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두려움을 몰아내라”

-믿음의 세대여 일어나라(6) –
<신명기 1:29~33>

영국의 유명한 테니스 선수였던 ‘짐 길버트(Jim Gilbert)’라는 사람의 다섯 살 때 이야기입니다.

짐은 어머니와 함께 치과병원에 가게 됩니다. 그리고 짐은 어머니가 치료받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치료받던 어머니는 아들 앞에서조차 너무 긴장하고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치료받던 중에 그의 어머니는 갑자기 심방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어린 길버트의 마음에는 치과병원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게 된 겁니다. 그럼에도 그는 운동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영국의 유명한 테니스 선수로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어도 그는 치과병원에 대한 공포증 같은 것에 사로잡혀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가 아무리 아파도 치과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오게 되자 치과병원에는 가지 않고 의사를 집에 모셔서 치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 치료기가 닿는 순간, 그도 역시 심방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긍정적 사고’의 창시자로 알려진 ‘노만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 1898~1993)’목사님은 『적극적 사고방식』이란 베스트셀러 뿐만 아니라, 『가이드 포스트』를 창간한 분이기도 합니다. 이 분이 하신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들 중에 ‘40%는 지나간 과거의 것’이라는 겁니다.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컵의 물이 엎질러 져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걱정한다고 해서 더 이상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50%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것’이라는 겁니다. 앞으로의 일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겁니다. 그것이 잘될 수도 있고 혹은 걱정하는 것처럼 안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왜 그걸 갖고 벌써부터 걱정을 하십니까?

사람들이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들의 ‘10%만이 현재의 문제들’이라는 것입니다.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걱정은 건강하지 못한 마음의 파괴적인 습관에 지나지 않습니다.”

두려움으로부터 오는 걱정과 염려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파괴할 뿐입니다. 걱정과 염려의 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내면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습관은 우리의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와 같은 것들을 마음에서 빨리 떨쳐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두려움을 몰아낼 때 우리에게 주어진 한 해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나보다 앞서가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1년 뒤 가나안 땅의 입구인 가데스 바네아라는 지역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각 지파의 대표 한 사람씩을 뽑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정탐하게 됩니다. 열두 사람의 정탐꾼들은 약 40일간 그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게 됩니다.

민수기 13:31절, 33절을 보시면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은 거인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 딸이 키가 그래도 큰 편이라 170가까이 되는데, 호주를 다녀와서 호주의 여자들에 비하면 자기는 꼬맹이 같다는 얘기를 들었니다. 서양인들에 비하면 우리 동양인들이 신체적으로 외소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키가 10cm만 차이가 나더라도 그거 얼마 안 되는 건데, 굉장히 큰 차이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골리앗 같은 거인은 적어도 270cm 정도 되었으니, 당시 거인족들 이었던 아낙 자손들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메뚜기처럼 보잘 것 없는 곤충으로 비하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분명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지만, 이미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족속들은 막강한 거인족들 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런데 29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를 비롯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사람들은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상황 속에 있었지만 두렵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열 명의 정탐꾼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 속에 싸여있었습니다.

왜 같은 상황 같은 조건 속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담대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 떨고 있을까요?

32절 말씀을 보시면,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 원인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 여호와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은 담대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18절 말씀에 보시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곧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그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들과 환경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살, 세 살짜리 아기들이 엄마 품에 안겨 있을 때 두려운 게 있습니까? 주변이 아무리 소란스럽고 힘든 상황이라 할지라도 엄마 품에서는 완전한 안정감을 얻는 것입니다. 그 엄마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도와 줄 것을 100%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엄마의 품에서 떠난 아이들, 복잡한 시장 통에서 엄마의 손을 놓쳐 길을 잃은 아이들은 금세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완전한 안정감을 잃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33절 말씀을 보시면,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우리가 지금 비록 길도 없고, 표지판도 없는 황량한 인생의 광야를 걷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분이십니다. 앞서 가셔서 어떤 일을 하신다는 겁니까? 장막 칠 곳을 찾으시는 것처럼 우리가 안전히 거주할 곳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또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인도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때 주님은 우리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새해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이 한 해를 기대하며, 각자의 특별한 계획을 갖고, 또는 어떤 도전을 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일이 잘 될지 아니면 잘 안될지 우리는 사실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생각하면 불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시 이러다 망하면 어떻게 하지? 이러다 모든 것을 잃으면 어떻게 하지?…’와 같은 생각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여러 가지 두려움에 싸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보다 앞서 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우리의 계획보다, 우리의 손과 발보다 주님이 앞서 가 계심을 믿으십시오. 모든 것이 우연 속에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내 삶이 인도하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실 것을 믿었던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을 믿었고, 자신들보다 앞서 일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도 똑같은 것, 똑같은 상황을 봤겠지만 이런 믿음이 그들 마음에 있었던 모든 두려움을 몰아냈던 것입니다.

2. 나를 안고 가시는 하나님

우리가 한 해 동안 살아가면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서 가져야 할 두 번째 믿음은 하나님은 우리를 안고 가시는 주님이시란 사실입니다.

31절 말씀을 보시면,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한 이후에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 시내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광야는 거의 비도 내리지 않고, 때문에 물도 구하기 어렵고, 먹을 것도 찾기 어렵고, 쉴만한 그늘이란 곳도 찾기 어려운 사막지형입니다. 낮에는 모든 것을 다 태울 것 같은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밤에는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져 강추위 속에 떨어야 합니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광야입니다.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광야에서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아서 가나안 땅 입구인 가데스 바네아까지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보여드리고 있는 이 사진은 몇 년 전 바다에서 전복된 난민선에서 탈출해 헤엄치고 있는 남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이 남자는 아기를 품에 앉고 사력을 다해 헤엄쳐나가고 있습니다. 남자의 표정만 봐도 얼마나 이 상황이 절박한 상황인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품에 있는 아기는 자세히 보시면 눈을 감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잠들어 있는 모습입니다.

