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무죄한 피 곧 그들의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로 더러워졌도다
39 그들은 그들의 행위로 더러워지니 그들이 행동이 음탕하도다
4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맹렬히 노하시며 자기의 유업을 미워하사
41 그들을 이방 나라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이 그들을 다스렸도다
42 그들이 원수들의 압박을 받고 그들의 수하에 복종하게 되었도다
우리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유럽과 미국,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등에서는 마약류라 할 수 있는 대마초 같은 것들은이미 합법화된 곳이 있을 정도로 마약 중독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더 강한 마약들을 하도 많이 하니깐 정부에서 ‘대마초’ 정도는 그냥 허용을 해 주는 겁니다.
왜 마약에 중독이 되고, 그 중독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냐면, 마약류는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우리 뇌의 일부를 변화시켜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만약 마약류를 중단하면우울증, 불안, 불면증을 비롯해 신체적이고 정서적인 금단 현상으로 고통스러워 죽을 거 같은 겁니다. 그러니 한 번 마약에 손을 댄 사람이 그 중독에서 빠져나온다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18장 8절에 보시면,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말씀입니까?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범죄하는 손과 발을 찍어 버리기 시작하면 우리 중에 온전한 지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심각하고 끔찍하고 강하게 말씀을 하셨을까요? ‘죄’라는 것은그 손이 잘려 버려지지 않으면, 그 눈이 뽑혀 사라지지 않으면… 끊어버리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마치 마약 중독과 같이 얼마나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히는지 모릅니다. 더 이상 나와 관계가 없을 거 같은 그 죄가 어느날 보면 또 스윽 다가와 있고, 나도 모르게 그 죄의 달콤함에 빠져있는 겁니다.
시편 106편 34절, 35절을 보시면 “그들은 여호와께서 멸하라고 말씀하신 그 이방 민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그 이방 나라들과 섞여서 그들의 행위를 배우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고, 모세를 통해 ‘모세오경’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부터특별히 경고하고 명령하신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나안의 이방 족속들을 모두 멸하라. 그들과 혼인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민족의 풍속을 따르고, 그들의 문화를 따르고, 그들의 우상을 섬길 것이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36절을 보시면, “그들의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 하반절에서”… 그것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었도다”라고 하셨는데, 토끼든, 멧돼지든 심지어 곰과 같은 맹수라 할지라도 사냥꾼이 펼쳐놓은 올무(올가미)에 걸리기만 하면, 절대 빠져나올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죽은 목숨과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7절부터의 내용을 보면, 우상의 제의 중에 우상에게 자기 자녀를 희생제물로 바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우상의 피로 더럽혔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크게 진노하셨고, 41절과 42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망해 이방 여러 나라의 손에 넘겨져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이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죄에 빠지기 시작하면,그 죄는 여러분을 종으로다. 그래서 그 죄가 시키는 대로삼는 겁니하는 겁니다. 처음엔 그 죄의 달콤함에 빠져 내가 그것을 이용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어느 순간 그 죄가 여러분을 종으로 부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 죄로 인해 망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 죄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손이 죄를 범하면 잘라버리라. 눈이 죄를 범하면 뽑아버리라…’는 식으로 말씀하셨고, 오늘 본문 34절에서도 ‘그 이방 민족을 멸하라’ 하셨는데, ‘그렇게까지 심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하지만 ‘죄’라는 것을 용납하기 시작하면그 죄는 반드시 나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들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나를 그 죄의 종으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그만큼 강력합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너그럽고 온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죄와의 관계에 있어 우리는 매우 ‘단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얼마든지 용서하고, 용납하고, 이해해야 하지만, 죄에 대해서 만큼은용납하고 틈을 줘서는 안 되는 것조금도 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7절에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죄에 대해서 만큼은 단호하고 단호해야합니다. 그래야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세상이 변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그렇게까지 심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하지만 ‘죄’라는 것을 용납하기 시작하면 그 죄는 반드시 나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들 것입니다.
32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33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오늘 본문에는 안타까운 사건 하나가 나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며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는데, 이번 ‘므리바 물 사건’을 통해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의 가나안 입성 자격을 박탈했는지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민수기 20장을 중심으로 살펴보시겠습니다.
민수기 20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 40년째 되던 해’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20장 1절을 모세의 누이였던 미리암이 죽어 장사 되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2절 이하부터는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 앞에 와서 ‘물이 없으므로’ 불평하고 원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민수기 20장 5절을 보시면,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으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40년 전, 오늘 본문의 배경인 ‘가데스 바네아(가나안 땅과 시내 반도의 경계)’는 12명의 정탐꾼들이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돌아와서 정탐 보고를 했었던 곳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열 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보고와 불평과 원망을 했고,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광야 40년의 방랑 생활로 징계했습니다. 당연히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20세 이상의 모든 남자들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을 박탈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광야를 돌고 돌아 40년 만에 다시그 멀리 가나안 땅이 보이는 ‘가데스 바네아’에 왔는데, 그들은 그곳에서 또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민수기 20장 8절에서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가서 반석에게 명령하여(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20장 10절, 11절을 보시면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을 모아서 반석에서 물을 내는 장면인데, 8절에서 주님께서는 ‘반석에게 명령하여’라고 하셨는데, 10절, 11절에서 모세는 ‘화를 내면서 반석을 두 번 내리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행인 것은 모세가 화를 냈음에도 불구하고하나님께서는 그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셔서 회중과 가축들에게 물을 주셨다는 겁니다.
민수기 20장 12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언젠가 미국 대통령의 부임 전과 퇴임 후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몇 년 사이에머리도 희어져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더 늙고,
모세가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불평과 원망을 들으며 있었으니, 그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고, 감정의 소비가컸겠습니까? 40년 전 그 가데스바네아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다 가나안 땅 입성 자격을 박탈당하고, 그로 인해 40년간 광야 방랑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40년이나 지났는데 그들은 여전히 변하지않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장소에서 또 불평하고 원망하니…모세의 감정이 폭발해 버렸던 거 같습니다. 충분히 이해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06편 33절을 보시면,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함으로반석에서 물을 내야했는데, 마치 자신이 신비한 능력을 일으키는 것처럼지팡이로 반석을 내리치며 물을 내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 모세는 가나안 땅 입성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그 사람이 모세일지라도 누구도 예외 될 수 없다는 겁니다.
