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되지 않는 건 비극이다”

<창세기 19:30~38> 

우리나라 70, 80년대를 대표하는 조직폭력의 보스였던 김태촌과 조양은의 인생을 보면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둘 다 80년대를 주름잡던 폭력조직을 만든 인물들이고, 온갖 폭행과 협박과 사기 등등의 죄들로 감옥을 들락거렸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스스로 범죄의 길을 떠나서 신앙인의 길로 들어섰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게 됩니다. 한 사람은 과거의 조폭 부하들을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 신우회를 결성하기도 했고, 한 사람은 신학교에 들어가 한 때 목사의 길을 가기도 했습니다.

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인생이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삶의 변화에 대한 놀라운 사건입니까? 그래서 순수한 성도들과 교회들은 그들을 초청해서 교회에서 들어볼 수 없는 폭력조직의 이야기들과 신앙으로 인한 변화의 삶에 대한 놀라운 간증들을 듣게 되고, 이들 또한 전국을 돌며 자신들의 변화에 대한 드라마틱한 삶을 간증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하나같이 좋지 않은 범죄에 연루되었고, 구속되고, 석방되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들의 간증을 눈물로 들었던 사람들은 그들의 위선에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정말 예수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영접했던 것일까요? 그들은 정말 범죄를 끊고 변화될 마음이 있긴 있었던 것일까요? 그 진실은 하나님만이 아시고, 그 판단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으시겠지만, 어찌되었건 그들 인생의 결말은 그리 은혜롭지 않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교훈은 사람이란 존재가 정말 변화되기 힘든 존재이긴 하지만, 잘못된 가치와 잘못된 습관과 행동이 변하지 않는 것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던 악한 성읍 소돔은 하나님의 진노의 유황불 심판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롯과 두 딸은 가까스로 그 성을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들은 큰 충격 가운데 두려운 마음에 산으로 올라가 굴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기도 부끄러운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31절과 32절을 보시면,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을 때, 우리 인간에게는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윤리의식과 거룩한 이성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때문에 사람은 잘못된 일을 하게 될 때 그것에 대해 배우지 않았어도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도 그 양심이 반응을 하게 되어 죄책감 같은 것을 갖게 되는 겁니다.

이 구절의 내용은 딸들이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고자 하는 ‘근친상간(近親相姦)’을 말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심판을 받아 그들만이 살아남았을 지라도, 아무리 남자가 없기로서니 어떻게 아버지를 통해 후손을 이어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지금의 우리로서는 그 딸들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내용입니다.

왜 이 딸들은 이렇게 잘못된 생각 속에 살게 되었을까요? 분명 롯이 하나님에 대해서 그 딸들에게 말해줬을 텐데, 어쩌면 소돔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믿고 사는 가정이었을 것으로 추측이 되어 지는데, 어떻게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창세기 19장 롯과 그의 가정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은 그 일 뿐만은 아닙니다. 천사가 롯의 가정에 들어왔을 때, 소돔성의 젊은 남자들과 늙은 남자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온 천사들과 성관계를 맺겠다고 달려드는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동성애가 소돔성에는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 일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요즘의 퀴어축제와 같이) 저렇게 공공연하게 동성애에 미쳐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또 동성애에 미쳐 날뛰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겠다고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롯이 그 천사들을 보호하면서 하는 말이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들이 있으니 이 딸들에게 원하는 대로 하고 이 사람들은 건들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는 롯 역시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이야기 역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인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을지 모릅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돔에 살면서 그들의 마음과 정신이 소돔화되었고, 그곳에서 빛과 소금이 아닌 그 도시와 그 세대의 변질된 신앙과 가치에 따라서 살아갔었던 겁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부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더 이상 이 세상의 가치에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그 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을 주님의 부름을 받아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여전히 세상적인 가치와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겁니다. 사람이 잘 변화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모습을 보면 목회자로서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마서 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을 때는 더 이상 세상을 따르지 말라고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고 부르신 겁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것을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롯의 딸들이 변화되지 않고 세상적 가치로 살아갈 때, 그들에게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것처럼, 우리가 변화되지 않으면 비극적인 결말로 우리의 인생이 마쳐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변화만이 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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