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하여 새 시작을 주시는 하나님

시편 114:1~8

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2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3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4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

5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6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7 땅이여 너는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8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시편 114편]은 113편과 함께 ‘할렐시(Hallel)’라고 하는 ‘찬양시’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 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기 때마다 불려 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별히 내용상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에 ‘유월절(Passover)’에 이스라엘 건국사에있어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회상하며 이 찬양을
올려드렸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의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란 말과 함께 ‘야곱의 집안’이란 표현이 동격으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집안 즉 그 자손들 70명이 애굽으로 내려간 지 430년이 흐른 뒤 출애굽할 때 그의 자손은 장정만 60만 명에 이르는 큰 민족으로 성장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란 말과 ‘야곱의 집안’이란 표현을 통해 그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 바른 믿음 생활을 할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호의와 은혜를 베풀었는데, 그 사람이 받은 은혜를 잊고 신의를 저버린다면… 그런 사람이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는데, 우리가 그 은혜를 저버리거나 배신하는 삶을 산다면… 어찌 하나님과 좋은 관계라 할 수 있으며, 참된 신앙인의 모습일 수 있겠습니까? 야곱의 집안인 이스라엘 민족은 종되었던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시면,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셔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셨고, 유다 지파의 땅인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소인 거룩한 성전을 주셨고,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 왕국으로 삼으셨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3절부터 6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시에 있었던 기적과 광야 생활 중에 있었던 그리고 가나안 입성 시에 있었던 특별한 사건들을 비유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3절과 5절을 보시면,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게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이것은 출애굽 시에 있었던 홍해의 기적과 가나안 입성 시에 있었던 요단강 도하의 기적을 말하고있는 것입니다. 바다가 어떻게 갈라질 수 있겠습니까? 강물이 어떻게 갈라질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힘으로 그리고 자연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사건들이 이스라엘의 출애굽 시에 그리고 가나안 입성 시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초자연적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과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여셨던 것입니다.

저는 열아홉 살 때 처음 교회에 등록하여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이 확실한 게 저는 교회에 나가자마자 성경의 모든 내용이 그냥 다 믿어지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게 된것입니다. 저에게 있었던 지독한 가난과 암울한 미래 등등의 상황과 환경은 전혀 변한 게 없는데, 저는 매일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너무 행복한 나날을 보냈었습니다.

그렇게 신앙 생활한지 5개월 즈음에 몸이 아프기 시작했는데, 의료보험도 돈도 없었기 때문에 병원엔 갈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엔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숨이 가빴고, 열은 40도까지 올라 있었고, 몸무게는 지금보다 20여 kg이나 빠져 있었던 때였습니다. 아무도 저를 돌봐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숨이 넘어가기 직전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폐결핵으로 한쪽 폐 기능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두 달간 병원에 입원하며 치료받고, 그 후 1년 동안 약을 먹으며 회복했습니다. 그때 한번 죽다 살았습니다.

하지만, 제겐 부모님도, 저를 돌봐줄 가족도 없었기 때문에 영양이 결핍했고, 결핵은 2년 뒤에 다시 재발했고, 10개월간 한 줌씩 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병을 고쳐보려 애썼지만, 병은 점점 심해졌고 제가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죽더라도 기도라도 하다가 죽자’라는 마음으로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제게 얼마나 큰 은혜로 다가왔는지, 그래서
기도원에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곤 산에서 내려오는데 기침이 멎고 몸이 점점 좋아지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 몸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계기로 저는 하나님 앞에 제 삶을 드리기로 결단하고, 신학교에 가고, 이렇게 목사로 제 평생을 헌신하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종되었던 애굽에서 출애굽하고, 광야생활을 했듯이 제 인생의 광야와 같은 시련과 고난은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시고, 새로운 시작을 여셨던 특별한 사건으로 제 마음에 늘 남아 있습니다.