저 아기가 어른들도 건너기 힘든 저 바다를 혼자서 헤엄쳐 건널 수 있겠습니까? 절대 불가능합니다. 배가 전복되었을 때 아빠가 없으면 저 아기는 1분도 못 되 물에 익사해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주일 예배를 나오기 위해서 우리 성도님들이 가족들과 함께 교회에 나오셨는데, 마리아 루이사 빌리지 가드하우스에서 차로도 한참 들어가 있는 곳에 사시는 성도님도 계세요. 그런데 오늘 그 집의 4살 된 유아도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만약 엄마 아빠가 없었으면, 엄마 아빠가 운전해 주지 않았으면 그 유아가 주일예배라고 오늘 교회에 올 수 있었겠습니까? 거의 불가능한 겁니다. 언덕 올라가다가 힘들어서 그 언덕 어딘가에서 서글피 울다 오늘 하루가 다 갔을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시내 광야로 들어갔는데, 그곳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2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인 시내산(호렙산)에서 율법을 받고, 1년 만에 가나안 땅 입구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럼 그 1년 동안 그들의 마실 물과 먹을 것은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낮의 타들어가는 햇볕과 밤의 강추위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겠습니까?

인간이 결코 살 수 없는 그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 1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것입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1년 동안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기적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고 가셨다는 것입니다.

시내산은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큰 산이었고, 그 시내산과 함께 광야는 길도 없는 험난한 산악지대였습니다. 그 시내산부터 가데스 바네아까지는 1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크고 두려운 광야”였던 것입니다. 건장한 사람들도 그런 지역을 통과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어린 아기들이 그런 광야를 통과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안아 주면 가능해집니다. 험한 파도가 치는 바다라 아기가 헤엄쳐 그 바다를 벗어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품에 꼭 안고 다시 도전하면 아기라도 가능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안 됩니다. 우리는 어쩌면 광야를 통과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광야를 절대 통과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안고 가시면 우린 승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진 속에 아기에게서 우리가 어떤 두려움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헤엄을 칠 수 없다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헤엄을 전혀 할 줄 몰라도 아기를 품에 안은 아버지로 인해 이 아기는 안전히 그 바다 위를 건너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3:2절 말씀에서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한 해 동안 우리의 인생 속에 물과 같이, 불과 같이, 강과 같이 우리를 위협하고 우리를 두렵게 할 만한 상황들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지금 광야가 내 앞에 펼쳐져 있고, 큰 바다가 내 앞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말씀하시며 우리를 안아 그 광야와 그 바다를 건너고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3. 나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려면 ‘나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0절 말씀을 보시면,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실 때, 애굽의 바로 왕은 완강했습니다. 그는 절대 권력자였고, 그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60만 명이 출애굽하는 것은 불가능한 문제였습니다. 바로 왕 입장에서 바보가 아닌 이상 노예 60만 명을 순순히 풀어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막강한 절대 권력자인 애굽의 파라오 왕과 싸우신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키시고, 그들을 붙잡고 놓지 않고 있는 이들을 벌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셨던 것입니다.

출애굽 후에 그들이 광야를 걸어 홍해 앞에 다다랐을 때, 뒤에서는 이스라엘 노예들을 풀어준 것을 후회하는 애굽 왕과 애굽의 모든 병거와 용사들이 창과 칼을 휘두르며 이스라엘을 뒤쫓아 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겐 전쟁용 칼 한 자루 변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평생 전쟁을 위해 훈련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때 모든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사로 잡혔었습니다.

출애굽기 14:13절,14절에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우리는 홍해 사건의 결과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홍해를 가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그들의 대적과 싸우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마른 땅을 건너게 하셨고, 뒤쫓아 오던 애굽의 병거와 용사들은 홍해 속에 수장시키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싸우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목사인 저 같은 사람도 세상적으로 보자면 약자에 속합니다. 누가 싸움을 걸어도 싸울 수 없고, 누가 억울한 일을 뒤집어 씌어도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이 믿음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싸우실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비록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 처해 있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이 환란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이 모든 억울함도 벗겨주시고, 나를 높이시고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내가 주님의 편에 서 있는 한(내가 주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가는 한), 주님은 언제나 내 편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힘이 없어 대항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나를 위해 싸워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금문교(Golden Gate Bridge)’라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며, 랜드 마크이기도 합니다.

현수교인 이 다리는 1933년 1월에 착공해서 1937년 4월에 완공했고, 당시로서는 가장 큰 다리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기술로 이런 현수교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입이 딱 벌어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로서 정말 대단한 기술력을 보여준 엄청난 공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다리를 건설하면서 1년 동안 무려 23명이 떨어져 죽게 됩니다.

그래서 건설회사는 안전을 위해서 거대한 그물망을 깔아 놓았는데, 그런데 그 때부터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공사 진척률이 그물망 이전보다 무려 20%나 빨리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생각이 인부들의 작업능률을 그 만큼 올려놓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위축시키고, 일의 능률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두려움만 극복해도,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만 몰아내도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올 한 해를 살아가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우리 주변의 여러 가지 상황들은 분명 우리를 움찔하게도 만들고, 두려움과 염려와 걱정에 싸이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십시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오직 주님 외에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두려움을 몰아냄으로 한 해 동안 믿음의 승리자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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