40년이 지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감정이 전혀 변화된 게없었습니다. 그들은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지난 40년 동안 광야를 방랑하며 살 수밖에없었던 것입니다. 저 멀리 가나안 땅이 보이는데도 그 땅에 들어갈 자격을 박탈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모세 역시 그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화를 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던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가나안 땅 입성 자격을 예외없이 박탈당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모세의 모습을 보면서 ‘화라는 것은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부부 사이에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우리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화를 참지 못해서 화를 내게 되면…얻을 것보다 잃을 게 훨씬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차라리 화를 누르고 참고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잘했다’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잠언 16장 32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우리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화를 참지 못해서 화를 내게 되면… 얻을 것보다 잃을 게 훨씬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차라리 화를 누르고 참고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잘했다’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2019년, 튀르키예(터키) 동부의 한 작은 마을에는 스물여섯 농가가 평균적으로 20마리 내외의 양들을기르고 있었습니다. 양들은 대부분 그곳의 넓은 들판에 풀어놓고 함께 키우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양치기들이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잠시 양 떼들을 떠나 있던 사이, 풀을 뜯던 양들 가운데 한 마리가 갑자기 미친 듯이 내달려 절벽 아래로뛰어 내렸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있던 양 떼들도깜짝 놀라면서 그 양을 따라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기 시작했고, 결국 약 450여 마리의 양들이 몰사했습니다.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첫 번째로 뛰어내린 양이 무엇인가에 깜짝 놀라도망간다는 게 절벽으로 뛰어내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 주변에 있던 겁많은 양들도그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그 뛰어내린 양을 따라가다 모두 절벽에 떨어져 죽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 사람을 ‘양’으로 많이 비유하는데, 사람도 양들처럼 이렇게 어리석음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나치의 히틀러라는 악마 한 사람의 선동에 모든 독일 사람들이 열광했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게 되는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무고한 유대인 600만 명이 살해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한 사람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깨어 있으면한 가정이, 교회가, 사회와 세상이 살아날 수도 있고, 만약 깨어 있는 한 사람이 없으면가정도, 교회도, 세상도 모두가 함께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양 떼와 같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죽음의 절벽으로 뛰어내리지만,그곳이 죽음의 절벽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앞사람 꽁무니만 보고쫓다 모두 죽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민수기 25장]의 ‘바알 브올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의 광야 생활을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진군해 나갔습니다.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도,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않았는데 요단 동편에 있었던 나라들과 계획이 없던 전쟁이일어났고, 다행히 이스라엘은 그들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 동편에 있던‘싯딤’이란 마을에 진을 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민수기 25장 1절과 2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싯딤이란 지역은 모압과 암몬이란 왕국의 서편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이 발람이란 선지자를 매수해 어떻게든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싶었지만, 선지자 발람은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인해이스라엘을 축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물질에 넘어간 선지자 발람은자기 입으로는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지만, 모압 왕 발락에게 하나의 계략을알려줬습니다. 그것이 바로 ‘미인계(美人計)’였습니다.
모압 족속이 섬기던 다산과 풍요의 신인 ‘바알’에게 드리는 ‘제의(祭儀)’ 중에 하나가 난잡한 ‘혼음(混淫 : group sex) 의식’이란 게 있었던 겁니다. 그 제사에 참여하는 남자들이알의 여사제들과의 혼음이 있을 때,바바알 신이 다산과 풍요의 복을 내린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 제의에 싯딤에 머물고 있었던 이스라엘 족속의 리더들을 초대했고, 미인계에 넘어간 이들이 그곳에서 음행과 우상숭배를 했던 것입니다.
시편 106편 28절과 29절을 보시면, “그들이 또 브올의 바알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하게 함으로써 재앙이 그들 중에 크게 유행하였도다” 모든 우상의 목적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 신을 믿으면 물질적인 복(기복)과 육체적 욕망을 해결해 주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넘어갔던 겁니다. 그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전염병이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약 24,000명이 목숨을 잃었던 것입니다. 그런 재앙 중에도 정신을 못 차린백성의 어떤 지도자가 한 이방 여인을 데리고 장막에 들어가 음행할 때, 아론의 손자인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따라 들어가 그 남녀를 죽이게 됩니다. 그러자 그 전염병이 그쳤던 것입니다.
30절과 31절을 보시면, “그 때에 비느하스가 일어서서 중재하니 이에 재앙이 그쳤도다. 이 일이 그의 의로 인정되었으니 대대로 영원까지로다” 우리의 생각에 비느하스가 그 장막에 따라 들어가남녀를 한 자리에서 죽였으니 ‘그렇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나?’라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깨어 있었던 한 사람 비느하스가 전염병을 끝낸 겁니다. 24,000명 뿐 아니라, 3만, 4만, 5만, 10만… 그 이상으로 재앙으로 죽게 될 것을 막아섰던 것입니다.