1절에서 ‘야곱의 집안’이라고 표현된 이스라엘은 작은 부족에서 큰 민족으로 성장했고,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으로 구원하셔서 가나안 땅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신정 왕국은 건국하여 새로운 시작을 주셨던 것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피로감에 젖어 있을 수도 있고, 답답한 미래로 인해 낙심과 좌절의 감정으로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절망 중에 있는 나를 구원하여 새로운 시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내 능력의 끝에서, 내 인생의 끝에서 하나님이 일하셔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하나님은 그 절망 중에 있는 나를 구원하여 새로운 시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내 능력의 끝에서, 내 인생의 끝에서 하나님이 일하셔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실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내게 있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실 지를 묵상해 봅시다.

실패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

시편 113:1~9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2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3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4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로다 높으시도다

5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6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7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들어 세워

8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9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시편 113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마치기 때문에 ‘할렐시(Hallen)’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할렐루야’라는 것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시인은 1~3절에서 여호와의 종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9절까지는 그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먼저, 2절과 3절을 보시면,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되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 찬양의 기간이 끝이 없는 영원에 이르기까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고,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즉, 영원이라는 시간을 이해할 수없다면 하루의 날이 시작하면서부터 마치는 데에까지, 인생의 시작부터 마치는 데에까지 하나님은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4~9절까지 그 이유에 대해서 나열하고 있는데, 4절에서 이 땅에 있는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보다 높고 심지어 하늘보다 더 높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어떤 고관보다, 어떤 왕들보다 더 높은 분이신데 6절에 의하면, 그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하늘 아래에 있는 연약한 자들을 살피셨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야망과 권력욕으로 가득한 현대의 정치인들은 수 해나 산불과 같은 어떤 재난 현장에 수행원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가서 사람들 손도 잡아 주고 뭔가 걱정하는 듯한 말들을 하지만, 우리 국민들 중에 그 모습을 진실되게 바라보는 이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과연 그들이 정말 큰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들을 향해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재난을 자신의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인지… 때로는 그 정치인들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때도 있습니다.

7절과 8절을 보시면,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들어 세워,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신분제도가 엄연히 존재하던 고대 사회에서 ‘가난한 자, 궁핍한 자’는 가장 비천한 밑바닥 인생이었습니다. 그 인생은 절대 신분 상승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그 자식의 자식과 그 후손 대대로 비천한 신분으로 살아야만 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역사를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궁핍하고 비천한 인생을 들어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열일곱 살에 비천한 노예 신분으로 전락했고, 20대 시절은 감옥의 죄수로 하루하루를 보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들어 애굽의 총리로 세워 온 세상을 구원하는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모세도 40년간 비천한 목동 신분으로 인생의 바닥을 치고 있을 때, 그를 들어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지도자로 사용하셨습니다. 이런 예들이 성경에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9절을 보시면,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어떤 학자는 이 구절을 ‘한나의 노래’와 연관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2장의 한나는 임신하지 못하던여인이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겨 아들 사무엘과 여러 자녀들을 주셔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여인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인 한 형제님이 필리핀에서 대형 교통사고로 여러 차례의 대수술을 받았지만, 결국은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고, 다른 다리도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목사인 저는 그 형제님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다리가 절단되지 않았더라면…’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나도 큽니다. 본인과 가족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사고 전 예수님을 믿지 않던 우리 형제가 지금은 믿음 안에서 씩씩하게 이 모든 어려움을 견디며 재활치료도 받고, 직장 출근도 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얼마 전 세부에 잠시 다녀갔습니다. 그래서 함께 식사할 자리가 있었는데, 우리 형제님이 그때 목사인 저한테, ‘제가 목사님의 은혜는 정말 평생 잊지 않을 거예요…’ 하시면서, 눈물짓는 겁니다. 제가 그 말을 듣는데 얼마나 송구했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 형제님을 위해 해준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병원에 있는 1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 걱정해 주고, 함께 울어주고(울긴 참 많이 울었습니다), 함께 기도해 준 것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않은거 같아 저는 목사로서 알 수 없는 미안함 같은 게 지금도 큽니다. 그래서 그 형제님에게 그런 인사를 들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되고, 성도가 아픈데 어느 목사님이 그렇게 안 하시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형제님은 그런 말로서 제게 고마움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우리 형제님은 지금도 매일 유튜브를 통해 찬양과 설교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과 인격적인 깊은 관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형제님을 통해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 실패한 자를 통해서 더 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실패가 크면 클수록 하나님은 더 큰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하나님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 실패한 자를 통해서 더 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실패가 크면 클수록 하나님은 더 큰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나의 실패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떤 찬양을 받으실지 묵상해 봅시다.

