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8:1~8

구약 성경 <사무엘상>은 사울 왕과 다윗에 관한 기록을 다루고 있지만, <사무엘하>는 1~24장 전체가 다윗에 관한 기록만 다루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1장]은 ‘사울 왕의 죽음’을 다루고 있고,
[2장]에서는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됩니다.
[3-4장]은 이스라엘의 ‘두 왕국 시대’를 보여주고 있는데,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셋이 통치하는 이스라엘과 다윗이 통치하는 유다 왕국 시대인데, 7년 만에 이스보셋이 죽으면서 사울 왕가의 완전한 몰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5장]에서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6장]은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면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
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심을 보여주는 신정 왕국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7장]에서 다윗은 성전 건축에 대한 소원을 아뢰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그에게 ‘다윗 언약’이라는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인 [8장]은 ‘다윗이 어디를 가든 이긴 승전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던 소년 목동이었지만, 골리앗을 죽이며 전업 군인이 됩니다. 그리고 후에 왕이 되었지만, 그의 아이덴티티(Identity)는 ‘예배자’였습니다. 시편 150편 중에 그가 쓴 시와 찬양이 무려 73편 이상입니다.
역대상에서 다윗에 관한 기록은 11~29장까지입니다. 그런데 22~29장까지는 다윗이 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레위 사람들이 성전 봉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사장의 반차를 나누고, 분야별로 성가대를 조직하고, 성전 문지기를 조직하고,성전 곳간 맡은 사람들을 세우고, 성전 건축에 쓸 재정을 준비하고, 성전 건축을 명령하는 내용입니다. 역대상의 다윗에 관한 기록 중에 절반 가까이가 모두 제사와 예배에 관한 기록이었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뼛속까지 군인인 사람도 있고, 교사인 사람 도 있고, 사업가인 사람도 있지만… 다윗의 아이덴티티(Identity) 는 언제나 ‘예배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사무 엘하 8장]을 보면, ‘다윗이 어디를 가든 이기는 자’가 된 기록 이 나옵니다. 뼛속까지 예배의 영으로 충만했던 예배자 다 윗 은 어떻게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1.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

