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

시편 118편 1~5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이제 이스라엘은 말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3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4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오늘 본문은 시편 113편부터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마쳤던 ‘할렐(Hallel)시’의 마지막 시편입니다. 물론, 이 시는 ‘할렐루야’라는 말로는 시작되지는 않고 있지만, ‘할렐루야’라는 말이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처럼, 시편 118편은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그 이유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할렐시’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시편 118편 1절을 보시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1절부터 시작해서 4절까지 매 구절마다 ‘그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이것은 영어 번역에서는 ‘His love(그의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란,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과 자비하심을 모두 포괄하는 언약적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사랑한다’라고 말할 때, ‘자녀를 향한 사랑은 이러저러한 사랑이다’라고 딱 떨어지게 정의 내릴 수가 있을까요?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게 자녀를 향한 사랑일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그것을 정의하라고 한다면, ‘자녀를 향한 선함과 신실함과 자비를 포함하는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때로 우린 연약하여 부모의 사랑은 완벽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완전하고도 영원한 것입니다.

2~4절을 보시면,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하다 할지로다.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그리고 제사장 가문으로 선택받은 ‘아론의 집’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온 세상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1절~32절까지 [탕자의 비유]로 잘 알려진 이야기가 나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아버지의 유산을 떼를 쓰며 미리 받아냅니다. 그리곤 그 큰 재물을 갖고 외국으로 나가서 허랑방탕하게 모든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먹을 게 없어서 돼지가 먹는 열매로 배를 채우며 비참한 노숙자 신세가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돼지 먹이마저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7절에서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탕자는 돼지가 먹는 먹이조차도 구하기 어려워 배를 곯게 되자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일하는 많은 품꾼들은 먹을 거 걱정은 안 하고 살고 있는데, 정작 큰 죄를 지은 아들인 자신은 외국에서 굶어 죽게 생긴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5장 19절을 보시면,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탕자는 아버지에게 갔을 때, 할 말을 미리 생각해 둡니다. ‘지금부터는 아들이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나를 품꾼의 하나로 써 주세요. 그리고 밥만 먹여 주셔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로 결심하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장면이 누가복음 15장에 나옵니다.

탕자는 아버지에게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집을 나왔었습니다. 돌아갈 면목이 없지만, 탕자는 ‘아버지’를 떠올렸고, 그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로 했던 겁니다. 이 탕자의 비유 부분인 누가복음 15장 11~32절까지 ‘아버지’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오냐면, 무려 20회에 걸쳐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매 구절마다 ‘아버지’를 찾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탕자는 죄인이었지만, 그가 믿고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시편 118편 5절을 보시면,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했을 때 지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 생활을 하면서 끝까지 놓지 않았던 믿음이 ‘여호와의 인자하심’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끝까지 붙들고 있었고, 결국 그 아버지께서 그들을 다시 고국 땅으로 귀환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인자하심과 그 사랑을 믿으십시오. 그분께 우리가 고통 중에 부르짖을 때, 그 기도를 응답하시고, 우리를 그 인생의 고통 속에서 구원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확신하십시오. 때문에 그 인자하심을 확신하는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확신이 없으면 불안하고 걱정되니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겁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면, 두려움이 떠나가고,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그 고통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면, 두려움이 떠나가고,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그 고통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현실의 여러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