너그러운 사람이 복을 받는다

시편 112:5~10

5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6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7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8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

9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

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

[시편 112편]은 ‘누가 복이 있는 사람인가’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1절에서 “…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순종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1절은시편 112편의 서론 격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순종하는 복이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2절에서 10절까지 두 종류의 사람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사람은 2~4절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정직한 자가 복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5~10절까지에서 또 복이 있는 또 다른 한 종류의 사람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시면,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라고 하셨습니다. 즉,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 즉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이 “너그러운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는다면, 이 사실을 그냥 액면 그대로 믿으시 면 됩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인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이 사실을 보증하는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에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 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어떻게든 내가 한 뼘이라 도 더 차지하려고 악착같이 그리고 험악하게 달려드는 사람 이 당장에는 더 크고 넓은 땅을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 런데 결국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시 지만,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람은 한순간에 모 든 것을 빼앗길 날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을 보시면,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 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내가 누군가를 불 쌍히 여기며, 은혜를 베풀며 살게 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행한 일을 기억하시고 그가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을 때 그 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 본문 5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바와 같이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가 결국은 잘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12편 9절 말씀을 보시면, “그가 재물 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 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 역사적으로 성경이 기록되던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항상 부자와 가난한 자가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더 강한 자와 더 많이 가진 자가 약한 자와 가난한 자를 돌아보도록 하셨습니다.

간혹 우리의 마음에는 ‘약한 자와 가난한 자’에 대해서 매몰찬 생각이 가득할 때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게을러서,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노력하지 않아서 저렇게 된 거야. 뿌린 대로 거둔 거지 뭐. 저런 사람 자꾸 도와주면 습관되니 도울 필요 없어…!’ 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경우 잘 해보고 싶은데 그것 자체가 잘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싶고, 여러 가지 재능도 갖고 싶고, 잠도 안 자면서 열심히 노력이란 것도 해보고 싶은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되는 사람이있는 겁니다. 어떤 뛰어난 사람이나, 성공하는 사람들과 같은 굳은 의지라는 것 자체가 없는 겁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의 경우 맘먹은 것은 꼭 해내고야 마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여러 좋은 것을 소유하기도 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어딜 가나 칭찬을 듣고, 좋고 풍요로운 환경을 누리기도 하는 겁니다. 의지박약과 무기력과 무능력한 사람이 볼 때, 그 뛰어난 사람은 항상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가진 자들, 잘난 자들, 능력 있는 자들, 성공한 자들은 연약한 자와 가난한 자를 향해서 매몰찬 마음을 거두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해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들에게 나타난 첫 번째 증상들은 그들이 연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15장 1절에서도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연약한 사람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멸시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돌아보고, 그들의 약한 점을 커버해 줄 수 있는 것이 참된 믿음의 사람의 도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지 않으신다면 과연 우리 중에 멀쩡하게 서 있을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가 연약해도, 실수가 많아도 심지어 죄가 많아도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동정하셔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의 그늘 아래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도 연약한 자를 향해 매몰찬 마음을 거두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에게 은혜를 베풀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너그러운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국 복을 받게 될 사람인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연약한 사람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멸시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돌아보고, 그들의 약한 점을 커버해 줄 수 있는 것이 참된 믿음의 사람의 도리인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내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