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더 무력하게 만들지 말라”

<예레미야 5:20~31>

뉴질랜드에 가면 ‘마오리(Maori)족’으로 불리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뉴질랜드 인구의 약 1/7정도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10세기에서 11세기경에 다른 섬에서 당시 무인도였던 뉴질랜드로 이주해 거기에 터를 잡고 살아서 결국 뉴질랜드의 원주민이 된 겁니다.

그런데 마오리족하면 마오리전사들로도 유명한데, 마오리 전사들은 다른 부족들과의 전쟁을 치르기 전에 상대방 부족을 도발하기 위해 ‘하카(HAKA)’라는 춤을 춥니다. 그들이 추는 하카 춤을 보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모릅니다. 그 얼굴의 표정과 함성과 절도 있는 퍼포먼스는 보기만 해도 상대방을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만들 정도입니다. 그걸 보면 누구라도 마오리 전사들 앞에 감히 싸울 엄두가 안 나는 겁니다.

18세기부터는 유럽의 영국과 프랑스와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이 뉴질랜드에 이주하면서, 그들과 어울려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시는 분을 통해 들어보니, 월등한 문명과 부를 갖고 있었던 백인들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한다고 하면서 마오리족들에게만 각종 복지를 제공하고, 정부에서 보조금까지 준다는 겁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이 이것이 백인들의 계략이었다고도 합니다. 왜냐하면 마오리족에게만 복지가 너무 좋고 정부에서 보조금도 나오고 그러니깐 마오리족은 굳이 열심히 공부할 이유도 없고,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려는 마음도 없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들의 교육수준은 낮아지고 특별히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는 큰 문제도 없지만 크게 성공하는 사람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뉴질랜드 사회에서 마오리족은 언제나 빈민과 하위계층을 벗어날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마오리의 전사들이었지만 과한 복지와 정부 보조금을 통해 도리어 무력한 전사들이 되어 버린 겁니다.

우리에게 어떤 것들은 달콤하기에, 자꾸 우리를 치우치게 만드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는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특히 ‘죄’라는 것이 그러합니다. 죄라는 것은 그 순간 우리에게 달콤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그 죄에 계속 빠져있게 되면 우리는 점점 영적으로 무력하게 되어 버릴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당신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시는데, 20절을 보시면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탐심과 정욕과 세상의 즐거움들로 그 순간 그들의 혀를 얼마나 달콤하게 만들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달고 단 것을 계속 혀에 올려놓게 되면 어느 순간 진짜 ‘단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또 우리가 과하도록 달콤한 것에 집착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순간 그 설탕성분으로 인해서 우리의 이가 썩고, 피가 탁해지고, 지방이 늘어나 우리의 건강을 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죄는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지각이 없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게 되는 무감각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2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그 무감각은 결국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겁니다. 하나님 없는 것처럼 엉망으로 사는 겁니다. 하나의 비유를 이 구절을 통해 말씀하시고 있는데, 해변에 모래를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삼으셔서, 아무리 거센 파도가 일어도 그 모래를 넘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 아무리 거대한 파도라 할  지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지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율을 쉽게 어긴다는 겁니다.

24절을 보시면,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통해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도 하나님이신데, 사람들이 그 분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은혜를 잊고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자”라고 말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정말 영적으로 무뎌지고 무뎌진 상태가 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25절에서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죄가 우리의 마음을 영적으로 무감각하게 만든 겁니다. 그 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도 막아버립니다. 그리고 죄는 우리의 영혼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마오리의 전사가 순간의 달콤함에 젖어 전사로서의 정체성(Identity)을 잃어버린 것처럼, 죄는 믿음의 전사, 하나님 나라의 군대, 주의 백성과 자녀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죄는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들고, 주의 전사들로 살아야 할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죄를 버리고 믿음의 전사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최근 어떤 죄가 나를 무감각하게, 무능력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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