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

시편 136:3~26

3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5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지하심이 영원함이로다

6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7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8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9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2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4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5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6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7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8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9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0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1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2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3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4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5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제가 열아홉 살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중고등부 예배든, 장년부 예배든 당시의 예배에는 항상 [교독문]이란 순서가 예배 앞부분에 들어갔습니다. 일반적으로 예배 인도자와 회중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은혜와 능력과 행하신 일들이 기록된 시편 말씀을 번갈아 가면서 교독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고, 이해도 짧아서 그게 그냥 예배의 하나의 의식 정도로만 생각했었고, 왜 그런 순서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던 거 같습니다. 요즘은 과거의 전통적 예배 형식에서 많이 벗어나 교독문 대신에 찬양곡들을 통해 영광을 올려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36편]의 경우 총 26개의 구절이 있는데, 각 절마다 예배를 인도하는 그룹이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과 성품을 고백하면, 회중들이 이에 대한 답가를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시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 그룹 혹은 레위 지파의 성가대가 ‘~~ 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선창을 하면, 회중들은 1~26절 각 구절마다 동일하게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 시편은 예배 때 사용했던 찬양시로 보여집니다.

136편을 크게 분류해 보면, 전반부(1~9절)은 ‘자연 속에서 역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찬양’하고 있고, 후반부(10~22절)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136편의 결론부(23~26절)에 해당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3절을 보시면,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 민족으로 비천하게 오랜 세월 동안 살아갔던 일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 상태로 그들은 애굽 안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소수민족으로 멸족이 되었어도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비천한 그들을 주목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24절에 의하면 그들을 출애굽 시키셔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23절과 24절의 후렴구에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후렴구는 히브리어로 ‘키 레올람 하스도(כי לעולם חסדו)’라고 하는데, 이 시편 1~26절 매 구절 끝 마다 반복되고 있는 문구입니다. 첫 번째 단어인 ‘키(כי)’는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고, ‘레올람(לעולם)’은 ‘영원히’라는 뜻이고, ‘하스도(חסדו)’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말합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 성가대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면, 모든 회중들이 ‘키 레올람 하스도(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저는 어쩌다 보니 고아 아닌 고아처럼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제가 대여섯 살 때 부모님은 자녀들만 두고 집을 떠나 각자의 삶을 사셨습니다. 아주 어린 꼬마였던 저는 유기되고 버려졌던 겁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총명하지도 않았고, 성격이 좋아 친구가 많았던 것도,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버려져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늘 외로운 삶을 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가난하고 약해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던 열아홉 살 소년인 저를 하나님께서 주목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아였던 저에게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 주셨습니다. 배곯던 적도 많았던 저의 필요를 공급해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지쳐 낙심되어 있던 저의 등을 두드려 주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던 저의 삶을 인도해 주시고,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제 삶을 변화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그 은혜를 제가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25절을 보시면,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중에 40년 간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던 사건을 의미합니다. 흔히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라는 말을 합니다. 그만큼 매일의 양식은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삶의 목적’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지 않으면 과연 우리가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시편 127편 1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하셨습니다. 또 마태복음 6장 26절에 보시면,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잘나고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은혜를 거두시면, 그 대단한 능력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중한 병에 걸리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교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참된 믿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교만을 내려놓아야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시시때때로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마십시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교만을 내려놓아야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시시때때로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마십시오.

오늘의 묵상: 내게 부으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