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3:17~22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3: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3: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13: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13: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우리나라 군조직에는 육군, 해군, 공군이 있지만, 해군 예하에<해병대>가 있습니다. 해병대는 기습 침투작전와 상륙을 주 임무로 하고 있어 육해공 어디서든 작전 수행이 가능한 전천후 부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전쟁 시 적진의 최전방에 침투해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군필자 중에 해병대에서 전역한 남자들은그 자부심이 엄청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병 교육 기간도 타군에 비해서 1~2주 더 길고, 육해공 어디서든 작전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훈련의 강도 또한 어느 부대보다 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병대에서는 “군대 가면 사람 되고, 해병대 가면 남자 된다.”는 말도 하고,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문구도 신병교육대 곳곳에붙어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내가 생각지 않았던 큰 시련과 고난의 현장에들어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아무것도 없는 광야와 같다고 해서, 흔히들 ‘광야 같은 인생’이라고도 합니다. 비록 우리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광야같이 험한 길을 갈 수도있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여러 영역에서 여러 가지 능력을 키우기도 했고, 더 강해져 가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을 배우는 학교’와 같은 곳입니다. 갓 스무 살의 청년들이 군에 입대하면서 멋진 사나이가 되듯이, 우리는 이 광야 학교에서 더 성숙한 인격과 신앙을 갖추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뉴욕의 대표적인 메가처치 중 하나인 ‘타임스케어처치(Times Square Church in N.Y city)’의 ‘카터 콜론(Carter Conlon, 1953)’ 목사님은 “우리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를 광야로 데려가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이란 나라를 세우시기 전에그들을 광야로 인도해주셔서 그곳에서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게하셨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때때로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광야 학교>를 통해 우리를 훈련하시는 바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1. 마음 훈련
야곱의 자손들 70명이 애굽에 내려간 지 430년 만에장정만 60만 명의 커다란 부족을 넘어 ‘이스라엘’이란 하나의 민족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번성할수록 위기감을 느꼈던 애굽의 파라오(바로) 왕은 이스라엘을 박해했고, 하나님께서는 극심한 고통 속에 부르짖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를 통해 출애굽 시키셨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3장 17절을 보시면,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430년 동안 살던‘고센’ 땅은 나일강의 하류 부근그리고 지중이었고, 지금의 수에즈 운하 근처해와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센에서 출애굽한 뒤에 지중 해안을 따라 4~5일만 걸어가면 가나안 땅의 블레셋 족속이 살고 있는 곳까지 빨리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또 모세 역시 마흔 살이 될 때까지애굽의 왕자로 교육받았는데, 그 교육안에는 군사, 지리와 같은 것들도 모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고센에서 가나안 땅까지 어떻게 이동해야 가장 빨리 갈 수 있는지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최단 거리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시내 반도가 있는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당시 블레셋을 비롯한 가나안 족속들은 키가 큰 거인 부족들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철기 문명을 일찍이 받아들여 군사력이 막강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여러 부족들과의 잦은 전쟁으로 전술과 전쟁과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군사로서 훈련받은 적도 없고, 전쟁에 익숙하지 않았던 노예 출신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뒤 일주일도 못 되어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된다면, 100% 비참하게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포에 떨면서 출애굽을 후회하며 마음을 돌이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할 것이라는 겁니다.

