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사이에서

시편 119: 113~120절

113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114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115 너희 행악자들이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리로다

116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117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118 주의 율례들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그들의 속임수는 허무함이니이다

119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찌꺼기 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사랑하나이다

120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심판을 두려워하나이다

오늘 본문 113절을 보시면,
“내가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의 상반절을 [쉬운 성경]에서는 “나는 마음이 간사한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 역본(70인역, 시리아역)에서는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을 ‘범법자들, 헛된 생각들을 하는 자들’이란 뜻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속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는 마땅히 가져야 할 순수하고 바른 생각에서 벗어나 헛된 생각들을 하는 자들을 통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들을 향해 ‘마음이 간사한 사람,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런 간사한 마음을 가진 자들을 싫어하고,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나라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지만, 국민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크게 둘로 나뉘어졌었는데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가치와 맞는 사람을 지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자기 수준에 맞는 사람을 지지한다는 겁니다. 죄송한 말이 될 수 있겠지만, 간사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간사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친구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치가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의 가치가 진실과 정직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우리가 가장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위선’입니다. 물론, 우리는 온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기 때문에 겉과 속이 똑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목사인 저 역시 거꾸로 매달아 탈탈 털면 왜 부끄러운 모습이 안 나오겠습니다.

아침 기도회 마치고 우리 남자 집사님 중에 한 분과 잠시 대화를 했었는데, 우리 집사님이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싶어서 성경도 정독을 하고 있고, 매일 아침마다 굿모닝채플도 하고, 꼼꼼하게 말씀 노트도 하며, 술담배와 같은 안 좋은 습관도 끊으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얼마 전, 비즈니스 미팅 약속을 잡고 어떤 필리핀 사람을 기다리는데 1시간이 넘도록 약속 장소에 안 오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더니 아직도 집이라는 말에, 우리 집사님의 감정이 폭발해 카페에서 전화로 크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는 겁니다.

그리곤 저에게 “저는 왜 이렇게 변화되지 않을까요?” 라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교회에서의 나의 모습과 세상에서의 나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서 늘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집사님께 제가 “집사님이 하셨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지금 늬우치는 것만으로도 이미 집사님은 변화되고 있으신 겁니다.”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전라남도 완도라는 땅끝마을에서 사는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서울’이란 곳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가는 길을 잘 몰라 물어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서울까지 가는데 여러 실수도 그 과정에 있었습니다. 시간은 꽤 걸렸지만 이 사람은 결국 서울에 도착한 겁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 사람은 출발했는데, 서울이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여기저기 뱅뱅 돌며 방황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여러분이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모습으로 자주 스스로에게 낙심이 되고, 절망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변화’라는 방향으로 정해져 있다면 우리가 자주 넘어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출발한 사람과 같이 변화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조차 없는 사람은 그 죄의 수렁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여호수아 24장 15절에서 여호수아는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8장 21절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고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 여러분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실수할 수도 있고, 또 죄의 유혹에 넘어가 내 믿음의 바닥을 찍고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다시 일어나십시오. 내 안에 있는 죄의 마음에 먹이를 주지 마시고, 성령님께 더 집중하십시오. 내 안에 성령님이 더 크게 영향력을 발휘하시도록 나를 맡기십시오. 내 마음의 결정권, 소유권을 주님께 넘기십시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 여러분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실수할 수도 있고, 또 죄의 유혹에 넘어가 내 믿음의 바닥을 찍고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다시 일어나십시오.

오늘의 묵상
요즘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는 것은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