저는 주일예배에 몇 명이 참석했는지 잘 모릅니다. 저에겐 주일예배에 몇 명이 참석하고 있는 것보다매일 진행되고 있는 ‘아침(새벽) 기도회에 몇 명이 참석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로 깨어 있는 한 사람이 가정과 교회와 세상을 살릴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늘 기도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각 가정에 기도의 제사장, 기도의 파수꾼 한 사람은 깨어 있게 하소서’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 깨어 기도로, 영적으로 있어도 가정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제가 늘 기도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각 가정에 기도의 제사장, 기도의 파수꾼 한 사람은 깨어 있게 하소서’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 깨어 기도로, 영적으로 있어도 가정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꾸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게되고, 자주 만나게되고, 교제하고 싶은 마음이드는 겁니다. 그리고 뭔가를 좋아하는 게 생기면 그게 골프든, 게임이든, 드라마든… 그 좋아하는 걸 자주 즐기게되어 있는 겁니다. 하지만, 뭔가를 싫어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그와 혹은 그것과 거리를 멀리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제가 필리핀이란 곳에서 한인교회 목회를 하면서 여기에 오시는 분들을 이렇게 관찰 해보니깐 세부를 좋아하는 분들은 여기에 정착도 잘 하고, 이곳 생활에 나름대로 만족을 누리며즐겁게 생활하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너무 다른 낙후된 인프라와 문화 같은 것을 경험하면서 ‘나는 세부가 싫다. 필리핀이 싫다…’라고 말하는 분들은 여기서 얻을 게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불평만 하다가시간 낭비, 물질 낭비하다가 철수하시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얼마 전, 어떤 가정을 심방 했는데 그 집사님의 자녀가 공부면 공부, 악기면 악기, 운동이면 운동… 뭐든 잘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그 아이는 어려서부터 뭐를 하든 즐겁게 하니깐, 뭐든 다 잘하더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만들어 놓으신 하나의 질서와 원리입니다. 내가 뭔가를 좋아하면, 그걸 즐기게되어 있고, 또 그걸 자주 하게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보다 그걸 더 잘하는겁니다. 그게 공부가 되기도 하고, 운동이나, 악기 연주가 되기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뭔가를 갖고 싶고, 얻고 싶고, 되고 싶은 게 있다면… 첫 번째로 해야 할 게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 마음이 없는 상태로는뭔가를 잘할 수도없고, 그것을 얻어낼 수도, 가질 수도,그런 존재가 될 수도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06편 24절 말씀을 보시면, “그들이 그 기쁨의 땅을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수백 년 동안 애굽 땅에서 비천한 노예로 비참하게살아가던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셨고,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에 보니 그들은 ‘그 기쁨의 땅을 멸시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 땅을 좋아했다면, 그 땅을 사모하고, 사랑했다면그리고 그 땅을 꿈꾸고 소망하는 마음이 컸다면 그들은 결코 그 땅을 멸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 약속의 땅을 멸시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십자가 없는 면류관만 원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 생활이 힘들고어려웠습니다. 그들은 당장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 없는 면류관은 없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없는 영광은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고난이 있고, 시련이 있지만 이 기간을 통해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더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후에 그 왕관의 무게를 견딜 힘과 자격을 갖게되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이 없어 가치를 몰랐다. 24절에서 그들이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진실을 말한다하더라도 믿지 않으면 그 말을 무시하고, 멸시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것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무가치하게 느껴지는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그 약속의 땅에 대한 가치를 몰랐던 것입니다.
25절을 보시면, “그들이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에서 원망했습니다. 가정에서 가장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는 곳중에 하나가 ‘식탁’일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식탁에서 어떤 대화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정의 분위기가달라지고, 자녀들에게는 특별한 가치관이 형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가정에서, 식탁에서 절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대화를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자녀들에게 부정적, 비관적 가치관이 형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26절과 27절을 보시면, “이러므로 그가 그의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그들이 광야에 엎드러지게 하고, 또 그들의 후손을 뭇 백성 중에 엎드러뜨리며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하리라 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멸시하고 싫어하는 자들에게하나님의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출애굽 1세대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40년의 광야 생활 중에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하고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11. ‘하나님의 복’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어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습니까? 그러나
시편 107편 9절에서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만족함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을 받기 원한다면, 그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사모하고, 좋아하고, 바라고, 소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놀라운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을 받기 원한다면, 그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사모하고, 좋아하고, 바라고, 소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놀라운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16 그들이 진영에서 모세와 여호와의 거룩한 자 아론을 질투하매
17 땅이 갈라져 다단을 삼키며 아비람의 당을 덮었고
18 불이 그들의 당에 붙음이여 화염이 악인들을 살랐도다
19 그들이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경배하여
20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21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
[시편 106편]은 ‘이스라엘 민족의 건국사’에 있어서 ‘출애굽과 광야 생활’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내려진 10가지 재앙’을 통해 430년간의 억압의 생활에서 풀려나 출애굽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편 106편 12절에서는<홍해의 기적> 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과 능력을 찬양했습니다.
시편 106편 13절을 보시면,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이 시편의 14절 이하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광야에서 어떤 범죄들을 저질렀는지를열거하고 있는데, 그들이 그렇게 범죄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3절에서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축만도,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가장 분노케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누군가가 내가 그에게 베푼 은혜를 잊고, 배신할 때 그리고 어디 가서 내 욕을 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 치가 떨리도록 화가 날 겁니다. 그래서 성경도 은혜를 잊은 사람을 동물보다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에게 받은 호의와 은혜도 잊지말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왜 우리가 매일 성경을 읽고, 이렇게 매일 기도 생활을 해야 합니까? 은혜를 잊는 순간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가득해 지고, 그것이 내 마음의 주인 노릇을 하기 시작하기때문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죄’와 연결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시면,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이 구절은 민수기 1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에겐 먹을 게 만나밖에 없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라고 불평하던 사건을 말합니다. 이 사건을 가리켜 오늘 본문은그들이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었다’라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민수기 11장 8절에 보면,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만나라는 특별한 식량은 밤에 이슬이 내릴 때, 하늘에서 눈처럼 내렸던양식이었는데,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쌀도 달고 맛있는 것이 있는 것처럼,이 양식은 달고 맛있었던 정말 괜찮은 식량이었던 겁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광야에서 농사를 지어 얻은 것이 아니었고, 다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 아래에서아침마다 가서 거두어다가 가족들과 함께 요리를 해서 먹었던 것이 만나였기 때문에 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런데 사람이 감사를 잃는 이유는 ‘과한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들이 많은데, 우리는 ‘더 더 더’ 큰 것들을 기대하다 보니깐 감사를 잃고, 불평이 나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에게 뭔가를 받고 싶은 기대가 커지는데그게 뜻대로 안 되면, 감사를 잃고 자꾸 실망만 커지고, 불평이 커지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리고 16절을 보시면, “그들이 진영에서 모세와 여호와의 거룩한 자 아론을 질투하매” 두 번째 사건은16장의 사건민수기 인데, 레위 지파이며 모세의 작은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고라’가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250명의 지휘관들과 함께 당을 지어 모세와 아론의 권위를 대적한 사건입니다.
