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리미티드(Unlimited)”

<요한복음 6:1~9> 

 

 

[Audio 말씀]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인 BMW, 폭스바겐, 아우디, 벤츠, 포르쉐… 이 차들의 국적이 어딘 줄 아세요? 모두 독일에서 만들어지는 차들입니다. 그런 세계적인 명차 대열에 브랜드 하나만 들어가도 대단한 것이라 생각되는데, 이 자동차 브랜드들이 모두 Made in Germany 입니다.

독일이 이렇게 자동차 왕국이 될 수 있었던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무제한 자동차 전용도로’라고 알려진 ‘아우토반(Deutsche Autobahn)’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우토반이 처음 건설되던 1930년대만 해도 도로에는 차가 몇 대 없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도로가 있으니깐 거길 달려야 할 성능 좋은 차들을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우토반에서 기록된 자동차 최고 속도는 1938년 벤츠가 기록한 시속432km였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80년 전에 세운 기록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자동차 성능이 더 좋아져서 더 빨리도 달릴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런 기록을 남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성능 좋은 차량을 갖고 있는 일반인들이 아우토반을 300km로 달리기도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도로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속도인 거 같습니다.

아우토반에서 속도의 한계가 없다고 하니깐 이전에 한계라고 생각했던 한계들이 깨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도 한계가 없다.’ 라고 믿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 한계를 계속 깰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가 참 좋아하는 성경구절입니다. 언리미티드(Unlimited) 라는 영어단어는 ‘한계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계 속에 갇혀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실 하나님 안에서는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한계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매일 깨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1. 계산으로 인생을 낭비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도보로 호수를 돌아 달려와 예수님이 계신 산과 들이 있는 곳까지 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중에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해질 때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날이 어두워 가고 모두들 배가 고픈 시간이 되었으니 이젠 사람들을 마을로 돌려보내시길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5절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중에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6절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포함한 제자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 지 빌립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미 잘 알고 계셨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시면,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은 매우 합리적이고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었던 빌립에게 그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빌립은 그 자리에 모인 수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선 약 200데나리온 어치의 떡이 필요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1데나리온은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이었다고 하니깐, 200데나리온은 일반 노동자들의 약 8개월 치 월급에 해당합니다. 요즘 돈으로 약 2~3천만 원 정도의 큰돈이 급히 필요했는데, 제자들에겐 그런 큰돈이 없었습니다.

빌립의 계산은 정확했습니다. 그게 현실이었습니다. 지금 제자들에겐 그런 큰돈이 없었고, 그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준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계산이 떨어지고, 누가 봐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이건 안 된다’ 싶은 마음이 들면, 거기서 더 이상의 시도를 하지 않거나, 포기하거나 하는 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계산만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합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나는 돈이 없고, 나는 배경이 안 되고, 나는 부자 아빠가 없고, 나는 학력이 따라주지 않고, 나는 경험이 없고, 나는 능력이 없고…’ 이런 저런 이유들과 조건들과 상황들과 환경들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는 겁니다. 이들의 특징은 계산이 빠르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계산하다가 무엇에도 도전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으니 실패한 것도 없겠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겁니다.

 

 

아시아 최대 자산가인 알리바바의 마윈은 제가 참 좋아하는 경제인 중에 한 사람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비즈니스 영감을 주는 인플루언서 중에 한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인물이고, 알리바바 창업 10여년 만에 중국 최대의 회사가 되었고, 세계 최고의 부자 중에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이 분이

“세상에서 가장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라는 말을 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언제부터 부자였다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에 자칫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는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의 말을 들어보면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자유를 주면 함정이라 얘기하고, 작은 사업을 얘기하면 돈을 별로 못 번다고 얘기하고, 큰 사업을 얘기하면 돈이 없다고 불평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자고 제안하면 경험이 없다고 변명하며, 전통적인 사업에 대해 제안하면 경쟁이 치열하다며 두려워하고, 새로운 사업모델을 말하면 다단계라고 몰아가며, 상점을 같이 운영하자고 하면 자유가 없다고 말하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자 말하면 전문가가 없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희망이 없는 친구들에게 의견 듣기를 좋아하고, 구글이나 포털사이트에 물어보는 것을 즐기며, 대학교 교수보다 많은 생각을 하지만 장님보다 더 적은 일을 한다. 그들에게 물어보라.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들은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윈은 이렇게 말을 맺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공통적인 한 가지 행동 때문에 실패한다. 그들의 인생은 기다리다가 끝이 난다.”

