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12~14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오늘은 우리 [세부광명교회]의 ‘설립 13주년’입니다. 보통 ‘어린이’라고 불리던 시기를 지나 만 13세가 되면 ‘청소년’이라 불리는 시기를 맞습니다. 아직 성인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분명한 건 어린이 시절보다 여러 영역에서 성장했고, 더 크고 빠른 성장의 시기가 이 청소년 시기일 겁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2학년에 올라가던 우리 아이들과 저의 아내와 함께 2013년 2월 19일에 필리핀 세부에 입국했습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세부에 입국하기 2주 전에 저는 혼자 세부에 들어와 한 선교사님의 소개로 저렴한 아파트를 하나 얻었고, 침대하고 식탁을 준비하고, 빗자루 대걸레 같
은 청소도구들도 준비한 뒤에 다시 한국에 들어가 가족들을 데리고 세부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첫 주일예배는 가모테스 섬의 현지 교회에서 예배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 맞는 두 번째 주일예배를 저희 집 거실에 의자 몇 개 놓고 시작하면서 우리 <세부광명교회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희 가족들 4명하고, 선교사 님 가족 4명 이렇게 여덟 명이 예배를 드리기로 했는데, 어떻게 아시고 몇 몇 한인분들이 홈스테이 하는 아이들까지 데리고 오셔서 아이들 포함 스무 명이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었고, 세 번째 주일예배에서는 지금 예배하고 있는 이 상가의 1층을 얻어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개척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운 날들도 있었지만, 교회는 잘 성장해 왔고, 개척 4년 만에 성전도 3~4배 크게 확장 하여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름과 겨울 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2백 개의 의자를 모두 놓아야 할 정도 로 많은 성도들 이 찾아와 함께 예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20년 코로 나 팬데믹으로 90%의 교민들이 철수하게 되면서, 교회는 다 시 처음 개척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 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13주년을 맞게 된 겁니다.
오늘 생일을 맞은 우리 교회 공동체에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무엇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지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이며, 크리스천들인 우리 성도들이 추구하며 나아가 할 교훈 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1. 만족하지 말아라
우리 교회 공동체 가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들 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마음은 ‘만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빌립보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 이었습니다. 평생을 주님을 위해서 살았고, 철저한 자기 부인과 헌신과 충성의 사람 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유럽이 복음화되는 기초를 놓은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장 위대한 사 도 중에 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고백은 놀랍습니다.
12절을 보시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사도 바울은 영적인 면에서 어쩌면 최정점의 위치 에 있 었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4절에 의하면, “그가 낙원으 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천국을 의미하고 있는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 나님께로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계시와 말씀들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느끼고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적 세계를 경험한 사람 이었던 것 입니다.
그는 ‘이방인을 위한 최초의 선교사’였습니다. 그가 선교사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전까지, 여호와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수천 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것이 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통해 복음은 여러 민족과 이방인들 에게 전해졌고, 전 세계가 복음을 통해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 입니다. 그를 통해 신약 성경 27권 중에 13권 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온전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살지만, 이 땅에서 결코 온전해 질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되려고 해도 온전히 변화될 수 없는 연약함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실수와 죄를 반복 하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목사가 되면 ‘온전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목사가 되어서도 여전히 죄와 싸우고, 미성숙과 싸우고 있는 저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게 ‘아, 이 싸움은 천국 가기 전까지, 내 평생을 걸 쳐서 있는 갈등과 싸움이구나…’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변화될 수 없다는 건 변화되기 어려운 건 사실 아닙니다. 사람이 이지만, 적어도 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주 조금씩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에 가까워지고,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점점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갈등과 싸움을 통해 깨닫게 되는 또 다른 한 가지 는 ‘나는 여전히 주님이 필요한 연약한 사람이구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연약함과 실수와 죄가 반복되는 것이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닌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 7장 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도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 를 건져내랴”
고 고백하며 탄식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사도 바울이라 도 스스로의 힘과 능력과 의지로 다 안 된다 는 것을 고백하 고 있는 것입니다. 연약한 나에겐 주님이 필요한 겁니다. 주 님이 없이는 나는 결코 소망이 없는 것 입니다. 이 연약함 때문에 죽을 때까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결코 나에겐 소망이 없는 것 입니다.