민수기 16장 3절에 보시면, “그들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하나님께서 모세의 형인 아론을 선택하여제사장을 삼으셨고, 오직 그 가문 만이 제사장직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작은 아버지 ‘고라’가 그 주동자였는데, 같은 레위 지파인데 ‘왜 나는 제사장이 안 되냐? 왜 너희만 되냐?’라는 식으로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대적한 사건입니다. 이것은 고라가 자신의 욕망이 지나쳐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였습니다. 결국 그 사건은 땅이 갈라져 그 반역자들을 심판하신 사건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커지면, 하나님도 눈에 안 보이는 겁니다.
19절과 20절을 보시면, “그들이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경배하여,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으러 40일간 시내산(호렙)에 올라갔을 때,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한 사건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의 ‘값’을 매길 수 있을까요? 값을 매길 수 없어서 우리를 죄에서 사실 때,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대신 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존귀한 형상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다는 것은 스스로를 싸구려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물질의 탐욕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육체의 욕망과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우리는 그 탐욕과 끝없이 싸워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욕심을 크게 낸 이스라엘 백성들이징계와 심판을 받았던 예를 말씀하시고 있듯, 욕심이 잉태되면 반드시 죄가 더해지고 결국은 ‘사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내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결단하십시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욕심이 잉태되면 반드시 죄가 더해지고 결국은 ‘사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내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결단하십시오.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23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24 새벽에 여호와에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25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27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30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우리의 인생에는 언제나 내가 해 볼 만한 일들만 있지는 않습니다. 모세가 홍해 앞에 섰을 때처럼, 여호수아가 철의 이중성벽인 여리고성 앞에 섰을 때처럼, 소년 다윗이 거 인 장수 골리앗 앞에 섰을 때와 같이… 내 힘과 능력으로 절대 불가능한 문제와 상황 앞에도 서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학생들에겐 ‘공부’가 나에겐 도저히 넘기 힘든 홍해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청년들에겐 나의 미래와 진로를 바꾼다는 것이 골리앗 앞에 선 것처럼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여 집사님들에겐 남편이 변화된다는 게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더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세부에서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하는 분들 중에는 재정의 문제가 홍해와 여리고와 골리앗처럼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망을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 앞에서 홍해도 갈라졌고, 여리고도 무너졌고, 골리앗도 쓰러뜨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앞에서 누구나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그 불가능한 문제와 상황에 굴복하고 , 포 기하는 것 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내 눈에도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바로 그 문제 앞에 믿음으로 당당히 맞서는 것 입니 다. 그래서 홍해의 기적을 일으키고,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골 리앗을 쓰러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누군가에겐 그 홍해와 여리고와 골리앗이 내 인생의 기적을 쓰는 새로운 기회 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 기회를 기적으로 만들라
우리 앞에 ‘홍해’와 같은 진퇴양란의 상황들이 올 수 있습 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실패와 절망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기적의 역사를 만드는 새로운 기회로 만드느냐? 하는 것은 우 리의 믿음에 달려 있는 것 입니다. 때문에 내 인생 앞에 버티 고 있는 홍해는 나에게 기적을 맛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 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6절을 보시면,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 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모세는 바짝 뒤쫓아온 애굽의 병거들로 로 패닉에 빠져 있었던 공포와 두려움으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정시키고, 하 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서 이 구절의 말씀을 모세에게 주셨던 겁니다. 그리곤 이스 라엘 진 앞에 있었던 구름 기둥이 그 뒤로 옮겨서 이스라엘과 애굽 군대 사이를 가로막아 그들이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못 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급박했던 상황에서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홍해의 기적을 일으킬 시간이 필요했 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1절을 보시면,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 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백성들이 패닉에 빠져 모세를 원망할 때, 모세도 할 수 있 는 게 없었기 때문에 부르짖어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16절을 통해서 그 기도의 응답을 주셨는 데,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홍해를 갈라지게 하 고, 백성들이 그 홍해 바닥의 마른 땅을 건너가게 하라’는 거였 습니다.
우리야 이 성경의 내용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 에 그냥 ‘그러려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어쩌면 아무 감흥 이 없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모세 입장으로 돌아가 본다면 이 얼마나 황당한 응답입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인 21절에 보니깐,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모세는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만약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손을 홍해 바다 앞으로 쭉 뻗었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어떻게 합니까? 모세도 그런 생각이 안 들 었겠습니까? 만약 그에게 그런 의심이 더 컸다면 모세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을 믿었고,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 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순종으로 홍해가 갈라져 바다 한가운데로 길이 생기더니, 그 길이 마른 땅이 되었던 것입니다.