비즈니스적인 면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계산만 하다가, 주저주저하다가,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인생은 기다리가가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계산만 하다가 주어진 시간을 흘려버리고,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시간이 주어졌고, 그들은 계산을 잘 못 하니깐 그냥 시도하고, 도전하고, 해보고 있는 겁니다. 실패할 지라도, 많은 것을 까먹는다 할지라도 그렇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성공의 기회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 똑똑하고 합리적인 게 믿음생활에 있어서는 도움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빌립처럼 너무 계산이 빠르고 똑똑한 분들은 믿음이 잘 안 자라는 겁니다. 그 분은 다른 사람들보다 책도 많이 보고, 아는 것도 많으실 거고, 합리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시작, 신앙의 시작은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의 지혜와 경험과 능력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에서부터 믿음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문둥병에 걸린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엘리사 선지자에게 많은 재물을 갖고 와서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 엘리사는 밖에 나와 나아만을 영접하지도 않은 채로 심부름꾼을 하나 보내 ‘요단강에 들어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전했습니다. 나아만은 선지자가 나와서 영접도 안 하고, 기껏 치료의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이 요단강에 가서 7번 목욕하라는 말에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다시 아람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신하들의 만류로 엘리사 선지자의 말대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었더니 어린아이의 살처럼 깨끗하게 되고, 나병이 깨끗하게 치료되었던 것입니다.

나아만은 아람의 최고 명장이며,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뛰어난 전략가였습니다. 그럼 얼마나 경험이 많고, 얼마나 지혜롭겠습니까? 그의 생각에는 엘리사 선지자의 말은 합리적이지 않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라면, 뭔가 특별한 방법으로 환부에 손을 대고 기도를 한다든지, 어떤 제를 올리든지 하면서 치유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걸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너무 다른 방법을 제시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신하들의 말을 듣고 모든 생각과 뜻과 계산들을 다 내려놓고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니 나병이 깨끗하게 나았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1절 말씀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이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하나님이 틀리신 게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나의 생각과 계획과 뜻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틀리신 게 아니라, 내가 틀린 것입니다. 때문에 이것저것 계산만 하며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고, 인생을 낭비하며 살지 마십시오. 오히려 지금의 이런 모든 상황들 속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과 소망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볼까 말까? 그 분이 믿어 볼 만한 분인가? 아닌가? 계산만 하다가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나아만 장군과 같이 그냥 요단강에 몸을 던지듯, 믿음으로 하나님께 여러분의 인생을 맡기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 하나님의 치유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 속에 하나님의 치유가 시작될 것입니다.

 

2. 한계는 매일 깨지고 있다

우리가 ‘한계’라고 말하는 것들은 사실 매일 그 기록이 깨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분명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했었는데, 누군가는 그 한계를 돌파하고 그 다음 단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난 100년간의 평균키를 조사했는데, 남자들은 1914년에 평균 159.8cm였었는데 2014년에는 174.9cm로 15cm 정도 컸습니다. 여자들의 경우는 142.2cm에서 162.3cm로 약 20cm가 넘게 컸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시아에서 가장 키가 많이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식단이 좋아져서 그런 거 같습니다. 얼마나 더 클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조금씩 계속 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일제 시대를 한참 보내고 있었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는 우리나라의 청년들인 손기정과 남승용 두 사람은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마라톤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남승용이 동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이 때 손기정 선수는 2시간 29분 19초로 마라톤 세계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일제의 아픔 속에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운 자랑스러운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마라톤 세계신기록도 지난 80년 동안 계속 갱신되어 왔는데, 2018년 케냐의 켐초게라는 선수가 2시간 1분 39초로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우리 손기정 선수가 세운 세계신기록 보다 무려 28분 정도를 앞당긴 겁니다. 그러나 이 세계 신기록도 언젠가는 깨지겠죠?

