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4: 15 – 30>
우리는 살면서 매일 무엇인가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는 포기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게 더 유익이 될만한 것들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을 것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포기하거나 버리는 것이 우리의 선택을 통해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 사소한 것이라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 선택으로 인해 나중에 크게 후회할만한 일이 벌어지게된다면, 그 선택은 그 어떤 것보다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 선택으로 인해 우리의 생(生)과 사(死)가 결정이 된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몰락한 유다왕국의 패잔병들은 애굽으로 피신했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에 항복하고 유다 땅에 남아 있으면 그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나중에 다시 회복케 될 것이다’는 메세지를 받았지만, 그들은 예레미야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우리와 우리 선조가…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16,17절)”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원래 하던대로 우상을 섬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2절에서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행위를 더 참을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폐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주민이 없게 되었나니”
라고 말하며,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이 왜 멸망했는지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27절을 보시면,
“보라 내가 깨어 있어 그들에게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니 애굽 땅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이 칼과 기근에 망하여 멸절되리라”
결국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계속해서 우상을 숭배하며 예레미야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모두 애굽에서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그 선택이 과연 나중에 후회할 만한 선택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봐야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복 주실 일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봐야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은혜 베푸실 선택과 결정을 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