22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 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우리나라의 전라남도 진도에서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 고 불리는 <신비의 바닷길 축제>라는 게 있습니다. 이 현상 은 썰물 때 중간에 수심이 낮은 모래톱이 드러나서 육지와 섬이 연결되는 겁니다. 얼마든지 가능한 자연현상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기록된 <홍해의 기적>은 썰물 때 물 이 저 멀리 빠져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물이 좌우에 커 다란 벽이 되고, 그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을 걸 어갔다 는 겁니다. 이 사건은 우연히 벌어진 어떤 자연현상 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모세의 순 종’을 통해서 나타난 겁니다. ‘지팡이를 잡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너희가 마른 땅으로 건너갈 수 있게 되리라.’ 이런 말씀을 어떻게 믿고, 그대로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믿기 어렵고,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 이었습니 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홍해’와 같은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문제와 상황들이 있다는 것 은 하나님께서 나에 게 특별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기회를 내 인생의 새로운 기적의 역사로 써 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기드온의 300 용사 이야기가 나옵니 다. 사사로 부름받은 기드온도 처음엔 용기도 없고, 믿음도 없어서 계속 의심하고 자신 없어 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 은 300 용사와 함께 미디안의 135,000명과 싸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이런 기회가 주어졌지만, 기드온이 계 속 거부했다면 우린 성경에서 기드온의 300 용사 이야기를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 역시 사사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였던 겁 니다. 300명의 용사로 135,000명의 미디안 대군과 싸워야 하는데 이게 말이 되는 싸움입니까? 하지만, 기드온은 이 기회를 기적으로 만든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소년 다윗 앞에 거인 장수 골리앗이 있었던 것도 기회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 앞에 풀무불이 있었던 것도 기회였고, 베 드로 앞에 풍랑이는 바다가 있었지만 그 또한 그가 인류 역사 상 최초로 물 위를 걸을 기회였던 것 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 상황 을 불평하고, 원망하고, 남 탓만 하다가 인생의 실패자로 남아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기회를 기적으로 만들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있는 필리핀에도 초중고 학생들이 조기 유학 을 많이 옵니다. 필리핀으로 유학 오는 여러 가지 이유들과 목적들이 있을 겁니다. 한국과 거리가 가깝고, 동남아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국민들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나라고, 학비가 다른 영어권에 비해 저렴하기도 하고… 여러 좋은 조 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사시는 분들 중에 잘 모르는 사람들 은 ‘왜 미국이나 캐나다로 가지 않고 필리핀으로 가냐?’라고 말하 기도 합니다. 물론, 선진국들이 교육도 분명 선진화되어 있 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조건들과 상황들 그리고 이유들 때문에 필리핀에 조기유학을 온 친구들에게 이곳은 하나님 께서 또 다른 기회들을 주실 겁니다.
제가 지난주에 들었는데, 우리 교회 청소년부 친구들이 열댓 명 정도가 꾸준히 출석 하고 있는데 이번에 그중에 네 다섯 명이 1등을 했다는 겁니다. 학교도 다르고 반도 다른데, 어떤 친구는 반에서 1등 하고, 어떤 친구는 전교 1등 하고, 어떤 친구는 수학을 1등 하고… 제가 구체적인 건 잘 모르지만 어쨌든 이 아이들이 교회 행사 다 참석하고, 기도회도 열심히 나오고, 한글 교실 봉사를 비롯해 여러 가지 봉사를 하는 아이들인데 공부까지 다 잘 해주고 있는 겁니다. 물론, 공부가 전부는 아닙니다. 공부 쪽이 아니라 다른 쪽에 재능 있는 친구들도 많을 겁니다.
한국에서 어떤 분들은 ‘어차피 유학 갈 거 왜 선진국으로 가지 않고 필리핀으로 갔느냐?’라고 우려할지 모르지만, 저는 이 땅이 우리 학생들에게 특별한 기회의 땅이 될 것을 믿습니다. 여기서 1등도 하고, 2등도 하고… 한국의 대학 뿐만 아니라,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 수천만원씩 장학금 받으며 입학하는 아이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환경 그것이 꼭 ‘홍해’와 같은 엄청 난 것은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있 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기회를 여러분 인생의 새로 운 역사를 만드시고, 기적을 써 가시고, 믿음의 간증자가되시 길 축복합니다.
2. 시작했다면 의심치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홍해를 걸어 건너갔고, 물은 그들 좌우에 커다란 벽이 되어 있었습 니다. 그런데 애굽 사람들과 바로 왕의 병거들과 말들과 군 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따 라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을 건 너 별 무리 없이 홍해를 건넜었지만, 뒤를 추격하던 애굽 군대는 사정이 그렇지 못했습니다.
25절을 보시면,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 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널 때만 해도 바다 가운데 난 길은 마른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애굽의 추격대가 따라 들어갔을 땐 그 길이 질퍽해지더니 갯벌처럼 변하기도 했고, 거기에 병거의 바퀴가 빠지거나 벗겨지기도 했고 , 말들도 제대로 달릴 수가 없게 되면서 애굽 군대에는 큰 혼란과 혼돈이 시 작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큰 두려움과 공포가 임했고, 다 시 애굽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27절을 보시면,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 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백성들과 함께 홍해를 건넌 모세가 다시 손을 바다 위로 내밀자 양 쪽에 높은 벽으로 서 있었던 물이 점점 바닷길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애굽 군인들의 발목에 차 오르는가 싶더니 무릎과 허리까지 차올랐고, 겁에 질린 애 굽의 추격대들이 왔던 길로 허우적거리며 도망하는데, 순식 간에 길은 사라지고 홍해는 원래대로 회복 되었습니다. 결국 모든 애굽 군대는 홍해에 수장된 것입니다.
그런데 27절에서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 이 회복된지라…”
그리고 21절에서는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 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어 홍해를 가를 때, 그게 쉽게 짧은 시간에 ‘짠’하고 갈라졌던 게 아니었습니다.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모세가 홍해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려 할 때에도 ‘새벽이 되어’ 라는 표현을 보면, 짧은 시간에 된 게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홍해를 가를 때나 다시 회복시킬 때나 한참 동안이나 손을 바다를 향해 내밀고 있어 야 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만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짠’하고 홍해를 가르실 수도 있고, 또 ‘짠’하고 홍해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 려 놓으실 능력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 밤새도록 바닷물이 물러가 길을 만드셨고, 다시 회복하실 때는 새벽이 되어서야 홍해가 원래대로 될 수 있었을까요? 그사이 모세는 팔이 아프도록 계속 손을 바다 위로 내 밀고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빨리 빨리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그리고 내 계획보다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조급해하고, 힘들어 합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개척했을 때는 빨리 교회가 부흥하고, 3~4년 만에 근사한 성전도 건축하고, 여기서 엄청난 사역들 도 많이 하고… 그런 교회가 되길 바랐었습니다. 하지만, 지 금 돌아보며 생각해 보면 그런 저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은 달랐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깐 그렇게 빨리 부흥도 하고, 어떤 놀라운 역사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 상 누구에게나 그런 프로세스가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마 다 다르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각 사람에게 다릅니다.
