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0:1~9>
우리 첫째인 딸아이가 호주에서 돈 벌어 가며 거기서 공부하겠다고 갔었는데, 사실 그곳 생활이 녹록치 않았습니다. 물가는 너무 비싸고, 목회를 하는 아빠는 제대로 재정적인 지원도 못 해 주고, 아르바이트 자리 알아보겠다고 이력서를 100통씩 프린트해서 하루 종일 돌리고, 그러면서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했고…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어려서부터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던 아이가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체중이 10kg씩이나 빠지고, 결국 병에 걸려 쓰러져 응급실에도 실려 가기도 하고, 여러 유학생들과 함께 사용하는 숙소에 있었지만 그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겁니다. 아무래도 자기 집 만큼 편했겠습니까?
그렇게 고생을 하다가 필리핀 집에 오니 집이 너무 좋은 겁니다. 집에 돌아와 자기 방에 들어가면서 하는 말이 ‘너무 좋다’ 그럽니다. 선진국인 호주는 거리도 깨끗하고, 빌리지도 예쁘고, 자연도 너무 예쁘고, 모든 것이 다 좋을지라도 거기에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없다면 그곳은 나의 안식처도, 피난처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 어학 연수하다가 한국에 돌아가 직장생활을 하던 청년이 얼마 전에 저에게 문자를 보내서 ‘목사님, 세부는 평안한가요? 한국은 지금 난리도 아니예요…’그러는 겁니다. 아무리 인프라가 탁월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롭더라도 그곳에서 우리가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다면, 그렇게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그곳에서 우리는 늘 불안과 걱정과 염려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다가 모든 게 다 힘들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여기서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멈추고 싶어도, 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내 의도와 관계없이 인생의 코너에 몰려 당황스럽고 난처한 상황에 이를 때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참된 쉼을 주시는 진정한 안식처가 되어 주신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그 분께 나아갈 때 우리는 그 분 안에서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울 때, 내 힘으로 안 될 때 주님께 피하십시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모두 분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2절과 3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마지막 단 지파까지 기업의 땅을 분배해 준 이후에 모세율법을 통해 제정해 놓은 ‘도피성 제도’를 실행하기 위해서 도피성을 지정하게 합니다. 도피성은 요단강 동쪽에 세 곳, 요단강 서쪽 가나안 땅에 세 곳을 지정하게 됩니다.
도피성은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 그 사람을 구제해 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습니다. 고의로 사람을 죽였을 경우에는 그 살인자 역시 죽음으로서 그 죄의 벌을 당해야 했습니다(출21:12). 하지만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실수로 누군가를 죽였을 경우에는 이스라엘 안에 있는 여섯 개의 도피성 중에 어느 곳으로든 피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회중 앞에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 밖으로 나가면 안 되었습니다.
이 도피성 제도를 마련하신 이유는 또 다른 피의 보복과 복수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도피성으로 피한 자도 무조건 살아남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재판을 받아 만약 그가 거짓이면 그는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는 그는 당시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 성에서 3년이고, 5년이고, 10년, 20년… 기약 없이 거기서 벗어나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실수로라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나의 생명처럼 모든 이들의 생명 역시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는 자기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6절). 히브리서 7장20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대제사장이시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는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실수로 죄를 지었을 지라도 그 역시도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죽음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십니다.
시편 46편 1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오늘 본문의 도피성 제도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내 인생의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심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또한 대제사장 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과 죽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자유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도피성이요, 우리의 피난처시오, 우리의 참된 안식처 되신 주님께로 나아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