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1~3>
– 40일 특새 : 갑절의 은혜를 구하라(4) –
우리나라는 날이 좀 쌀쌀해진다 싶으면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 등의 가축전염병이 도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가축전염병이 사람에게도 전염될 수 있다는 요소가 있어서 정부에서는 여지없이 축산농가의 닭, 오리, 돼지, 소 등의 살처분(생매장)을 감행합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이렇게 살처분 된 가축은 무려 7천200만 마리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처분할 때 전염병이 시작된 농가의 가축만 살처분 하는 게 아닙니다. 주변 3km 내에 있는 모든 농가의 가축들까지 살처분 하게 되어 있어서, 감염되지 않은 건강한 가축이라도 모두 살처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통로를 통해 혹여 라도 병원균이 감염됐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346년에서 1353년 사이 중세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유행했습니다. 이 전염병이 퍼지게 된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그 중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상선 하나가 도착했는데, 그 선원들은 모두 이상한 전염병에 걸려 있었고 항구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흑사병이 유럽에 퍼지게 된 계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유라시아 전역에서 무려 7,500만~2억 명의 사람들이 흑사병으로 죽게 됩니다. 분명 시작은 어디에선가, 누군가 한 사람에게로부터 시작된 전염병이지만 불가 몇 년 안에 유럽 인구의 30%이상을 몰살할만한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고 그 분을 따른다는 것은 과거의 것, 옛 습관과 죄를 청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가 갖고 있는 옛 습관과 죄와 세속적인 가치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힐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것들을 남겨두면 그것은 마치 전염병처럼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과거를 청산하고 생명의 길인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절과 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고, 그를 복의 근원으로 만들어주시겠다는 언약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의 언약은 오늘 본문 1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대해 그가 순종할 때 실행되는 것입니다. 순종이 없이는 응답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녀가 여러분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 그걸 들어주고 싶겠습니까? 준비되지 않은 자녀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준다면 그거야 말로 자녀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납득이 되는데,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새로운 곳에 가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이 살던 곳은 지금의 이라크 남부(유프라테스강 하구)에 위치한 갈대아 ‘우르’라는 지역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그의 가문 대대로 그 강의 상류에서부터 하류에까지 흩어져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고향을 떠나라는 겁니다. 친척들, 아버지의 친족들이 있는 곳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나 도착한 곳이 ‘하란’이란 곳이었는데, 그곳 역시도 아브라함의 친족들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자신의 친족과 부족을 떠난다는 것은 꽤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떠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여호수아 24장 14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아브라함을 포함하여 그의 가문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가운데 있었던 그를 뽑아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던 것입니다. 그곳에 계속 남아 있으면 그가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환경에서 뽑아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하게 하신 겁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도착한 가나안 땅 역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갈대아 우르나, 가나안이나 주변 환경은 똑같은 거 아닙니까?
그곳에서 부르신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상을 섬기는 곳이었고, 두 번째는 친족(부족)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의 특징이 뭐겠습니까? 사람이 믿고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상을 믿고 그에게 복을 빕니다. 또 사람은 약하기 때문에 친족들과 같이 힘 있는 사람, 나를 도와 줄 누군가를 의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내려놓지 않는 한 그 사람은 진정한 믿음의 여정을 시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 하지만 끝까지 내려놓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그게 우리의 의지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그게 나의 또 다른 우상일 수 있고, 그것이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세상의 즐거움과 영광 또는 어떤 죄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One way Jesus)’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의 삶으로부터 불러내어 오직 예수의 길을 걷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의지하던 것, 내가 내려놓지 못하던 것들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길인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깨끗하게 청산되지 않는 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진짜 믿음의 삶은 시작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이 있기를 바라신다면 우리가 섬겨야 할 유일한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섬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