지난주에 소개해 드렸었던 ‘에이든 토저(Aiden Wilson Tozer, 1897~1963)’의 『신앙의 기초를 세워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소유에 만족하는 것은 성도의 표시이지만, 자기 영적 상태에 만족하는 것은 영적으로 눈먼 자의 표지이다. 이미 도착 했다고 믿는 사람은 더 나아가지 않는다. 이런 믿음만큼 우리에 게 위험한 덫은 없다”
크리스천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물질에 만족 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은 은혜롭고 덕스러운 모습이지만,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이 정도면 됐지! 나 정도 신앙 생활하면 괜찮은 거 아닌가?’라는 식으로 자신의 영적 상태 에 만족하고 있다면, 그것은 영적으로는 눈먼 자의 표지라는 겁니다. 이미 다 이루었다고, 알 만큼 안다고,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면 그때로부터 영적인 성장은 중단 이 되거나 퇴보 하게 되는 것입니다. 토저는 그것을 ‘신앙의 위험한 덫’ 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저는 열아홉 살에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지금까지 성경을 수십 번을 더 읽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들과도 매 년 성경을 계속 읽고 있습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를 준비하기도 하고, 관련된 책들과 경건 서적들을 계속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한한 인간뿐인 제가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안다면,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주에 있는 별의 숫자가 몇 개나 될 거 같습니 까? 과학자들은 은하계에만 평균 1~4천억 개의 별 이 있고, 그런데 우주 안에는 그 은하계라는 게 약 2조 개가 있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셀 수 없다. 모른다’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 광대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다 안다는 것 은 바닷가의 모래를 셀 수 없는 것처럼 불가능한 그 하나님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 인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손흥민 선수가 2019/20년의 한 경기에서 넣은 골로 ‘푸스카 스상(The FIFA Puskás Award)’을 탔습니다. 저도 그 장면이 기억이 나는데, 손흥민 선수가 거의 골대 앞에서 공을 드리블 하면서 스프린트를 하는데 무려 70미터 이상을 치고 나가 결국 은 골을 터뜨렸습니다. 그래서 세계 축구 연맹인 FIFA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멋진 골을 터뜨린 선수 에게 주는 푸스카스 상을 손흥민 선수에게 수여했던 겁니다.
이 상을 기점으로 손흥민 선수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손흥민 선수를 길러낸 아버지 손웅정 감독은 아들에게 축하는 했지만, 담담했다 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 이 ‘아들이 넣은 최고의 골이라고 맞장구를 치면 앞으로 더 좋 은 골을 넣는데 분명 장애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좋은 골을 앞으로도 넣을 수 있을 것이 라고 생각한다 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손흥민의 최고의 날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앞으로 다가올 날’이라고 답하고 싶다. 항상 낮은 자세로, 항상 발전하는 그런 날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이든 ‘만족’하면 거기서 더 이상의 큰 것은 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계속 최선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이전보다 더 큰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여기가 전부가 아닙니다. 더 큰 은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큰 역사가 기다 리고 있습니다. 더 광대하신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깊이와 넓이가 더 커지기를 축복합니다.

2. 천국을 소망하라
히브리서 11장에서는 평생을 믿음으로 살았던 <믿음의 영 웅들>을 소개하고 있고, 12장 1절에서는 이렇게 우리가 믿음으로 삶을 살아내는 것을 가리켜 <믿음의 경주>라고 정의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경주가 결승선이 있고, 그 경주를 통해 상이 주어지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 14절을 보시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 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영웅들 은 평생 믿음으로 살다 가 그들이 들어갈 본향을 사모하다가 죽었다 는 겁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 16절을 보시면,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성경 속의 믿음의 영웅들이 사모했던 ‘본향’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곧 ‘하늘에 있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 의 나라 ‘천국’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과 14절에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 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 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도 바울 역시 이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다 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뭔가를 이루었다고, 만족한다고 하지 않는 것 입니다. 그의 소원은 이 세상에, 이 땅에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중단없이 계속해서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다 는 것입니다.