18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최단 시일 내에, 최단 거리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가나안 땅을 멀리 돌아갈 수밖에 없는, 홍해가 있는 남쪽의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깐 그 능력으로 가나안 땅에 있는 범죄한 부족들을 다 몰아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을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짠’하고 선물로 주시고,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이스라엘이 그냥 행복하게 살게 하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300명인데, 이들을 <입법부>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이들이 우리나라의 ‘법’을 만드는 사람들인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실력도 있어야 되겠지만, 무엇보다 인격적인 부분에서 건전하고 건강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어야합니다. 인격적으로 상식적이며 건강한 사람이 만든 법과 인격적으로 질이 아주 나쁜 사람이 만든 법 중에 어떤 것이 정말 국민과 나라를 위한 법이 되겠습니까? 악한 자가 만들면 악법이 되는 거고, 좋은 사람이 만든 법은 국민과 나라를 위한 법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마음과 인격의 준비가 전혀 안 된 사람에게 가장 큰 독은 ‘형통과 성공’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당장 가나안에 들어가는 게 복이 될 수 없는겁니다. 마음의 준비, 인격의 준비, 믿음의 준비, 신앙의 준비… 여러 면에서 신정국가로서의 준비가 덜 된 이스라엘에게가나안이 참된 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광야를 좋아라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광야와 같은 인생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굳이 빨리 복을 주시지 않고, 때로는 침묵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고난과 시련 가운데 있는데 그냥 내버려 두시는 거 같기도 할 때가 있는 겁니다. 사실 이 기간은 <광야 학교>에 들어가 있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부목사로서 사역할 때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자세하게 공개할 수는 없지만, 저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던 어떤 사람들에 의해 제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루머가 퍼져있고, 또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루머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 저는 아주 이상한 목사, 변질된 목사, 타락한 목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목사’라는 직업은 때로 ‘바보’로 살아야 하는 직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군가와 멱살 잡고 싸우고, 법정에 가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다른 사람들이나 교회 성도들 찾아다니면서 ‘저 그런 사람 아니라’고, ‘누군가 저를 악의적으로 모함한 거라’고, ‘정말 나쁜 사람은 아무개라’고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 교회 공동체에 일어날 파장이 너무 크고,사람들에게 은혜도 되지 않고 덕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에게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물론, 나중엔 그 억울함이 다 벗어지고, 하나님께서 그 공동체 안에서 저를 높여주시는 반전과 역전이일어나긴 했지만, 그때까지 제가 버티고 견뎌내야 했던 시간이 결코 짧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모든 사역을 다 내려놓고,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광야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그 기간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말씀을 제게 주셨는지 모릅니다. 성경만 펴면 눈물이 나고, 기도의 자리에 엎드리면 은혜를 주시는 일이 매일 매일 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광야’라는 단어는 ‘미드바르(Midbar) : ר’라고 하는데, “미드바르 : + ר (Mi + dbar)”는 “미”라는 단어와 “드바르”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런데 ‘미(mi)’는 ‘무엇이 임하는 장소’를 의미하고 ‘드바르(dbar)’는 “다바르”에서 파생한 단어인데, ‘말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드바르”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장소’를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인생의 어두운 광야를 걷고 있었을 때, 매일 매일이 너무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었습니다. 광야라는 곳은 원래 그런 곳입니다. 하지만, 그 광야 학교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매일, 매 순간마다 저를 찾아오시고, 말씀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저의 문제도 보게 하시고, 저의 마음을 고쳐 주시고, 저의 인격적인 면을 치료해 주시고, 더 온전한 마음과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인생의 광야를 걷고 있었을 때, 그때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느껴졌던 때가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도 교회에 매일 혼자 오셔서 기도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그 성도님의 문제와 어려움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기도하려고 교회 오셔서 앉기만 해도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인생의 광야를 걷고 있을 때는 어떤 탁월한 목사님이 설교를 기가 막히게 안 하셔도, 모든 말씀이 꿀송이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모든 말씀이 다 내게 하시는 말씀 같은 겁니다.
그래서 광야는 우리의 ‘마음 훈련’이 진행되는 곳입니다. 나를 더 낮아지게 겸손하게만드시고, 더 이상 나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 손에 아무 것도 없지만, 전능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나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2. 믿음 훈련
하나님께서 인생의 <광야 학교>에서 우리의 ‘마음’을 훈련하시면서 두 번째로 하시는 훈련이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21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면서광야 생활 내내 그들 앞에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낮과 밤으로 그들과 함께 했던 것입니다. 여기 필리핀은 적도 부근에 위치한 열대지방이기 때문에 해가 1년 내내 뜨겁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햇빛 아래에 5분, 10분만 걸어도 머리가 뜨끈뜨근 해지고, 온몸에서는 땀이 흐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길을 걸을 때, 조금이라도 그늘이 있는 곳 아래로 걸으려 하는 겁니다.
