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6:9~15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지난 주일에 잠시 언급했던 기원전 334~323년 알렉산더 왕은 스무 살에 헬라의 왕이 되어 10년 만에 ‘헬라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 어리기까지 한 20대 청년의 나이에 역사에 길이 기록될 만한 대업적을 이룬 것입니다.
그리고 알렉산더 왕은 자신이 정복한 나라의 주요 70개의 도시
이름을 ‘알렉산더의 영토’라는 뜻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city)’라는 이름으로 명명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으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해서 아직까지 그 이름으로 불리는 도시들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2절을 보시면,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초기에 주변의 여러 나라 들과의 전쟁을 승리 했고, 전국에서 힘이 센 장수들을 정예 부대에 편입을 시키면서 그의 왕권이 크게 강화 왕의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숙적인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에서 사울 왕의 군대가 크게 승리를 거두면서 그는 자기 자신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큰 승리를 거두거나, 큰 성공을 이루고, 자신이 원하고 바라던 대단한 무엇인가를 이루었다 싶으면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와 같이 그리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과 같이 자기 자신을 기리고 높이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입니다.
그런데 잠언 16장 1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큰 성공을 거두었어도 교만하면 그때부터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20대 청년 알렉 산더 왕은 10년 만에 서구권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30대 초반 갑작스럽게 요절(夭折)했습니다. 사울 왕도 자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운 뒤에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던 것입니 다. 더 오래도록 또는 영원토록도 가능했던 사울 왕가는 몰 락의 길로 들어섰던 것 입니다.
다윗은 20대 시절 내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시련과 환난 가운데 있었지만, 그 인생의 밤을 지나 30세에 유다의 왕으로 그리고 37세에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 하게 됩니다. 온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다윗은 사무엘상 5장 에서 예루살렘을 정복해 그곳에 다윗성을 건설하고, 또 다른 숙적인 블레셋과의 여러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영토를 확장 하게 됩니다.
다윗은 그렇게 왕권의 안정을 가져온 뒤 첫 번째로 했던 것이 수십년 동안 블레셋 여러 도시와 이스라엘의 산속에 방치되어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모셔 오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왕권의 핵심과 권위와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온다’는 것을 믿고 예배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배자로 살기로 결단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하지만, 우리 가 무엇인가를 선택하면 반대로 무엇인가를 버려야 하는 겁 니다. 때문에 그 상황에는 언제나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 가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좋은 일 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예배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버려야 하 기 때문에 항상 시험이 올 수 있다 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1 믿음의 시험을 두려워 말라


기원전 1440년경 출애굽 사건 이 있었는데, 출애굽한 뒤 광야 생활을 한 지 1년 차에 ‘하나님의 법궤(언약궤)’가 만들 어졌습니다. 그 법궤는 ‘십계명의 두 돌판’이 들어 있었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광야 생활 40년 뒤, 기원전 1400년경에 가나안 정복 전쟁이 시작 되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입성한 뒤 ‘실로’ 라는 곳에 성막이 세워지고, 법궤도 그곳에 안치 되어 있었 습니다. 그 후 사사시대의 말기에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전쟁터에 법궤를 들고 갔다가 블레셋 족속에게 그 법궤를 빼앗겼고 , 법궤는 이방 족속인 블레셋 사람들에게 약 7개월 동안 머물게 됩니다. 하지만 블레셋 여러 도시를 거쳐 가던 법궤로 인해 블레셋 각 성읍마다 큰 재앙 이 있었고, 그래서 법궤는 다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돌려받게 된 것 입니다. 그 때가 대략 기원전 1100년 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법궤를 예루살렘 으로 모셔 오기를 소망 하던 때가 대략 기원전 1000년 경이 었으니깐, 지난 100년 동안 법궤 는 성막도, 성전도 아닌 이 스라엘 족속의 한 가문의 집에 모셔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언약궤)를 예루살렘의 다윗성으로 모 셔 오기를 정말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런데 100년의 세월 속에 ‘법궤가 어디에 있다더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정확한 장소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시편 132 편에 의하면, 다윗이 그 법궤를 찾기 시작하는데 밤잠을 자 지 않을 정도로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 나섰던 겁니다.