오히려 7절에서는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그리고 8절 에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 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어떤 사람보다도 가장 크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사도 바울이 늘 사모했던 것은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3차원의 현실 세계에 살다 보니, ‘영원의 세계’나 ‘하나님의 나라(천국)’에 대해서 감이 잘 오지 않을 때가 있을 겁니다. 영원이든, 천국이든 이 부분을 느끼고 이해하고 믿는 사람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이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 입니다.

신약 성경을 기록한 ‘고대 그리스어(헬라어)’로 시간을 나 타내는 두 단어가 있는데, ‘물리적 객관적 시간’을 가리키는 ‘크로노스(CHRONOS)’라는 게 있고, ‘심리적, 주관적 의미의 시간’을 가리키는 ‘카이로스(CAIRO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가운데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지난번 건강검진차 한국에 잠시 방문했을 때, 제자들과의 만남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이었거나 청년이었을때 알게 된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제가 말도 놓고, 편하게 말합니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제가 ‘너는 몇 살이니?’라 고 물어보니깐 ‘목사님, 저 벌써 마흔이예요. 마흔 넷이예요. 마흔 여섯이예요’ 그러는 겁니다.
그 나이를 듣고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물리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이 흘러 그 친구도 저도 각각 나이를 먹었는데, 그 친구들은 저에게 여전히 어린 제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생각 해보니 우리 교회에서 성인이 된 다음에 만난 우리 성도들은 지금 그 제자들과 같은 나이라도 제가 깍듯하게 대하고 있 는데, 그 제자들과 저 사이에는 ‘스승과 어린 제자’라고 하는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 있어서,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과 같았던 겁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어도 크로노스의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영원의 시간’이란 카이로스와 같은 시간이 존재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지만, 현실 세계 속에 있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제 교회 본당에서 채플 녹화 준비를 하고 있는데, 창밖으로 보니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화재가 발생해 새까만 연기가 하늘을 가득 덮고 있는 겁니다. 혹시 우리 성 도의 가정에 피해가 있을까 걱정하던 차에 그 근처에서 <실내 골프장>을 운영하던 집사님의 건물 옆 10미터 앞까지 불 길이 번지고 있다 는 겁니다.
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달려갔더니, 그 골목에 소방차 수십 대가 줄지어 있고 , 사람들은 온갖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들고 길로 대피해 있었습니다. 제가 우리 집사님 가게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붉은 불길이 그 건물을 향해 달려드는 것 같아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거 같았습니다. 우리 집사 님도 어떻게든 가게를 지켜야 하니, 그 3층 창문에서 소화기를 들고 화마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때부터 조금씩 불길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UC 대학 옆에서부터 우리 집사님네 건물 바로 옆 까지 약 100미터 정도의 블록 이 순식간에 모두 전소되어 버렸습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집 안에 있던 소중한 물건들과 추억이 가득한 물품들도 갖고 나오지 못한 주민들 은 울거나 망연자실한 표정 이었습니다.
화마가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던 것들을 한꺼번에 삼켜 잿더미가 되듯,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끼던 것들 도 영원한 것들은 못됩니다. 아무리 아름답던 사람도 늙고, 병들고, 죽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진 것 같지만 우리가 가진 것 중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이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던 믿음의 사람들은 그래서 장차 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천국)를 사모하며 본향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저는 필리핀에서 이민교회를 개척해 목회하고 있는 게 영적으로 감사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도, 교회도 잠시 잠깐 여기서 살다가 언젠가는 모두 조국으로 돌아가야 할 외국인으로 그리고 나그네로 사는 것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목회했다면, 거기가 영원할 줄 알고 땅도 사고, 집도 사고, 건물도 사고…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았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선 언제나 외국인이고, 나그네의 삶을 살다보니 여기에 영원히 살 것이라는 생각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필리핀에서 살든, 한국에서 살든, 우리가 어디서 살든 우리는 이 땅이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썩고 망하게 되어 있기에, 우리는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 만족하지 말아라
- 천국을 소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