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1~8
1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2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4 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하셨나이다
5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6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7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8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오늘부터 살펴볼 [시편 119편]은 신구약을 통틀어 성경에서 가장 길이가 긴장(chapter)입니다. 무려 176절에 이르는데, 성경의 페이지 수로도 7~8페이지 가량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아크로스틱(acrostic : 답관체)’이라 불리는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아크로스틱이란 말은 그리스어 ‘아크로스(akros : 맨위)’와 ‘스티코스(stichos : 시)’란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깐 각 절이 시작될 때 맨 첫 자를 알파벳 순서를 따라 시를 쓴 시의 형식을 말합니다.

구약성경인 시편 119편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히브리어 자음은 22개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알파벳 첫 자인 ‘알렙( א : Aleph)’으로 1~8절의 각 절이 시작될 때 첫글자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9~16절까지 새로운 여덟 절이 시작될 때는 히브리어 알파벳 두 번째 철자인 ‘베트( ב : Beth)’로 시작되고, 그리고 17~24절까지 세 번째 여덟 절은 각 절이 시작될 때 히브리어 세 번째 철자인 ‘기멜( ג : Gimel)’을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8절씩 22개의 히브리어 철자 순서대로 하다 보니 시편 119편은 총 176절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런 시의 형식을 사용했는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10개의 비슷비슷한 의미의 동의어들이 나오는데, “법(Law), 말씀(Word), 말씀(promise), 계명(Commandment), 율례(Statues), 규례(Judgement : laws), 법도(Precepts), 증거(Testimony), 도(way), 길(path)” 즉, 우리가 살아 가는데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복된 길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파벳 순서에 따라(단어 선택에 얼마나 신중했겠습니까?) ‘아크로스틱 형식의 시’로 쓰고 있는 것 역시 그 말씀 한자 한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19편 1절을 [쉬운성경]으로 보시면, “흠잡을 데 없는 올바른 길로 가는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법에 따라 걷는 자들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사업에 크게 성공했거나, 돈을 많이 벌었거나, 좋은 대학에 들어갔거나, 대기업에 취직했거나, 화려한 스펙이 있는 사람하고 결혼했거나… 하면 ‘복 받았다’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저의 친구들도 모두 목회를 하고 있지만, 저와 같은 목사들도 착각하는 게 있는데, 교회로 교인들을 많이 모아 숫자가 많이 모이는 큰 교회가 되면 성공한 목사고 복 받은 목사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목사로서 진정한 성공은 사람들을 교회로 많이 모으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한 사람이라도 더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사들의 목회의 이유와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가 되기도 하고, 꽤 높은 지위까지 오르는 정치인이 될 수도 있고, 재산만 수십조 원에 이르는 재벌이 될 수도 있고, 저와 같은 목사들은 교회를 부흥시켜 큰 교회의 목사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겼든,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 …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수치를 당하는 일들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국가의 법을 어기고, 사회적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을 저질러서 아닙니까? 그러나 이 세상의 그 어떤 법보다 기준이 높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올바른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올바른 길을 가는데,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데, 신앙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데 수치를 당할 만한 일이 있겠습니까? 죄의 결과 중 하나는 ‘수치와 부끄러움’인 것입니다.
2절과 3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제가 목회하고 있는 필리핀 세부라는 곳은 자녀들의 영어권 조기 유학에 최적화되어 있는 인프라가 있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처음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누구의 말을 따르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들과 교류하느냐에 따라서 복된 생활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많은 부도덕한 범죄에 노출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살든 또는 저와 같이 외국에 와서 살든, 여행을 하든,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 …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삶이 기준이 된다면 그는 어디에 있든 복 받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시면,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세상의 법과 규칙과 규범을 어기면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수치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법보다 더 높은 기준을 갖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에는 절대 수치를 겪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살아가는 것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까? 개인의 감정과 욕구가 기준이 되면 수치를 당할 수 있습니다. 내 감정과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살아갈 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개인의 감정과 욕구가 기준이 되면 수치를 당할 수 있습니다. 내 감정과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살아갈 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할 내 삶의 영역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