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하시는 하나님

시편 109: 21~31

21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22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23 나는 석양 그림자 같이 지나가고 또 메뚜기 같이 불려 가오며

24 금식하므로 내 무릎이 흔들리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25 나는 또 그들의 비방거리라 그들이 나를 보면 머리를 흔드나이다

26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27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28 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29 나의 대적들이 욕을 옷 입듯 하게 하시며 자기 수치를 겉옷 같이 입게 하소서

30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니

31 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사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 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오늘 본문인 시편 109편은 다윗이 큰 시련과 고통 가운데 빠져 있었을 때 지은 시입니다. 특별히 1절부터 20절까지의 내용 중에는 대적들이 여러 거짓말을 퍼트리고, 온갖 악한 말과 저주를 퍼붓고, 그리고 공격적인 험한 말들을 통해서 다윗을 괴롭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3절, 24절을 보시면, “나는 석양 그림자같이 지나
가고 또 메뚜기 같이 불려 가오며, 금식하므로 내 무릎이 흔들
리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다윗은 109편 4절에서

    … 나는 기도할 뿐이라”는 고백을 했었던 것처럼, 예기치 않았던 고난과 시련 앞에 다만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24절을 보니깐 그는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 기간이 꽤 긴 시간 동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육체적으로 수척해지고, 무릎이 흔들려 일어날 힘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처지가 잠시 잠깐 있다가 없어질 석양의 그림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 석양의 그림자는 해가 지는 동시에 시작되는 캄캄한 어둠 속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풍에 불려 사라지는 메뚜기와 같다고 다윗은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5절 말씀은 시편 22편 6절과 7절 말씀과 비슷한데,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말하고 있듯이 다윗은 대적들의 엄청난 비난과 조롱과 모욕 속에 너무 큰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28절과 29절을 보시면, “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 하리이다. 나의 대적들이 욕을 옷 입듯 하게 하시며 자기 수치를 겉옷같이 입게 하소서” 대적들의 험악한 공격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지만,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기도할 수밖에 없었고 26절 에서 29절까지를 통해서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구절들을 통해서 다윗은 ‘복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그 안에 확고하게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수(復讎)’라는 말은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5장 4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다윗이 갖고 있었던 믿음과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은 그리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12장 19절을 보시면,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억울한 일을 겪더라도 ‘친히 복수하지 말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내가 재판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는 것입니다. 사회적 질서 유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간 세계에 재판장이 있지만, 인간 재판장은 공정과 공의롭지 못할 때가 있는 겁니다. 진정한 재판장과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내가 재판자와 심판자가 되어 누군가를 복수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십니다.

    둘째, 복수는 끊임없는 복수를 부른다. 지금도 세계 역사 속에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의 조상 대대로부터 내려오던 원한에 대한 복수의 복수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입니다. 이 땅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복수심은 결국 내 마음과 인생을 파괴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 본때를 보여 주려고 하는 마음… 같은 것을 계속 품고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은 파괴적이고, 미움과 분노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래서 신명기 32장 35절 말씀을 인용한, 로마서 12장 19절 말씀을 통해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복수는 내 영역의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복수하려는 것은 월권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또 다른 시인 시편 94편 1절에 보시면,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스스로 복수할 수 없었고, 기도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다윗의 모든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대신 복수하시고, 심판하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했던 것입니다.

    시편 109편 31절을 [쉬운성경]의 번역으로 보시면, “왜냐하면 주는 연약한 자의 오른편에 서서, 그가 죄 있다고 하는 자들로부터 그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공의로운 재판자와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연약한 여러분의 모든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그 악한 자로부터 여러분의 생명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겁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지만, 내가 복수하고 원수를 갚으려 하지 말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너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지만, 내가 복수하고 원수를 갚으려 하지 말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오늘의 묵상
    내가 재판장과 심판자로 행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