그러던 차에 시편 132편 6절과 7절을 보시면,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 서 찾았도다.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으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나무로 울창한 숲속 깊은 곳의 한 집에 모셔있었던 법궤를 찾았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 새로 만든 멋진 수레에 법궤를 싣고 예루살렘을 향했습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모든 악기를 동원에 찬양하며 영광의 행진을 하고 있었는데, 곡식 타작하는 소리에 수레를 끌던 소들이 깜짝 놀라 날뛰었고, 법궤가 수레에서 떨어질 거 같아 ‘웃사’라는 사람이 그 법궤를 붙들었는데, 마치 고압전선에 감전되듯 웃사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은 것입니다.
9절과 10절을 보시면,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 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 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이 사건은 다윗에게 큰 충격 이었습니다. ‘수많은 전쟁에 서 많은 사람의 피를 흘린 죄 많은 나 같은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근처에 있는 ‘가드 사람 오벧에 돔의 집’에 법궤를 메어다 모셔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윗과 이스라엘의 무지에서 비롯된 사건 이었고, 다윗이 법궤 옮겨오기를 포기한 것은 그의 무지함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민수기 4장에 의하면,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이 법궤를 옮겨야 했고, 그것은 수레 같은 것에 싣지 말고 반드시 채를 꿰어 고핫 자손들이 메고 가야 하는 것 이 율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는 십계명의 두 돌판 이 들어있는 언약궤(법궤)를 옮겨 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범했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 된 이후 자신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운다거나, 왕권을 과시할 만한 무엇을 했던 게 아니고, 약 10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잊혀져 있었고, 거의 버려 져 있다시피 했던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려 했던것뿐 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그 법궤 앞에서 예배할 그 마음 하나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인데… 웃사의 죽음으로 인해 다윗은 큰 시험에 들었던 것 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사역자로서 여러 가지 좋은 조건들을 내려 놓고 필리핀에 온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에 순종하는 마음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개척 해서 사역하고 있는데, 여러 시련과 시험들이 오는 겁니다. 그때 제 마음에 ‘하나님,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면 순탄 하게 잘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 요?…’ 이런 시험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시기에 그런 시련과 고난과 시험이 없었다면 저는 영적으로 교만해 지거나, 나태해 졌거나 또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와 사랑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시련 때문에 더 엎드리고, 더 낮아지고, 더 기도하고, 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절대 믿음’을 훈련받았던 것입 니다.
때로는 고난의 이유를 몰라 답답하기도 하고, 불안한 마 음이 들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만한 시험만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시험당할 즈음에는 피할 길도 내십니다. 그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법궤를 옮겨 오는데 실패했습니다. 우리도 좋은 의 도로 어떤 일들을 하거나, 봉사를 하거나, 어떤 꿈을 향해 도전하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문제와 장애물을 만나기도 하고, 비관적으로 보이는 상황에 실패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을 갖기도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마음에 찾 아오는 시험은 ‘괜히 시작했나? 차라리 하지 말 걸 거랬나? 괜히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실패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실패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가 두려워 주저주저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노무라 가츠야 감독)”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시도하고, 도전하는 일들이 죄짓는 일만 아니라 면 도전을 멈추지 마십시오. 그 과정에 여러 가지 난관과 시 험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어떤 시험이든 두려워하지 마십 시오.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힘을 주실 것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단련하시고, 훈련하시고, 깍여야 할 것은 다듬어 주실 것이고,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고, 더 성숙하게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특별히 어떤 믿음의 시험들 이 있다면 더욱 두려 워하지 마십시오. 정금과 같은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2. 여호와의 법궤를 모셔 오라

시편 132편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여호와의 법궤를 모셔 오기를 사모했는지 그는 하나님 앞에 서원하고, 맹세까지 하면서 ‘그 법궤를 찾기까지 집에도 안 들어가고, 잠도 자지 않고 반드시 찾아 모셔 오겠다’는 각오가 나와 있습니다. 그렇게 사모하던 법궤를 찾아 , 3만 명의 백성들을 동원해 온갖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법궤를 옮겨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장엄한 장면입니까?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웃사의 죽음>은 모든 행사 를 중단 시키고, 법궤는 10절에 보니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옮겨 놓고, 그는 큰 시험과 절망감 속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12절을 보시면,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 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법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달을 있었는데, 여 호와께서 그의 모든 소유에 큰 복을 주셨다는 소식을 다윗이 듣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법궤를 모셔 오는 것은 큰 축복이 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역대상 15장 2절을 보시면,
“다윗이 이르되 레외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다윗은 법궤를 옮겨오다 실패해 크게 낙심해 있었던 그 3개 월 간의 기간 동안에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살펴봤던 것입니다. 민수기의 율법의 말씀을 통해 ‘레위지파 고핫의 자손들이 법궤를 메고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깐 1차 때도 말씀대로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거슬렀기 때문 에 그런 불상사가 일어났었던 것 입니다.