우리가 한계라고 생각하지만, 그 한계는 누군가에 의해서 매일 깨지고 갱신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을 보시면,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님과 빌립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는 빌립보다는 좀 더 행동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빌립은 머리로 얼마의 돈이 있어야 그 5천 명의 사람들을 먹일 수 있을지 계산하고 있었다면, 안드레는 뭐라도 먹을 것을 찾아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드레가 구해온 음식은 어린 아이 하나가 내놓은 작은 도시락인 보리떡 다섯 개와 마른 생선 두 마리인 ‘오병이어(五餠二魚)’ 뿐이었습니다.

안드레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작은 도시락을 갖고는 5천명을 먹인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지난 9일 다니엘기도회 강사로 서신 김상숙 권사님이란 분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를 섬기고 계신데, 일하다 다쳐 도움 받을 곳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병원비와 치료비를 지원하고, 신학교에 간 외국인 노동자들의 학비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매달 수천만 원에 이르는 재정이 필요한데, 지난 30년 동안 약 50억 원이 넘는 돈을 후원 받아서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의 원칙이 있습니다. ‘먼저 오병이어를 주님의 손에 올려놓지 않으면서 “주시옵소서!”라고 아무리 외친다 해도 오병이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이 말씀에 순종하면서 수백 명의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었다는 간증을 하셨습니다.

 

 

다니엘 기도회 강사 중에 지난 월요일에는 유튜버 위라클(Weracle)의 ‘박위 형제’의 간증을 들어보니, 2014년에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었는데, 당시 의사는 머리 아래로는 평생 못 움직일 거라고 했다 합니다. 그런데 가족들을 비롯한 많은 성도들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손가락을 움직이게 되었고, 하루도 빼먹지 않은 재활운동을 통해 하반신을 제외한 상반신을 어느 정도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전도유망한 멋지고 잘생긴 청년에게 이 장애가 얼마나 절망적이었겠습니까? 그 몸으로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던 중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라는 말씀을 받게 되고, 유튜버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의 유투브 채널에 보면 지금 그는 혼자 운전도 할 줄 알고, 스쿠버 다이빙도 하고 심지어 경비행기까지 운전하는 것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그에게 장애인으로서의 한계는 없는 겁니다.

 

그가 1년 여 전에 올린 1분30초짜리 짧은 영상의 엔딩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생각을 제한하는 것이 장애입니다.”

 

빌립은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을 때, 안드레는 그래도 뭐라도 해보려고 이리저리 음식을 구하러 다니다 작은 소년이 건내 준 오병이어를 들고 예수님께 와서 ‘(하지만) 이 적은 오병이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5천 명을 먹이기에는 터무니 없습니다. 너무 부족합니다.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위 형제의 말과 같이 몸이 어디 불편 한 것이 장애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제한하는 것 자체가 장애라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자꾸 한계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나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할 수 없고, 불가능하고, 도전할 수 없고…’ 그렇게 마음의 장애를 갖고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올 해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모두에게 시련과 고난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지금 너무 어렵다고 하는데, 약90%의 성도들이 철수한 필리핀 이민교회만 하겠습니까? 다시 오고 싶어도 올 수도 없고, 언제부터 괜찮아질 것이라는 어떤 희망적인 전망도 없습니다. 그러면 여긴 교회가 부흥할 가망이 별로 없으니깐 저 같은 사람은 짐 싸서 한국으로 가야겠습니까?

분명 어려운 건 맞습니다. 어쩌면 안드레가 ‘이게 얼마나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던 것처럼 절망적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 식당을 가든, 카페를 가든 전에 그렇게 많던 한인들 얼굴을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 땅에는 여전히 구원 받아야 할 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교회에 몰려오던 많은 성도들 돌보느라 바빠서 숨어 있는 불신자들에게 관심을 못 가졌는데, 하나님께서 이젠 저에게 그들을 향해 자꾸 눈을 돌리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 기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교회에 또 다른 사명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현실도 암담하고, 내일이 보이지 않는 생활을 겨우겨우 이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 상황에 뭘 할 수 있을까? 오병이어처럼 이 보잘 것 없는 조건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내 형편없는 능력과 자본을 갖고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한계라고 보이는 것들은 매일 누군가에 의해서 깨지고, 갱신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을 제한하기 시작하면 마음의 장애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깨뜨리고, 그 마음의 장애를 깨뜨리고, 믿음의 눈을 들어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한계도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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