교회 개척 초창기 때에 저에게 부족한 부분들, 미성숙한 부분들, 영적으로 훈련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았었던 겁니다. 그렇게 제가 부실한데 교인이 많아지고, 교회 재정이 커지고, 건물이 커진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게 없는 겁니다. 제가 교만해 질 수도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도 있고, 목사여도 쉽게 타락할 수도 있는 겁니다. 개척 초기의 여러가지 고난과 시련은 저의 영혼을 단련하시고, 영적 근육들을 만들어 가시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도 그 시간과 세월을 함께 보내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면서 하나가 되고, 교회를 더 사랑하게 되고, 더 겸손하게 봉사하며 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일들이 빨리 빨리 진행이 되지 않는다고 너무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조급해 하지도, 불안해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나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계획과 시간보다 하나님의 계획과 시간이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것입니다.
모세가 바다를 향하여 손을 내밀고 바다가 갈라지기를 기도 했습니다.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고, 3시간, 다섯 시 간이 지나가는데 아직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믿는 게 ‘진짜 믿음’인 것입니 다. 모세는 물이 갈라질 때까지, 다시 물이 합해질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그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시작했는데, 빨리 어떤 성과와 결과물 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빨리 응답해 주시는 게 없는 거 같다고 기도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바다의 밀물과 썰물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면 물이 점점 차오르기도 하고, 어느 순간 보면 물이 저 멀리 빠져나가 있기도 한 겁니다. 세부에 서 공부를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꿈 과 비전을 갖고 나가는데…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 인내 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작했다면 의심하지 마십시오. 곧 여러분의 때가 올 것입니다.
『최고의 삶(조엘 오스틴)』이란 책에 보니깐, 어느 경영자의 사무실에 걸려 있는 커다란 액자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액자에는 해변에 좌초된 큰 배의 그림이 있고, 그 배는 모래 톱에 푹 박힌 듯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배는 마치 죽은 듯 하고, 그의 시대는 끝난 것 같고, 더 이상 어떤 소망 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면 좌초되었던 배가 다시 그 목적을 찾게 되리라. 배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 가리라”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 운이 없게도 썰물을 만나 내 인생의 배가 해변 모래톱에 처박혀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내 인생의 전성기는 끝난 거 같고, 더 이상 내게 소망도 없어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 여러분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믿음의 인내가 필요할 뿐입니다. 이제 밀물이 들어오면 내 인생의 배는 다시 떠오를 것입니다. 다시 나의 새로운 전성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썰물은 다시 밀물이 되어 들어올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새로운 기회가 시작될 것입니다.
7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8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9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10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11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12 이에 그들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
오늘 본문인 시편 106편 6~12절까지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뒤 홍해 해변에 진을 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과 백성들은 열 번의 재앙을 통해 두 손 들고, 노예로 부리던 60만 명(200만 명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줬습니다. 하지만, 노예들이 없이 며칠을 지내보니불편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래서 험하고 고된 일을 해 주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준 걸 후회하고, 애굽의 모든 병거와 군사를 동원해 그들을 뒤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진영에 바짝 뒤쫓아 오자공포에 질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향해 원망했습니다.
<불평과 원망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사람들은 영광 받을 일에는 자기가 앞에나서지만, 어떤 문제 앞에서는 나 대신에 누군가가 그 책임을 지길바랍니다.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본능일 것입니다.
이 사건을 소개하고 있는 출애굽기 14장 11절에 보면, “…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출14:11)” 이 구절에서 ‘이끌어 내어’라는 표현이 두 번에 걸쳐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의 말에 동의했기 때문에 출애굽을 한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라는 말을 하며, 그 모든 책임이 모세에게 있다는 겁니다.
불평과 원망의 사람의 특징두 번째는 ‘두려움과 불안감 크다.’ 는 것입니다. 지금 벌어진 이 문제 때문에모든 게 망쳐지고, 모든 게 끝날 거 같은 불안감이 큰 겁니다. 그러면 그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그 대안을 찾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먼저일 텐데, 두려움과 불안감이 크다 보니깐 ‘불평과 원망’부터 하는 겁니다.
출애굽기 14장 10절에 보시면,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여기서 ‘여호와께 부르짖고’라고 되어 있지만, 이어지는 11절에서 그들이 모세를 향해 강하게 원망하고불평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부르짖음과 기도는 온전한 기도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전에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들 가운데 불안감과 두려움과 공포가 매우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의 사람의 특징세 번째는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벌어진 상황 때문에뭔가 잘못될 거 같고, 실패할 거 같고, 다 망칠 거 같은 불안감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는 망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이 붙들어 주신다. 나는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나는 승리할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은 결코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시편 106편 7절을 보시면,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하기 전에 애굽에 있을 때,모세를 통해 일어난 열 가지 재앙을 목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신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 그분의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이미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믿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애굽의 바로 왕은얼마나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었겠습니까? 수백 년 동안 바로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강한 힘이 있는지를 봤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그 바로 왕을 압도했고, 그 모든 애굽의 신들과 주술사들과 군대까지 압도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능력 앞에 벌벌 떨었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편에 계셨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다면 두려움과 불안과 걱정과 염려가 있었겠습니까? 아니,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두려울 수도 있고, 불안할 수도있을 겁니다. 하지만, 내 믿음의 크기가 내 앞에 있는 문제보다 더 커지면 그 문제와 상황은 전혀 나를 두렵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풍랑이 일던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문제와 상황이 아닌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나아갔기 때문에 역사상 최초로 물 위를 걸은 사람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하지만, 바람과 파도를 볼 때는 물속에 빠져 버렸던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에 빠지는 세 가지 이유를 기억하십시오. ▪ 첫째,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 둘째, 두려움과 불안감이 크다. ▪ 셋째, 믿음이 없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과거 어떤 일들을 행하셨고, 앞으로 어떤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지를 기대하십시오. 모든 불평과 원망이 감사와 찬양으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두려울 수도 있고, 불안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내 믿음의 크기가 내 앞에 있는 문제보다 더 커지면 그 문제와 상황은 전혀 나를 두렵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5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시편 106편]은 1절에서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마지막 절인 48절에서 ‘할렐루야’로 끝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이 시를 ‘할렐루야 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할렐루야라는 말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기쁘고 좋은 일들 앞에서 ‘할렐루야’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시편 106편의 분위기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쁘고 좋은 어떤 일들이 나열되어 있기보다는 이스라엘의 건국 역사 속에 있는그들의 범죄들을 다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불평하고, 원망하고, 교만으로 반역을 일으키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하는… 등등의 사건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을 진노케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할렐루야’라고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마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06편 3절을 보시면,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간혹 역사 속에 정의롭지도 않고, 공의롭지도 않은 자들이권력과 부와 영광을 독차지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권력과 부와 영광이 오래 갈 수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시고, 심판하실 날이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에 의하면, 정말 복이 있는 사람은 ‘정의를 지키는 자들,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모든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겠습니까?