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라”

<창세기 12:1~3> 

– 40일 특새 : 갑절의 은혜를 구하라(02) –

 

 

어제 밤에 우리 아이들 어릴 때 사진을 잠시 살펴봤습니다. 이 사진이 언제쯤인지 날짜를 보니깐 2,000년 때였습니다. 그러니깐 첫째 딸아이가 네 살, 둘째 아들아이가 두 살 때였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마도 가장 예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적일 때입니다. 그래서 이 때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100% 신뢰합니다.

 

 

그 즈음 제가 아이들하고 종종 했었던 놀이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희 가정엔 어느 성도님이 주신 프라이드 중고 승용차가 있었는데, 제가 아이를 그 차량 지붕에 올려놓곤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키가 60~70cm 밖에 안 되는 어린 아이에겐 자기키보다 몇 배가 높은 곳에 서 있으니 아이 입장에선 굉장히 무서울 법한 높이인 겁니다.

그리곤 제가 두 팔을 벌리고 ‘하름아, 아빠한테 뛰어봐. 하빈아, 아빠한테 뛰어봐 아빠가 널 받아 줄 거야’ 이럽니다. 아마 아빠들이라면 자녀들과 이런 놀이 한번쯤은 해보셨을 겁니다. 아이 표정을 보면 살짝 무서워하고 주저주저합니다. 하지만 아빠가 환한 얼굴로 안심하라고 널 받아 줄 거라고 말하니 아이는 이내 그 말을 믿고 몸을 던져 뛰어 내립니다. 그리고 저는 그 아이를 안전하게 받아 제 품에 안고, 아이도 안도감에 자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그 순간을 아빠 품에서 즐거워합니다.

 

신명기 32장 10절부터 12절을 보시면,

(10절)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절, 12절)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독수리 새끼가 처음 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벼랑 아래로 떨어질 때 얼마나 두렵고 무섭겠습니까? 그런데 어미 독수리는 자신의 큰 날개를 펴서 그 새끼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의 반복을 통해 새끼는 나는 법을 배웁니다. 또 한 가지 새끼는 어미 독수리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훈련하게 됩니다.

‘믿음’이란 것은 ‘전적인 신뢰’를 의미합니다. 믿지 못하면 벼랑을 향해 몸을 던지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나를 받아 주실 것을 믿으면 위험천만한 벼랑 아래라 할지라도 몸을 던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보통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믿음의 여정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24장 15절 말씀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가정은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숭배하던 불신자 가정이었고, 아브라함 역시 그런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그 역시 여호와 하나님을 잘 몰랐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곤 말씀하신 내용이 ‘아브라함아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고대사회에서 굉장히 위험천만한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족사회였던 당시에는 그 부족에서부터 떨어져 나오면 그 때부터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다른 부족에게 몰살당할 수도 있고, 모든 가족들은 노예로 끌려가고, 모든 재산은 노략질 당할 위험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 즉 전적인 신뢰가 없이는 결코 길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자기 부족을 떠나 가족과 종들만을 데리고 홀로 떠났던 것은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3절을 보시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제 아브라함은 여러 호전적인 부족들과 약탈자들과 노략꾼들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순간에 아브라함의 가정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몰살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을 보시면 이제부터 하나님의 보호 아래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내 부족을 떠나 나의 부족들로부터는 보호 받을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하시며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제 저녁에 우리 남전도회 6월 정기모임이 있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여러 가지 간증들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외국 땅에서 직장을 잃고 수개월 동안 수입 없이 불안한 하루하루를 사셨던 집사님, 세부에 오셔서 그 동안 의지되었던 물질적인 것을 다 잃으신 집사님, 오랫동안 주님을 떠났다 우리교회에 오셔서 은혜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모든 물질적인 것들이 다 비워지게 된 집사님…

어쩌면 그렇게 모든 것들이 비워지는 것은 우리가 그 동안 의지하던 나의 부족(Tribe : 종족)을 떠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이제는 나의 부족이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세상에서 내가 의지하던 것들이 비워지는 경우가 있는 것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전한 믿음의 선물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믿음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2019년의 하반기가 시작하는 7월 첫날입니다. 지금 모든 것이 비워졌다고, 내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그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이 없다할 지라도 괜찮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원래 믿음의 여정은 빈손으로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의 손은 빈손이어도,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내 손을 잡고 인도해 가시고, 하나님의 보호가 있고, 하나님의 공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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