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경주를 멈추지 말라”

<열왕기하 12:1~3, 17~21> 
Breakthrough 40, 특별저녁기도회(13)

보통 ‘무엇이든 10년만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말을 합니다. 운동을 하든, 춤을 배우든, 악기를 배우든, 영어를 공부하든… 정말 10년을 꾸준히 한다면 실력이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겁니다.

캐나다의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 1963~)’이란 분이 2008년에 『아웃라이어(Outlier)』라는 책을 썼는데, 우리나라에도 출판되면서 짧은 시간에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정분야에서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뿐만 아니라 1만 시간가량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하면 1만 시간 정도가 되니깐, 적어도 하루에 3~4시간씩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콤의 이 이론은 ‘앤더스 에릭슨(Anders Ericsson)’을 비롯한 몇몇의 연구원들이 1993년에 ‘심리학평론(Psychological Review)’에서 발표한 논문을 인용했던 겁니다. 이 연구팀은 20살 전후의 독일의 서베를린 뮤직 아카데미의 바이올린 전공 학생들을 교수들로부터 세 종류로 나누어 추천을 받았습니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현재 실력을 보고 “세계적으로 프로 연주자가 될 학생(Best Student), 우수한 학생(Good Student), 그냥 공립학교 선생이나 될 사람(Teacher)”으로 분류를 한 겁니다. 연구팀은 5세 전후부터 바이올린을 잡은 이 학생들이 평소에 얼마나 연습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이러했습니다.

가장 우수한 그룹(Best Student)은 연습시간이 1만 시간에 달해 있었고, 그냥 우수한 학생(Good Student)들은 7~8천 시간, 그리고 평범한 학생(Teacher)들은 3~4천 시간을 연습했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연습을 별로 안 하는데 실력이 좋은 사람은 없었다는 겁니다. 연습한 만큼 실력이 늘었다는 겁니다.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뿐만 아니라 미술, 태권도, 영어, 수학… 여러 학원들을 다닌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고, 전문가가 되기도 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겠습니까? 중간에 중단한 겁니다. 만약 힘들어도 계속 꾸준히 더 했더라면 지금쯤 한두 가지의 특기와 재능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혹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바울 사도가 사도행전 20:24절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 사도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믿음의 경주’로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경주를 생명이 마치는 그 날까지 바울은 멈추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4:7절과 8절에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바울 사도는 그 믿음의 경주를 중단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하나님께로부터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을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름 받아, 크나 큰 모든 죄의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많은 복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처음 받았던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이전 보다 못한 신앙생활을 하기도 하고, 교회를 떠나고 주님을 떠나 불신자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믿음의 경주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달리기하는 사람이 결승점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상을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멈추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때로는 힘들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기도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경주를 중단하지 마십시오. 어제보다 오늘 더 주님을 사랑하고, 오늘보다 내일 더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고, 우리의 믿음이 날마다 자라가고 더 성장하길 바랍니다. 키가 더 커지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이 자랄수록 더 크신 하나님의 영광과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의 경주를 멈추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오늘 본문의 요아스 왕은 왕가에 일어난 비극적 사건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유일한 후손이었습니다. 그가 한 살 때 아버지 아하시아 왕의 어머니인 아달랴가 권력에 대한 야망으로 모든 왕족들을 죽일 때, 제사장 여호야다가 성전에 그를 숨겨 6년간을 키우게 됩니다. 그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7살에 왕위에 오르게 되고, 무려 40년간 남유다의 왕으로서 통치하게 됩니다.

2절을 보시면,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어린 요아스에게 고모인 여호세바와 고모부이며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야다는 그의 부모와 같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아니었다면 요아스는 살아남지 못하고, 다윗 왕가도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어린 요아스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고 양육했습니다. 때문에 요아스 역시 그 말씀으로 살았기에 하나님 보시기에도 정직하고 의로운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나라는 평안했고, 요아스 왕의 통치에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시편 119:98절 말씀에서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항상 나와 함께 있을 때에는 그 말씀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똑똑한 거 같지만 모르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능력이 있는 거 같지만 얼마나 많은 한계를 만납니까? 내가 경험이 많은 거 같지만 아직 해보지 않은 건 얼마나 많습니까? 무슨 말씀이냐면, 우린 부족한 게 너무 많은 겁니다. 그래서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인도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요아스 왕이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있을 때는 그 말을 청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130세까지 살다 죽게 됩니다.

