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물 위에 던지라”

<창세기 22:6~14> 

저는 뭐든지 남들보다는 조금씩 늦게 배워나갔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집에 안 계셨기 때문에 가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들도 뒤늦게 깨닫고 스스로 교정했던 것들도 있습니다. 위로 누님이 두 분 계시고 제가 셋째였는데, 작은 누님이 큰 누님에게 늘 ‘언니’라고 부르니깐, 저도 누님들 향해서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언니’라고 부르며 성장했었습니다. 또 젓가락질도 내가 이상하게 하고 있다는 걸 중학교 올라가면서 알았고, 그래서 정상적으로 하는 사람들 보면서 젓가락질도 스스로 익혔습니다.

또 한 가지는 ‘수영’역시 서른이 훨씬 넘겨서 남들 하는 걸 보면서 독학을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물에 대한 공포가 있었는데, 왜냐하면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동네 우물 옆에 있는 작은 저수지에 빠져서 익사할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보니깐 수영을 하려면 물을 무서워하면 평생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물 위에 그냥 나를 던지고 몸에서 힘을 빼고 숨만 살짝 들이 마시고 있어도 물에서 몸이 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물에도 떠 있게 되고, 수영실력이 조금씩 조금씩 늘었습니다. 누구든 물에 대한 트라우마(trauma)를 극복하지 못하고 물에 내 몸을 맞기지 못하면 그는 평생 수영을 못하고, 평생 물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늘 발목까지 밖에 안 오는 얕은 물에서 물장구만 치던 성도들은 은혜의 깊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경험을 해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나를 물 위에 던지듯이 하나님께 내 삶을 온전히 의탁하며 살아본 사람은 영적인 깊은 체험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질 급한 것으로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물 위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그는 역사상 유일하게 바다 위를 걸은 인물로 기록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75세 때 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아 믿음의 여정을 시작한 이후로 그의 믿음의 정점을 찍은 사건이 나옵니다.

6절 말씀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건 상상하기도 끔찍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아브라함은 그토록 오래토록 기다렸던 아들 이삭,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겠다고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고 있고, 그 뒤를 아들 이삭은 자신이 아버지에 의해서 번제물로 바쳐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한 채, 자기를 번제로 바칠 장작을 지고 모리아를 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 이삭이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에 쓸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이 질문을 받을 때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아들아, 바로 너다. 하나님이 너를 번제로 바치라 하셨어. 아들아 미안하다. 나도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는 순종해야 한단다. 아들아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 그 하나님을 믿자…’ 아브라함이 속으로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리곤 아브라함은 8절에서 이삭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9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이삭을 번제로 바칠 것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번제할 어린 양인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데리고 가고 있고, 하나님께서 지시 하신 곳에까지 도착했고, 그리고 그 위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아들 이삭을 결박해서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아들을 잡으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나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손발을 휘젓지 않고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있는 것은 죽음의 공포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러나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압니다. 몸에 힘을 빼고 물에 나를 맡기고 가만히 있을 때 물 위에 뜬다는 사실을, 그것이 내가 살 길이라는 사실을….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는 그 순간 11절과 12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은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했고,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곤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준비한 숫양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은 그 양을 이삭을 대신할 번제물로 바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땅 이름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는 의미인 ‘여호와 이레’라 부르게 됩니다.
나를 물 위에 던지듯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는 행동을 할 때, 여호와 이레도 경험하는 겁니다. 온전한 믿음과 신앙이란 것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말하고, 그들이 여호와 이레도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힘 있는 사람을 의지하고, 돈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여호와 이레를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세부에 처음 올 때 아무 연고도 없이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왔습니다. 만약 의지할 누군가가 있었다면 저는 간증할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물 위에 던지자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고 계신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를 물 위에 던져 보십시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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