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들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시편 106편 6절을 보시면,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시인과 이스라엘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범죄했고, 하나님 앞에서 정의롭지도, 공의롭지도 못한 죄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시인은 이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시면,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은혜’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호의를 베풀다. 불쌍히 여기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도우리가 선하거나, 의로워서 받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반복되는 죄와 실수를 범하며 그렇게 평생을 살아갑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서 회개하고, 후회하고, 결단하고 또 결단하지만…그 죄가 얼마나 끈질긴지 우린 평생 그 죄와 싸우고또 싸우며 그리고 후회하고, 회개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도 없고,구원을 받을 자격도 없는다. 것입니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면, 첫째는 ‘우리가 주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아무리 큰 실수를 해도 그 자녀라는 신분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그 자녀에게 은혜를 베푸는 부모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 주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서도, 잘나서도, 선해서도,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시면,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로 범죄하여 징계받고, 고난과 시련 가운데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께서 택하신 자가 결국은 형통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바람 자체가 너무 뻔뻔해 보일 수도있을 것입니다. 그럴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면야 그런 기대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자격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런 은혜를 구하는 게 어울려 보이지 않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서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박해했던교회의 ‘적(敵)’과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사도보다 가장 위대하게 쓰임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자랑할 수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을 자랑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받을 자격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가 ‘은혜’라는 것입니다. 자격 없지만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 것입니다. 자신이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오늘도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그 은혜를 구하시길 바랍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자신이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오늘도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그 은혜를 구하시길 바랍니다.
37 마침내 그들을 인도하여 은 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의 지파 중에 비틀거리는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38 그들이 떠날 때에 애굽이 기뻐하였으니 그들이 그들을 두려워함이로다
39 여호와께서 낮에는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는 불로 밝히셨으며
40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를 가져오시고 또 하늘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셨도다
41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42 이는 그의 거룩한 말씀과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43 그의 백성이 즐겁게 나오게 하시며 그의 택한 자는 노래하며 나오게 하시며
44 여러 나라의 땅을 그들에게 주시며 민족들이 수고한 것을 소유로 가지게 하셨으니
45 이는 그들이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따르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
[시편 105편]은 ‘이스라엘의 건국사’를 보여주고 있는데, 오늘 본문인 37~45절까지의 말씀은 출애굽을 통해 이스라엘이 애굽을 빠져나오는 장면그리고 광야 생활 중에 하나님의 돌보심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36절까지가 애굽 땅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 중에 ‘장자 진멸 재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7절을 보시면, “마침내 그들을 인도하여 은 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의 지파 중에 비틀거리는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애굽인들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니,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하는 대로 그들에게 줬다(출12:35,36)’는 겁니다.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 게‘돈(물질)’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친한 사람도, 심지어 혈육 관계에 있어서도 물질 문제 때문에 원수가 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출애굽할 때, 애굽 사람들이 수백년 간 그들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구하는 은금, 패물과 의복을 줬다는 겁니다.
그런데 창세기 15장 13절, 14절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께서 아직 자손이 없던 아브라함에게약 700년 전에입니다. 이런 예언을 해 주셨던 것4. 이 예언을 보면,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방에서 노예로 약 400년간 이방인들을 섬길 것이고, 이 기간 동안 그의 자손들은 학대를 받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 나라(애굽)을 징벌할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게 될 것을 700년 전에 예언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애굽인들에게 돈(물질)이란 게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이겠습니까? 하지만, 애굽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하는 대로 다 줬던 것입니다. 자신들도 모르게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던 겁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39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낮에는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는 불로 밝히셨으며” 하나님께서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셨다는 것입니다.
40절을 보시면,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를 가져 오시고 또 하늘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광야 생활 내내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로그들을 배불리시고, 그들을 굶기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농사지었던 게 아닙니다. 그들이 사냥했던 게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41절에서는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같이 흘렀으니” 광야 생활 속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 역시 반석에서 터져 나오게 하셨고, 백성들의 목마름을 해갈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44절을 보시면, “여러 나라의 땅을 그들에게 주시며 민족들이 수고한 것을 소유로 가지게 하셨으니”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여러 족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게되고, 그 족속들이 수고한 소유를 이스라엘이 받게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손이 없던 아브라함이란 사람에게 아들 이삭을 주셨고, 그의 후손이 이방(애굽) 땅에서 노예로 전락해 400년이 넘도록 학대를 받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출애굽을 하게 되었고, 광야에서 40년간을 살 때 아무 것도 없던 그 광야에서 특별한 기적과 은혜로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보호하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할 때 많은 재산을 나오게 하셨고, 가나안의 여러 족속과 강대한 왕들의 땅을 기업으로 받았고, 그들이 수고한 소유를 이스라엘에게 소유권이 이전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겨울 방학을 맞아 요즘 우리 교회에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한 달 살기, 두 달 살기’를 오시는 성도님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 한 달 살기를 오신 한 집사님이저에게 오셔서, “목사님, 저는 지난 여름에 한 달 살기 왔다가 이번에 다시 오게 되었어요.”라고 인사를 하시면서, 목사인 저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한국에서 가져온 쌍화차 한 박스를 선물로 갖고 오신 겁니다. 저는 그 분 이름도 잘 모르는데, 그 성도님은 지난 여름의 한 달 살기 기간 중에 우리 교회에서 은혜받으셨다고 감사 표시를 하셨던겁니다.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어떤 친절과 호의 또는 은혜를 입게 되었다면… 그걸 잊지 않고 감사하는 건 참 좋은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짧은 내용만 살펴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호의와 은혜와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그들에게 베푸셨을까요?
