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7:36~40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38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오늘 본문은 소년 다윗이 이스라엘과 블레셋 족속이 대치하고 있었던 전장에 도착했을 때의 사건입니다. 다윗은 전쟁에 참전한 형들에게 먹을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왔었을 뿐이었는데,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이 40일간 아침저녁으로 나와서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조롱과 모욕 앞에 이스라엘 군대는 큰 두려움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거인 장수 골리앗은 사무엘상 17장 8절, 9절에서, “…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어쨌든 전쟁이란 것은 시작되면, 결국 누가 이기게 되든 양쪽에 물적, 인적인 큰 피해가 있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블레셋은 키가 3미터에 이르는 거인 장수 골리앗을 앞세워 ‘다 싸울 것 없이 양군 대표로 일대일로 싸워 패한 민족이 상대의 종이 되기로 하자’라는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골리앗의 제안은 합리적인 것이었고, 나쁜 제안도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에는 골리앗을 상대해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고, 그래서 섣불리 나설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직 어린 소년 다윗이 이런 상황을 접하면서 마음에 거룩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26절에서
“…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이런 모습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좋아하실만한 중심과 마음과 믿음이라 생각됩니다. 다윗의 당당하고 두려움 없는 태도는 ‘아직 세상의 무서움을 모르는 어린 소년의 객기(客氣)’라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다 똑같을 텐데 어떻게 다윗의 모습에선 조금의 두려움도 찾아볼 수가 없을까요?

첫째,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라.
다윗은 단 한 번도 칼과 창을 잡아본 적도, 훈련을 받아본 적도, 전쟁에 참전할 정도로 장성하지도 않은 어린 양치기 소년에 불과합니다. 그곳에 있는 이스라엘 군사들은 오랫동안 전쟁을 연습한 사람들이고, ‘힘 좀 쓴다, 싸움 좀 한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장에 있었던 수만 명의 이스라엘 군사들 중에 다윗의 믿음을 갖고 있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윗의 패기를 들은 사울 왕이 그를 부릅니다. 36절 말씀을 보시면,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다윗은 양을 칠 때, 사자와 곰도 맞서 싸웠던 적이 있었던 겁니다.
37절도 보시면,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다윗의 싸움은 믿음의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도 건져내셨듯, 골리앗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예배하는 것을 의지하고 두려워합니다. 돈을 예배하는 사람은 그걸 의지하고, 돈 문제 생기면 벌써 크게 불안해 합니다. 힘 있는 사람을 예배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지나치게 의지하는 경향이 있고, 그와 어떤 관계의 문제가 생겼을 때 몹시 힘들어합니다. 환경을 예배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는 그 환경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고, 그 환경에 어떤 변수가 생길 때 매우 불안정해지는 겁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만을 예배하니 그가 두려워할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나가니 골리앗도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살다보면 여러 가지 상황들을 만나게 되는 우리의 마음에 어떤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가 그 일들 앞에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혹시 우리가 그것을 의지하고 예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예배하고, 주님만 의지하십시오. 골리앗 같은 문제를 만나도 이 믿음의 싸움에서 먼저 승리하십시오.

둘째, 나는 생각보다 강하다.
우리가 어떤 상황 앞에서 두려워하는 또 다른 이유 하나는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비교하고 미리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대하기 어렵고, 감당하기 어렵다고 미리 판단하고 결정해 버린 겁니다. 내가 갖고 있는 건 보잘것없다고 판단해 버리는 겁니다. 나에겐 그럴만한 능력도 실력도 가진 것도 없다고 판단해 버리고 낙심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서자, 그에게 자신의 군복과 놋 투구를 씌우고 갑옷을 입혔습니다. 그런데 키 차이가 워낙 크다보니 다윗에겐 그 모든 것들이 거추장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사울 왕을 포함해 사람들은 적어도 군복과 놋 투구와 갑옷이 있어야 싸움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장비에서 밀리고, 눈에 보이는 것에서 밀리면 싸움에도 자신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거추장스러운 것을 벗어 버립니다.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정복한 몽골 제국의 창립자인 칭기스칸은 『철인』 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집안을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었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내게는 그림자 말고는 친구가 없었고, 병사는 10만명, 백성은 어린아이와 노인까지 합쳐 200만 명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으나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순간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40절을 보시면,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목동 소년 다윗은 양을 지키기 위해서 시간 날 때마다 들판에서 연습했던 자신의 물맷돌을 거인 장수 골리앗과의 싸움에 들고 나갑니다. 그리고 그 물맷돌은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멸족의 위기에서 건져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손에는 ‘발에 차이는 흔하디흔한 보잘것없는 돌멩이밖에 없다’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잘것없는 물맷돌이 민족을 위기에서 건지는 돌멩이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각보다 더 강합니다. 여러분은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내가 부족하면 전능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면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예배자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이 이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살다보면 여러 가지 상황들을 만나게 되는 우리의 마음에 어떤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가 그 일들 앞에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혹시 우리가 그것을 의지하고 예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왜 내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