사무엘하 8장 1~14절은 <다윗의 승전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한 뒤 광야 40년의 험난한 세월을 보낸 이스 라엘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입성 했지만, 그곳엔 이미 강 대한 이방 족속들이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땅을 어느 정도 정복 을 했지만, 사울이 40년간 왕으로 다스렸을 때까지도 이스라엘의 영토는 그리 넓지 않았고, 주변엔 여전히 강대한 나라들이 시시때때로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된 후로 이스라엘의 동서남북에 있었 던 블레셋과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 아람 등등 사방의 대적들 과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 언약]인 사무엘하 7장 9절에서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주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다윗이 뛰어난 전략가였고, 용맹한 전사였지만 그 모든 승리가 다윗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하 8장 4절을 보시면,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 줄을 끊었더니”
다윗이 아람의 ‘소바 왕 하닷에셀과의 전투’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마병이 1,700명이란 말은 말이 1,700마리가 있었다는 건데, 그들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 하면 1,700마리의 말을 전리품으로 얻게 된다 는 말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병거 100대를 끌 말만 남겨두고 , 나머지 말 들의 ‘발의 힘줄(hamstring)’을 끊어버린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말의 힘, 무기, 군사력, 사람의 힘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자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예배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하나님을 경외함(Fear of GOD)’입니다. 경외하다는 말의 영어 단어는 ‘fear’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두려워하다’라 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어떤 공포의 대상으로서 두 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 존경과 존중의 대상으로서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참된 예배라는 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직장에 고용된 사람은 그 회사의 사장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오너(owner)는 나에게 월급을 주 기도 하지만, 언제든 나를 해고 시킬 수도 있는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거만한 사람이라도 그 사장 앞에 서는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두려워한다’는 것 안에는 ‘그것 또는 그 사람을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타깝게도 돈을 의지하는 마음이 큰 사람은 그 돈 앞에 벌벌 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힘 있는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람 때문에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탈 때가 많게 되어 있습니다. 안정적이고 풍요한 환경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 환경에 조금 이라도 불안한 상황이 오면 낙심하고 절망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주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돈과 사람과 환경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돈도 사람도 환경도 나에게 도움을 많이 주지만 그것들이 내 인생에 절대적인 것 은 아닙니다. 절대적 이란 것은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무엇’을 말합니다. 있으 면 좋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도 살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 인생에 절대적인 분이십니다. 왜냐하 면 내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생명보다 더 귀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생 명이십니다. 요즘 로봇이나 인형을 사람하고 똑같이 만들고 있는데, 겉모양은 사람하고 똑같지만, 그 코에 호흡이 없다 면, 생명이 없다면 아무리 세계 최고의 미남‧미녀의 얼굴을 갖고 있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교회가 크고 웅장한 건물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이 임재하시지도 역사하시지도 않는 교회는 영적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껍데기만 있지 그 교회 안에 성령의 운행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더 나이가 들어 늙더라도 영적 생명력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나는 우리 교회가 수십 년의 역 사를 갖게 되더라도 늙은 교회가 아니라, 더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유럽의 2천 년 역사는 ‘기독교 역사’를 빼고 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수백 년에 걸쳐 건축된 웅장한 교회 에 관광객들은 오고 가지만 정작 예배 시간에는 백발의 노인 20~30명만 앉아 예배하는 곳이 수두룩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사람들이 풍요해지다 보니깐, 물질을 가장 우선시하는 세속주의와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최우선 에 두는 인본주의가 원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도 점점 그 모습을 닮아가고 있어 걱정됩니다.
다윗이 왜 말의 힘줄을 끊는 바보 같은 짓을 했었겠습니까? 다윗의 첫 번째 전투 는 ‘골리앗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그 때 다윗이 값비싼 칼과 창을 갖고 골리앗을 이겼습니까? 아닙니다. 시냇가에 가서 주어 온 물맷돌 하나 들고 나가면서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 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하면서 승리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람과 사람의 힘을 의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된 예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 그 주님만을 의지하기 때문 입니다.
작년에 우리 교회가 12년이 넘도록 사용하던 이 건물의 건물주로부터 ‘건물 매각 계획으로 교회와 1년만 계약 연장해 준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당장 1년 뒤에 교회를 이전해야 하는 상황에 저와 우리 성도들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12년이 지나는 동안 교회 주변 랜트비는 크게 올랐고, 12년 전 1m2 당 20,000 페소였던 땅 값은 300,000 만 페소로 뛰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400sqm 정도의 공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주변에서 이 정도의 공간을 임대하려면 최소 한화로 5백~1천만 원을 월세로 주며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가는 성도들의 헌금으로 월세 내다 다른 사 역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지만 제 마음엔 전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계기를 통해 지난 12~13년 동안 너무 좋은 공간을 정말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했다는 것을 건물주에게도, 하나님께도 감사할 기회였습니다. 물가 상승률이 매년 6% 이상씩 오르는데, 지난 13년 동안 우리 교회 건물 월세는 단돈 2천 페소(한화 5만 원) 올랐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 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세밀하게 돌보시고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까? 이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 공동체 에 “40일 기도를 다섯 번 하라”고 말씀하셔서, 우리는 그 명령에 순종하며 계속 40일 기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원래 다음 달 5일이면 우리 교회는 다른 곳으로 이사 나가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건물 오피스로부터 이번에 ‘3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럼 3년 뒤엔 어떻게 되냐구요? 뭐하러 그런 걱정을 하십니까? 또 기도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예배자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예배자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지금의 상황과 환경 그리고 어떤 사람과 물질을 의지한다면, 시시각각 두려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예배자는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과 37절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상황도, 그 어떤 문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하나님만을 두려워 하고, 하나님 만을 의지 하는 예배자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자는 어떤 환경 이나 사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이 승리케 하신다
오늘 본문인 사무엘하 8장은 <다윗의 승전사>를 기록하고 있는 장입니다. 그래서 1~14절까지의 내용들 중에 다윗이어디 전쟁 나가서 패배했다더라 든지, 죽음의 위기를 겪었다든지, 시련 속에 있었다든지… 그런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가는 곳마다 이겼더라는 기록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이라고 그의 인생 속에 늘 평안과 기쁨과 성공과 승리만 있었겠습니까? 다윗이 오늘 본문의 기록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놀라운 승리를 거둔 역사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서
그 어느 누구 보다도 큰 시련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가 쓴 73개의 시편만 보더라도 그중에 상당수가 시적 장르로 보자면 ‘비탄시’에 속합니다. 그러니깐 그가 큰 시련과 환난과 고난의 깊은 터널을 지날 때 그 시를 썼던 것입니다.
다윗의 시로 알려진 [시편 23편]을 보면,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
시는 도다.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여기까지 보면, 이 얼마나 평화롭습니까? 선한 목자의 인도를 받은 양들이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 받아 한가로이 풀을 뜯고, 목을 축이고, 새 힘을 얻고 있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런데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시는 다윗이 대적과 원수에게 쫓겨 다니던 중에지은 시였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에서 대적의 화살이 날아와 다윗의 심장을 뚫을지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환난의 날에 이런 시를 썼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 4절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고 있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죽음의 골짜기’를 걷고 있는데, 언제 어디에서 화살이 날아올지, 창이 날아올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내가 …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셔서 나의 방패가 지켜 주시고, 내게 은혜를 되어 주시고, 나를 베풀어 주시고, 나를 구원하실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는 너무나도 평화로운, 소망 가득한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들은 이런 엄청난 환 난 중에도 두렵지 않은 것 입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야곱의 아들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30세 부터 110세까지 80년 동안 영광을 누리며 살던 모습만 기 억하고 있는데, 그가 총리가 되어 통치하고 있었을 때, 22년 만에 쌀을 구하러 애굽에 온 형들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울었 던 일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종으로 팔려 와 억울한 옥살 이를 하며 그 고난의 세월 동안 그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그 아픔을 삼켜 왔으면 그랬겠습니까? 그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해 애굽의 총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신하들을 다 내보내고 대성통곡하는 모습은 성경을 읽는 우리의 마음마저 울컥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요셉이 종으로 팔려간 17세때부터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갇혀 살던 그 환난의 날들을 보낼 때, 요셉이 불평하고, 원망하며, 형들을 향한 복수심에 불타 있었 던 가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배자는 그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내가 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신뢰하는 것 입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하 8장 6절을 보시면,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인생 속에는 우리의 작은 이해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시련과 고난의 날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도, 요셉도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도 결국 하나님께서 승리케 해 주실 것을 믿고 살아갔던 것입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 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하셨지만, 그의 인생 속에도 수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그가 마지막 승 리자가 되게 해 주셨던 것 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최초의 순교자 인 ‘아벨’부터 시작해서 에녹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 등등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히브리서 11장 33절에서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그리고 11장을 마치면서 38절에서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며, 하나님을 예배했던 예배자들인 그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과 환경들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그리고 왜 없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에는 언제나 그런 일들과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과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에 싸여 있지 마시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예배할 때, 그 모든 상
황들을 돌파할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 예배자들을 하나님께서 승리케 해 주실 것입니다.

-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
- 하나님이 승리케 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