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을 물리치는 예배자

사무엘상 16:14~18절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16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17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18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우리나라가 OECD 국가들 중에서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꽤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국민들이 ‘무한 경쟁’이라는 큰 정신적 압박을 받고 있는 게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떨쳐내지 못하는 원인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특히 가장 활기차고 즐겁게 인생을 누려야 할 때인 청년기(19~39세)의 우리 자녀 세대들의 지난 10년 간의 우울증 환자 수는 2014년 112,573명이던 것이 2023년에는 365,603명으로 무려 225%로 증가했다는 겁니다. 이것이 병원에 가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니 그 외에 자신이 우울증인 줄도 모르고 힘겹게 젊은 날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까지 더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방법이 없는 걸까요?

첫째, 하나님이 함께하는 예배자가 되라.

우리 사람에게 있는 ‘정신과 영혼’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물론, ‘정신질환 = 귀신 들림’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 폐결핵에 걸렸는데, 그게 결핵인 줄도 모르고 감기약만 계속 먹는데 전혀 차도가 없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정신질환자에게 필요한 약이 있고, 귀신 들린 자에게 필요한 영적 처방이 있는 겁니다.

사탄이 영적 존재이지만, 우리의 영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정신적인 부분을 건드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적 문제가 원인이지만, 그것이 정신적 질환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에 정신질환과 귀신 들림을 섣불리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신 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적인 영역의 연약함도 치유해 주시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이 시점이 의미가 있습니다. 13절에서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14절에서는 사울 왕에게서 성령이 떠나셨다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부리신다’는 것은 ‘악한 마귀의 세력까지도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영’이란 것은 ‘성령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영이 사울을 떠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떠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빈 마음의 자리에는 악령이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이 큰 은혜를 받고, 매일 성령으로 충만할 때와 전혀 그렇지 않을 때를 떠올려보면 느끼실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는 웬만한 일 갖고는 화도 잘 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렇게 화를 낼 일도 아닌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폭발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떠나자 사울은 매일 같이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조절이 안 되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신하들과 부하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파랗게 질려 혼자 횡설수설하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정상적인 삶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떠나신 한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매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연습해 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 찬양의 능력을 믿으라.

사울은 왕이었지만 악령으로 매일 지옥 같은 삶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수발을 드느라 신하들도 매일 고통 속에 지내야 했을 겁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사울 왕에게 ‘음악 치료’를 권했습니다. 과거에도 음악을 통해 우울하거나 괴로운 마음이 좀 진정되는 일들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괴로웠던 사울 왕도 신하들의 말에 동의했고, 신하들에게 “나를 위하여 (수금)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명령했습니다(17절).

18절을 보시면,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신하 중 한 사람이 베들레헴에 사는 다윗이란 소년을 알고 있는데, 모든 면에서 왕 앞에 설 만한 준수한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셔서 그의 연주에는 특별한 위로와 감동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찬양에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의 찬양에는 더 큰 능력이 나타납니다. 노래를 잘하고, 탁월한 음악적 재능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목소리는 너무 좋은데, 음악적 재능이 탁월한데…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통해 일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설교자도, 찬양 인도자들도 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으로 충만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선한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예수님을 믿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리고 매일 저녁에 잠들기 전에 갖고 있었던 루틴이 하나 있었습니다. 초라하고 좁은 단칸방에서 살았지만, 제 머리맡에는 오래된 카세트와 찬양 테이프가 놓여져 있었고, 저는 매일 아침 찬양을 틀어 그 찬양을 듣고 따라 부르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전엔 오토리버스가 되지 않는 그 카세트에 찬양 테이프를 틀어 놓은 상태로 잠들었습니다. 제 삶은 어둡고 막막하고 우울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찬양의 루틴은 어둠의 터널과 같은 제 인생에서 빠져나오게 했습니다. 당장의 상황은 변화된 게 아무 것도 없었지만, 제 마음에는 작은 하나님의 나라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23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그가 들에서 양을 칠 때 만들어 불렀던 찬양을 연주하자 사울에게서 악령이 떠나고 상쾌하여 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찬양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시편 119편 164절에서 시인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찬양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마귀가 그 믿음의 고백을 들을 때 일곱 길로 도망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모든 악령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찬양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마귀가 그 믿음의 고백을 들을 때 일곱 길로 도망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모든 악령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내가 드려야 할 찬양의 고백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