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6:1~6
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2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6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하는 것에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믿는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존재에 대한 믿음’은 곧 ‘능력에 대한 믿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분이신지에 대한 존재에 대한 믿음은 그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믿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9장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에 관한 사건이 나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살짝 잡아도 12년 동안 고칠 수 없던 그 불치병을 치료받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살짝 잡았는데, 그 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향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9: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뒤이어 기록된 ‘두 사람의 맹인’ 사건이 나옵니다. 두 사람의 맹인이 예수님을 향해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 질렀고,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라고 물으셨더니, 그 맹인들이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마9:27~31).
마태복음 8장에는 ‘백부장의 병들어 죽어가던 하인’에 관한 사건이 나옵니다. 우리가 그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백부장은 예수님께 병을 고쳐 주시기를 간구했는데, 직접 오셔서 안수하셔서 고치시는 게 아니라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하시며 감탄하십니다. 그리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8:5~13).
그러니깐 하나님의 능력은 한계가 없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의 사이즈에 따라 기적의 내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작아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도 능력의 한계가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오.
시편 116편 1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본 시편의 저자는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내용상 다윗의 다른 시들과 유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다윗을 저자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시인이 갖고 있는 확고한 믿음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신다는 믿음인 것입니다.
3년여 전에 우리 딸아이가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받아 와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 강아지가 제 앞에서 얼마나 애교를 부리고, 저를 좋아라 하는지 모릅니다. 안방 침대 옆에 훈련을 위한 작은 간식통을 넣어 놓은 수납장이 하나 있는데, 저만 보면 그리로 달려가서 발톱으로 그 수납장을 긁으면서 간식 달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그런데 간식을 자주 주면 안 되니깐 제가 가만히 있으면 그 수납장을 계속 긁고 살짝 짖기도 하고 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그 작고 귀여운 생명체의 요구를 거절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내 요구를 들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지금 당장 응답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는데 어떤 변화가 없고, 응답도 없는 것 같고, 고통과 시련은 점점 더해 가는 것 같다라고 생각될 때 많은 이들이 기도하기를 포기합니다. 포기하는 이유는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응답의 때는 내가 알 수 없지만,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내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 는 확신이 있다면 기도를 포기하겠습니까? 응답받을 때까지 구하고 또 기도하는 것입니다.
3절과 4절을 보시면,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시인이 기도하자마자 어떤 놀라운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기도하고 있지만 죽음의 올가미가 점점 조여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환난과 슬픔에 깊이 빠져 있는 것 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하며, 계속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6절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이 구절에서 ‘순진한 자’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페티(פתי)’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마음이 열려 있는 자, 단순한 자, 무슨 말이든 믿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시인은 매우 큰 환난 가운데 있지만,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고,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신 하나님을 믿고,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그의 환난 속에서 결국은 구원해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한계가 없습니다. 내 작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그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작은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응답하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의심하는 자는 무엇이든 얻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1.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한계가 없습니다. 내 작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그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작은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오늘의 묵상
내 작은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