의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얼 마 전까지 ‘죽고 못 사는 사이’같아 보였는데, 어느 날 보면 원수처럼 변해있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웬 만하면 좀 이해하려고 노력도 해 보시고, 그 상대방의 부족 함이 보여도 품고 가보시기도 하시고, 더 넓은 마음으로 보 듬어 가는 아량도 음인 것입니다. 있어야 하는 겁니다.

6절을 보시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 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 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은 인간적으로도 참 멋지고 좋은 사람이기도 했지만, 신앙인 다윗의 모습 역시도 참 멋지고 귀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얼마든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조건과 상황과 능력도 있었지만, 그가 결코 사울 왕을 죽이지 않은 것은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 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기름 부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명하셨다. 또는 위임하셨다’라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어떤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했는데, 어느 날 서열 2위인 국무총리가 그 장관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자기 맘대로 해임해 내린다 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만약 그런 일들이 일어나면 서열 2위가 서열 1위 인 대통령을 무시하고, 대적하는 그것이야 말로 반란이고, 내란 아닙니까?

다윗은 사울 왕이 왕이라서 최대한 예를 갖추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그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이기 때문에, 그 권위가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 하는 것입니다. 즉, 다윗은 주님의 그 권위 아래에서 결코 주님보다 앞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너무 억울하고 분할 수도 있지만 , 사울 왕 을 내리는 것은 다윗이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일 인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인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침범하는 월권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대부분이 ‘안 되는 줄 알면 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을 때’ 그런 감정의 상태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때 우리가 주님의 권위 아래로 들어가면 그 흔들리던 마음이 안정이 되면서 주님의 뜻에 순종할수 있는 것입니다.

집에서도 누군가 대장이 되려 하고, 가족들 모두가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큰 소리도 치고, 짜증도 부리게 되는 겁니다. 교회에서도 누군가가 대장 노릇 하려고 가 영광 받으려고 하면 하고, 자기 꼭 분란이 일어나는 겁니다.

내가 앞서려 하니깐 괴롭고 힘든 겁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내가 주님보다 앞서지 않으면 어려울 게 없습니다. 나는 종이니깐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순종하고, 그대로 따라가면 불안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보다 앞서지 않으면 어려울 것도, 불안할 것도 없습니다.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 자세 중에 하나 가 ‘기도’입니다. 작년에 우리 교회는 12년 넘게 교회로 사용하던 이 상가 건물을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우니 1년 뒤에는 이 건물에서 나 가야 할 이슈가 생겼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 진 겁니다. 하지만, 주변 건물과 상가 시세가 너무 올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시 간이 얼마 없으니 빨리 특별헌금을 하든 어떻게 하든 해서 돈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제게 “40일 기도를 다섯 번 하라”는 말씀을 주셨고, 저와 우리 교회는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 리고 우리는 지금 <3차, 40일 특별기도회>를 매일 밤마다 올려 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40일-1차 때는 “기도의 제물이 되라”는 주제를 주셨고, 2차 때는 “하나님의 찾으시는 예배자”라는 주제를 주셨고, 3차를 할 때에도 2차와 동일하게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라는 주제로 예배하고 또 예배하고 계속 예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성전 이전하게 해 주세요. 재정을 주세요’ 이런 기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언젠가 그런 기도를 해야 할 때도 오겠지만, 저와 우리 교회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자로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건물 성전이 세워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게 하나님께는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 주님보다 앞서지 않기로 결단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나아가면 될 것입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내가 주님 보다 앞서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대장 되셔서, 우리가 그 주님만 따라가면 두려워할 것도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미래와 진로, 자녀들의 미래와 진로 두려워하지 마시고, 날마다 주님을 앞세우시고, 그 주 님을 따라가시기를 축복합니다.

  1. 기회라는 시험을 넘어라
  2.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