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시편 109:1~4 

우리가 살다보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요? 사실 ‘이런 것이 좋은 방법이다’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 따라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가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억울하다 보면, 어떻게든 그 억울함을 빨리 벗어버리고 싶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삼자대면’이라는 방법도 쓰는데, 삼자대면하면 누군가 거짓말 한 것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럼 분명 누구의 잘못인지를 가려낼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은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삼자대면’은 누군가를 확실한 죄인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것은 모든 관계를 파괴하는 파괴적인 방법입니다. 그 사람과 더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쓸 수 있는 방법일지 몰라도 결코 지혜로운 방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군가 죄인을 만들면, 그 당장의 문제는 해결될 겁니다. 거짓말 한 사람이 정말 나쁜 사람이죠. 하지만, 그 잘못한 사람이 그 이후에 변화 되서 ‘저는 나쁜 사람입니다. 잘못했습니다. 이젠 그렇게 살지 않겠습니다’라고 할까요?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는 뒤돌아서 또 다른 말을 만들 수 있고, 또 다른 방법으로 내게 악감을 갖고 계속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삼자대면이라는 방법은 누군가의 적극적 표적이 되는 어리석은 방법인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겪으면 여기 저기 다니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변호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 역시도 지혜롭지 않은 방법입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사람에게 계속 전달될 것이고, 그러면서 그 말이 돌고 돌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잔뜩 부풀려져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말을 들은 그 사람은 또 다른 이유로 나를 공격하게 됩니다. 전에는 한 가지 문제로 나를 헐뜯었다면 이제는 두 가지, 세 가지 문제로 나를 더욱 강하게 헐뜯을 수 있는 제목을 제공한 셈이 되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일까요?

시편 109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다윗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억울한 일을 참 많이도 겪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억울한 일을 겪을 때마다 그는 도망 다녀야 했고, 백성들의 조롱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는 고난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 시편을 기록할 때, 다윗이 어떤 억울한 일을 겪었을까요? 2~3절을 보시면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전형적인 억울한 일을 겪고 있었던 겁니다.
‘악한 입, 거짓된 입, 속이는 혀, 미워하는 말’ 이라는 것의 특징은 ‘진실이 아니고, 말로서 나를 공격하는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도 않은 일, 있지도 않은 일, 진실이 아닌 것을 퍼뜨려 나를 곤란에 빠뜨리고, 나를 고립시키고, 나를 떨어뜨리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려고하는 시도인 것입니다. 말 속에 창을 숨겨 나를 향해 던지는 겁니다.
그런 일을 겪게 된다는 것은 ‘말의 비수’를 맞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러니 다윗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억울하고, 분하겠습니까?

이 때 다윗이 그 억울함을 벗어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삼자대면’도, ‘(사람들 찾아 다니며) 변명’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4절 말씀 보시겠습니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다윗은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억울하게 한 사람들에게 조차 끝까지 호의를 베풀었었습니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그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심판자의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야 하는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겁니다. 억울하더라도 끝까지 호의를 베풀어야 하는 겁니다. 그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심판자의 자리가 아니라, 사랑의 자리요, 호의를 베푸는 자리여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4절에서 다윗이 했던 것처럼, “나는 기도할 뿐이라” 즉, 나는 심판하거나, 원수를 갚거나 하는 일을 삼가야 하지만, 그 문제를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1절 말씀에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여러분의 손에 피를 묻히지 마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재판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 분께 기도하십시오. 그 분은 여러분의 모든 억울함을 풀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모든 마음의 무거운 짐들과 억울함들까지 하나님께 의탁하는 하루가 되시 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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