45절을 보시면, “이는 그들이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따르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 그들이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삶을 살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되기를원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이유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라는 찬양의 가사 앞부분에서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걸어가고, 지나왔고, 누려왔던 모든 순간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 내게 그런 은혜들을 베푸셨습니까? 우리가 그 주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지금 내가 걸어가고, 지나왔고, 누려왔던 모든 순간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 내게 그런 은혜들을 베푸셨습니까?
25 또 그 대적들의 마음이 변하게 하여 그의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들에게 교활하게 행하게 하셨도다
26 그리하여 그는 그의 종 모세와 그의 택하신 아론을 보내시니
27 그들이 그들의 백성 중에서 여호와의 표적을 보이고 함의 땅에서 징조들을 행하였도다
28 여호와께서 흑암을 보내사 그곳을 어둡게 하셨으나 그들은 그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셨도다
29 그들의 물도 변하여 피가 되게 하사 그들의 물고기를 죽이셨도다
30 그 땅에 개구리가 많아져서 왕의 궁실에도 있었도다
3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파리 떼가 오며 그들의 온 영토에 이가 생겼도다
32 비 대신 우박을 내리시며 그들의 땅에 화염을 내리셨도다
33 그들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치시며 그들의 지경에 있는 나무를 찍으셨도다
34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황충과 수많은 메뚜기가 몰려와
35 그들의 땅에 있는 모든 채소를 먹으며 그들의 밭에 있는 열매를 먹었도다
36 또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력의 시작인 그 땅의 모든 장자를 치셨도다
37 마침내 그들을 인도하여 은 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의 지파 중에 비틀거리는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38 그들이 떠날 때에 애굽이 기뻐하였으니 그들이 그들을 두려워함이로다
[이스라엘의 건국사 초기]에 있었던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시편 105편에서 오늘 본문인 23~38절까지는 야곱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들어가서 번성하게는데, 바로 왕과 애굽인들의 박해되었로 인해,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 그들을 출애굽 시킨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출애굽을 가능하게 만든 ‘열 가지 재앙’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시편 105편 27절을 보시면, “그들이 그들의 백성 중에서 여호와의 표적을 보이고 함의 땅에서 징조들을 행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통해애굽에 노예로 붙잡혀 있었던 이들과 애굽인들 앞에서 ‘표적과 이적’을 보이시고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표적(表迹)’이란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겉으로 드러난 흔적’을 말하고, ‘이적(異蹟)’이란 말은 ‘기이한 행적 또는 기적’을 말합니다. 그러니깐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의 땅’이란 말은 노아의 세 아들 중에 ‘함’의 자손들이아프리카 족속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28절부터 36절까지는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28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흑암을 보내사 그곳을 어둡게 하셨으나 그들은 그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첫 번째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흑암 재앙’인데, 원래 열 가지 재앙 중에 흑암 재앙은 아홉 번째재앙에 해당 됩니다. 본 시편에서는 다른 재앙들을 언급하기 전에 첫 번째로 이 재앙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바로(Pharaoh)왕’은 곧 ‘태양의 아들’로 신격화되어 있었습니다. 태양이 아침에 나일강 동쪽에서 떠올라하루 종일 창조 사역을 수행하다가 저녁에 서쪽으로 진 다음에, 이튿날 아침 다시 부활하는 신비한 태양처럼태양의 아들인 파라오도 다시 부활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인들은 파라오의 무덤인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웠고, 파라오가 태양과 같이 다시 부활할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흑암 재앙>을 먼저 소개하고 있는 것은 그 열 가지 재앙의 핵심인 애굽의 신인 바로 왕을 심판하셨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 12절을 보시면,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흑암 재앙을 포함해애굽에 내렸던 열 가지 재앙은 결국 ‘애굽의 우상을 심판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쭉 소개하고 있는 몇 가지 재앙들을 보시면, ‘물이 피로 변하여 물고기를 죽이셨다(29절)’는 말씀은 그들이 섬기던 우상인 나일강을 심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고, 30절에서는 ‘개구리가 많아져서 왕의 궁실에도 있었다’는 말씀과 31절에서 ‘파리 떼가 오면 그들의 온 영토에 이가 생겼다’라는 말씀 역시 ‘애굽(이집트)라는 땅을 심판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땅의 신’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32절에서는 ‘비 대신 우박을 내리셨다’는 말씀은 그들이 섬기던 ‘비의 신’을 심판하시고 있는 겁니다. 이어서 33절에서는 그 우박으로 모든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를 치셨다’는 것은 그들의 풍성했던 곡식이 심판 받은 것을 말하고, 34~35절에서는 황충과 수많은 메뚜기 떼에 의해 땅의 모든 채소가 공격받은 것을 말하고, 36절에서는 그들의 또 다른 우상이었던 ‘장자’가 진멸 당하는 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열 가지 재앙을 보면, 표면적으로는 ‘애굽의 신’을 심판하시는 내용인데, 왜 그런 것들을 심판하셨는지 묵상해 보면, 결국 이것은 ‘그들이 먹고, 마시고, 의지했던 모든 물질적인 신(우상)’을 심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3,400년 전 애굽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지금도 모든 세상 사람들의 신은 ‘물질적인 우상’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믿지 않지만, 돈과 물질은 신처럼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실 때, 바로 그 ‘물질의 신, 맘몬 신을 심판’하셨다는 것입니다. 돈이 필요하고, 물질이 필요하니사람들은 늘 그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것을 ‘신’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우상(신)’인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돈이라는 우상, 물질이라는 우상을 사랑하게 될 때, 그 탐욕은 우리의 믿음을 뺏는 것입니다.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우상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돈이 필요하고, 물질이 필요하니 사람들은 늘 그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것을 ‘신’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우상(신)’인 것입니다.