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주께”

<사도행전 14:19~28> 

지난주일 예배 설교 후에 『마커스 워십 2017 앨범』의 ‘기꺼이 주께(요나단의 고백) https://youtu.be/zT967zCw0B8’라는 찬양을 성도들과 함께 드렸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왕의 아들로 왕위계승서열 1순위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셔서 그를 왕으로 세우시리라는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나단이 얼마나 왕이 되고 싶었을까요? 왕자로 크면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언젠가 왕이 될 것을 늘 그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기꺼이 자신의 평생의 꿈까지도 내려놓았던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의 칼을 피해 쫓기고 있을 때 요나단이 다윗을 은밀하게 만나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삼상23:17)”

요나단은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왕권의 라이벌 다윗을 죽이고 얼마든지 자신이 왕이 될 수 있었는데…, 요나단은 바보였을까요? 아닙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뜻과 욕심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웠던 겁니다.

이것과 연관되어 오늘 사도행전 말씀을 묵상하며 알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나단이 기꺼이 현세의 부와 영광을 포기하고 고난의 길을 택했던 이유는 그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고3 수험생들이 하루 3~4시간만 잠을 자며, 그 나이 때에 즐길 수 있는 모든 즐거움들을 포기하고 그 힘든 공부를 하지만, 그들이 기꺼이 그것을 감당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그게 전부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더 큰 소망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 직장인들이 때로는 비인격적인 대우도 참아내고, 야근도 하고 회사에서 부르면 휴일까지도 반납하고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월급날에 물질적으로 보상을 받기 때문 아닙니까? 그런 소망이 있으니깐 지금의 어려움도 감당해 내는 겁니다.

요나단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손만 뻗어도 얼마든지 잡히는 현세의 부와 영광을 기꺼이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웠던 것은 요나단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가 안라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세의 시련과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현세가 전부가 아니라 장차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죽을 번 한 엄청난 박해를 경험하게 됩니다.

19절을 보시면,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바울을 박해하던 유대인들은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부터 루스드라 지역까지 쫓아와서 무리를 충동해 바울을 돌로 친 겁니다. 성난 무리들이 던진 돌들에 맞아 바울은 쓰러졌고 그가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시체 버리듯이 버린 겁니다. 그러니 그 때 바울이 겪은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겠습니까? 돌들에 맞아 얼굴과 팔과 온 몸이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어 버려진 겁니다.

그런데 20절, 21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그런데 피투성이가 된 바울이 힘겹게 숨을 내쉬며 다시 일어났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라는 지역으로 가서 또 다시 복음을 전하고, 전도여행을 했었던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으로 되돌아가면서 도리어 그들을 믿음으로 격려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22절을 보시면,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믿음의 시련과 환란 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믿음의 삶이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로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믿음 밖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에 어려울 게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가치를 거부하고 믿음으로 살기로 한 겁니다.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며 살기로 한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어려울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면, 이 땅이 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시련과 고난에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내 삶의 최종적인 소망이 된다면 지금의 시련과 고난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 소망을 크게 두면 크게 둘수록 지금의 시련이 너무 힘들게 느껴질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며 살아가게 되면, 지금 이 시련들은 그 나라에 들어가는 과정일 뿐인 것입니다. 때문에 힘들지라도 기꺼이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가장 큰 소망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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