역대하 24:17절, 18절을 보시면,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뒤 유다의 방백들이 왔습니다. 방백은 유다의 고위 관료들,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요아스가 그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전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을 섬기게 되었고,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요아스 왕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 있을 때는 하나님 말씀으로 정직하게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죽자 우상숭배에 빠진 관리들의 말을 듣기 시작했던 겁니다.

역대하 24:19절에서는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다른 선지자들을 보내서 요아스와 유다 백성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셨지만, 요아스는 선지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일어나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대하24:20)”고 선포하자, 화가 난 요아스 왕은 성전에서 제사를 집례 하던 그를 돌로 쳐 죽이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믿음으로 살아갔었던 요아스 왕이 믿음의 경주를 중단한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속적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누가 있는가? 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여러분은 결국 그 사람과 자주 만나고, 함께하는 이들의 말을 듣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누군가가 바른 인격과 건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부족한 내 믿음이 그 분과 교제하다 보면 점점 더 자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격적으로 문제도 많고, 믿음 생활도 엉터리로 하거나 혹은 아주 세속적인 사람일 경우에는 여러분도 그 사람처럼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의 말씀으로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말을 듣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속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내 마음에서 들리는 욕심과 이기심과 정욕과 교만함과 거짓과 속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 소리를 듣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요아스 왕의 몰락을 따라갈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소리는 우리 믿음의 경주를 멈추게 만들 뿐입니다.

2. 위기의 때에도 끝까지 신뢰하라

요아스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서부터 남유다 왕국에는 고난의 역사들이 써지기 시작했습니다.

역대하 24:23절에서
“일 주년 말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올라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모든 방백들을 다 죽이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 왕에게로 보내니라”

아람 군대가 남유다를 쳐들어 왔습니다. 아람은 북이스라엘의 북쪽에 경계를 두고 있는 나라였기 때문에, 북이스라엘을 치면 쳤지 남유다를 치지는 않는 겁니다. 그런데 남유다를 침공한 겁니다.

뜻하지 않은 고난이 왔을 때, 생각지 않은 고난이 왔을 때… 그 고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실 수도 있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다시 주님께로 돌이키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리석어서 그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계속 어리석은 길로 간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징계를 넘어 심판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역대하 24:24절을 보시면,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아람의 침공으로 남 유다는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숫적 열쇠였던 아람은 남유다의 대군을 무찔렀고, 수많은 전리품도 챙겨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람 사람을 통해 요아스를 징벌하셨던 것입니다. 요아스는 크게 부상을 입었고, 신하들은 왕을 반역하고 요아스 왕을 죽이게 됩니다.

그런데 ‘요아스’란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여호와는 강하시다. 여호와는 도와주신다.”

라는 뜻입니다. 요아스 왕은 정말 하나님의 강하심과 도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아달랴의 광기로 인해서 모든 왕자들이 죽임을 당할 때, 한 살 밖에 안 된 어린 왕자 요아스는 유일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주의 성전에서 6년간 제사장의 돌봄을 통해 아달랴에게 들켜 죽지 않고 살아남고 안전하게 성장했습니다.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남유다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 살 밖에 안 된 요아스 왕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아달랴의 칼을 피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어린 아기 왕자가 6년간 성장했던 것도, 숨어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아달랴의 칼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스스로의 힘이었습니까? 그리고 일곱 살 밖에 안 된 어린 왕자가 자기 힘으로 다시 왕위에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 요아스 라는 이름과 같이 그 강하신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가 왕이 되어 40년간 통치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이름의 뜻과 같이 요아스 마음속에 늘 강하신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는 그 하나님에 대한 의지의 마음이 더 컸었더라면, 그가 믿음의 경주를 멈추지 않았다면, 그는 우상을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고, 아람 왕의 침공이 있었을 때에도 강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또한 신하들의 반역도 없었을 것이고, 그는 40년이 아닌 그 이상의 세월 동안 왕으로 통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인생의 위기, 신앙의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위기의 때에도 믿음의 경주를 멈추면 안 됩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의 경주를 승리한 이들에게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 세부에 살면서 신앙생활을 새롭게 시작하신 분들이 우리 교회에는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고 많은 은혜들을 경험하신 분들도 있고, 여전히 그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중간에 시험도 있고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경주 멈추지 마십시오.

마태복음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두렵고 떨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고, 잘못된 줄 알면서도 더 쉬운 길을 가고 싶은 유혹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믿음의 경주 멈추지 마십시오.

“믿음의 경주를 멈추지 말라”
1.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2. 위기의 때에도 끝까지 신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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