그러니 황량한 사막과 광야를 걸을 때는 어떻겠습니까? 하루에 1시간, 2시간만 그 햇빛 아래에서 걸었겠습니까? 적어도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은이동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열사병으로 죽어 나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머리 위로 구름 기둥이 높이 넓게 펼쳐져 있으니 백성들 모두가 그늘 아래에서 행진해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광야에는 독사와 전갈과 같은 맹독류와 들짐승들이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사막과 광야 지역은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고, 10도 이하 혹은 영하로도 떨어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게 ‘불’인 것입니다. 불은 추운 광야 지역에서 체온을 유지 시켜 줄 뿐 아니라, 독사와 전갈과 들짐승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기능까지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줬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지 약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그들이 애굽에서 급히 갖고 나온 모든 식량이 바닥이 났습니다. 그런데 광야라는 곳은 농사를 지을 곳도 없고,비도 거의 내리지 않는 곳이고,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할 곳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그리워하며 모세를 원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6장 4절을 보시면,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하나님께서 광야생활 40년 동안 매일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만나는 단 하루치만 먹을 수 있었고, 만약 내일 내리지 않으면 모두가 굶을 수밖에 없는 곳이 광야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매일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게 해 주셨고,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매일 만나를 내려 주시기를 바라고 사모해야 했습니다. 만약 만나가 내리지 않는다면 광야에서 살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환경을 얼마든지만들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결핍’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버지가 돈도 잘 벌어오고, 집에 먹을 게 떨어지지 않고, 내가 하는 공부나 일들도 잘만 되고, 모든 일들이 형통해 보세요. 과연 아무런 결핍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일이 있을까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어린아이들과 여자들 그리고 노인들도 많았을텐데… 그러면 가나안까지 빠른 시간 안에, 제일 짧은 길로 인도하셨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 하셨을까요? ‘결핍’입니다. 특히 광야라는 곳은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곳입니다. 먹을 것도, 마실 물도,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도 피할 수가 없고, 농사도 지을 수가 없고, 독사와 전갈 그리고 들짐승의 위협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서 낮의 해와 밤의 추위로부터그리고 들짐승의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셨습니다. 40년간 하루도 빼지 않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늘로부터 내려 주셔서 그들이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결핍 속에서 매일 주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 훈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똑같지 않습니까? 내 손에 뭔가 좀 있는 거 같으면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교회 나올 일도 없는 겁니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과 시련 그리고 결핍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구하고 찾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훈련은 하루아침에 다 되지 않습니다. 어느 성경학자는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인들을 빼내는 데에는 하루가 걸렸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있던 애굽을 빼내는 데는 40년이 걸렸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살아온 방식과 습관과 고집을 꺽는다는 게 하루아침에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싸우는 결단도 필요합니다. 그런 믿음 훈련이 이스라엘에겐 40년이 필요했던 겁니다.
여러분의 삶이 지금 인생의 광야에 들어온 것처럼, 막막하고 답답하시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학교에서 우리는 마음과 감정을 훈련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애굽과 같은 세상적인 가치만을 갖고 살고 있었는데, 이제 믿음 훈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 중에 한 사람인 ‘D.L. 무디(1813~1899)’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용기를 내라. 우리가 오늘은 광야에서 걷지만 내일은 약속의 땅에서 걸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들어갔지만, 분명한 사실 한가지는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그리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신다는 것을 그 광야 40년 내내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지금 내 인생의 광야에서 나 혼자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돌보시고, 공급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광야를 걷고 있지만, 내일은 약속의 땅에서 걷게 될 것입니다.
“광야 학교” – 새로운 역사를 써가게 하소서(4) (출애굽기 13장 17~22절)

1. 마음 훈련
2. 믿음 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