지난주에 우리 교회 여전도회 주관으로 있었던 [사랑의 바자회]를 통해 깨달았던 말씀을 잠시 나눴던 적이 있었는데, 저는 이번 바자회가 은혜 가운데 온 성도들의 잔치가 된 것이 감사한 제목 중에 하나지만, 더 큰 감사의 제목이 하나 더 있는데 여섯 분의 여전도회 임원들이 이 큰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며 영적으로 성장한 모습 에 감사했습니다.
교회 사역은 돈 갖고만 하는 것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맘대로 할 아니고, 겸손하게 낮아진 마음과 섬기는 마음으로 할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잘 진행되는 겁니다. 임원이 아닐 때는 내 감정대로도 하고, 속된 말로 성깔대로도 했을 겁니다. 임원 중에 한 분이 ‘임원하기 전에는 앞에서 일하시는 분들한테 협조도 잘 하지 않고, 불평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임원을 해보니 그게 그렇게 미안해 지더라’는 겁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소그룹 리더들인 ‘작은 목자와 부목자’ 집사님들을 보며 보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분들은 교회 사역의 기둥과 같은 포지션 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목원들이 5~8명 정도 되는데, 내가 맡은 목장의 목원들 섬기는 것도 사실 쉽지 않습니다. 작은 목자로서 더 많이 기도해야 하 고, 더 많이 섬겨야 하고, 영적으로 더 모범도 되어야 하고… 그 책임과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중간중간 에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그냥 중간에 그만둔다고 할 까…’ 이런 생각도 불쑥불쑥 올라올 겁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 새롭게 편성된 목장들이기 때문에 작은 목자들도 아직 몇 년이 안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사님들이 담임목사인 저의 지도와 리더십에 잘 따라와 주시고, 순종해 주셔서 그런지 제가 볼 때는 정말 많이 변하시고 , 더 성장 하시고, 영적으로 더 성숙 해지셨습니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면서 청소년부의 교사들이 새롭게 임명 되고,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만나서 함께 기도하며 공과 공 부도 준비 하고, 청소년부의 부흥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 는 시간도 정기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워낙 훌륭해서 우리 청소년부가 크게 부흥할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청소년부의 부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지만, 청소년부 교사로 헌신하시는 선생님들의 믿음도 일곱 배로 성 장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바쁜 시간 쪼개서 교사로 섬기고, 아이들을 위해 내 돈도 써 가면서 교사로 섬기는 게 때로는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섬김과 헌신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의 상급뿐 아니라, 교사로 섬기다가 누리게 되는 영적 은혜들이 클 것입니다.
한 대학에서 교수로 계신 집사님이 수년 전 방학 때, 우리 교회에서 한두 달 예배하고 가신 이후로 우리 교회를 얼마 나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 물론, 한국에 돌아가서 지역 교회도 열심히 섬기시는데, 지난달에 부모님과 자녀들까지 데 리고 3대가 세부에 여행을 오셨습니다. 일부러 주일을 끼고 오셨는데, 장로와 권사로 평생 한 교회를 섬기신 부모님께 우리 교회를 꼭 보여드리고 싶으셨다는 겁니다.
부모님은 해외여행을 처음 나오셨는데, 그 이유가 섬기시 는 교회에서 맡고 계신 봉사 때문에 주일을 빼먹고는 여행을 갈 수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고, 예배를 사모하고, 섬기는 이 믿음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 데 이제 장로 은퇴도 하고 올해 기회가 되어서 세부에 함께 모시고 올 수 있으셨다는 겁니다. 그 장로님과 권사님은 군 산의 한 교회를 섬기시는데, 두 분을 만나서 함께 식사도 하고 교제도 하면서 왜 그 아들 집사님이 이렇게 복을 받고, 또 손주들까지 큰 복을 받고 사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속에 여호와의 법궤를 모시는 것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 속에 들어 가시는 것 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의 가정 속에 들어 가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책임져 주시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시는 것 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귀히 여기십시오. 예배를 귀 히 여기십시오. 주님을 섬기며 봉사하는 것을 귀히 여기십시 오. 날마다 여호와의 법궤를 내 삶에 모시기를 축복합니다.
- 믿음의 시험을 두려워 말라
- 여호와의 법궤를 모셔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