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1~11>
마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21장 42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는 시편 118:22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자신을 가리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머릿돌’이라고 하면 건축물의 전면에 그 건물이 건축된 날짜라든가, 시공한 단체 이름을 기록한 ‘표지석’을 많이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고대 건축물들은 대부분이 석조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건물의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 모퉁이 돌을 놓아 양쪽 벽을 연결하게 됩니다. 때문에 건물을 견고하게 유지하는데 이 모퉁이 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장차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같은 유대인들에게 버림받게 되지만, 자신이 하나님과 죄인 된 사람들을 연결하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지만(이사야53:3), 주님은 그 건물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귀히 여기지 않아 버림받았지만 가장 요긴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더 귀하게 쓰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두 제자를 그 근처 마을에 보내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매인 나귀과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그 나귀의 새끼를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절을 보시면,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것은 스가랴서 9:9절의 말씀을 메시야로서 성취하시고 있는 내용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께서 메시야로서, 만왕의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데 세상의 왕들의 대관식이나 행진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세상의 왕들은 화려한 마차와 함께 멋진 말을 타고 입성하지만, 예수님은 한 번도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어 걸으면서도 위태위태한 나귀의 어린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시고, 그들을 위해 대신 매 맞는 종으로, 십자가에 달려 대신 죽는 종으로 즉 겸손의 왕으로 입성하시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볼 때마다 오래 전에 제게 있었던 은혜의 시간을 기억하게 됩니다. 제가 목사 안수를 받고 새로운 교회에 부목사로 부임할 때였습니다. 저는 약 10년간 두 교회에서 전도사와 강도사, 목사로서 사역했었는데, 그 두 교회 모두 작은 개척교회였습니다.
그러다 세 번째로 사역하게 된 교회가 의정부의 광명교회였고, 개척 후 11년 만에 당시 2천명 가까이 출석하는 큰 교회였습니다. 또 그 교회는 성도들의 영적 온도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작은 개척교회만 섬기다가 그렇게 부흥하는 대형교회에 부임하게 되니 기대와 흥분도 되었지만, ‘작은 개척교회만 섬기던 부족한 내가 과연 사역을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임 인사하러 가던 첫 주일에 잠을 설쳤습니다. 결국 새벽 4시 즈음에 일어나서 성경을 펴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순서대로 읽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읽었던 성경이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1장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어 내려가는데 오늘 본문 3절 말씀에서 딱 멈추더니, 이 구절을 읽고 또 읽고 묵상하는 중에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는 말씀이 주님의 음성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너를 부족하다 할지 모른다. 너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연약하고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든지 “주가 쓰시겠다 하라” 내가 너를 쓰리라. 내가 너를 통해 일하리라. 너는 작은 나귀의 새끼처럼 힘없고 연약하지만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네가 나를 태우고 가는 곳마다 내가 역사할 것이다. 내가 너를 붙들어 주리라…’
이런 말씀이 그 새벽에 제 마음에 충만하게 임하였던 것입니다. 사람들도 예수님을 귀히 여기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요긴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주님께서는 오늘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이 말씀 앞에 누가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쓰시겠다 하시는데, 우리가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주님은 나를 쓰시길 원하십니다. 작은 나귀의 새끼와 같이 자신이 힘없고 부족할 지라도, 그 주님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